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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Oct 07. 2023

단편소설/장님 고양이 5.

청춘의 시간은 다른 시간들보다 좀 더 빠르게 지나간다.

바로 그날,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반항기 있는 날카로운 아인의 검은 눈동자 안에도 그녀로 가득했다. 사랑은 그렇게 준비도 없이 청춘의 그들에게 꽂혔다.

5월 천안 예고 축제 이후, 아인과 종서는 늘 우윳빛 아지랑이인 나를 매달고 다녔다. 내가 그늘에서 좀 쉬려고 해도 어느새 그들의 향기가 나를 붙들었다. 나는 홀린 듯 아른아른 그들을 쫓아가야 했다.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는 아인에게 종서는 매일 밤 찾아왔다. 종서도 입시로 바빴지만 아인과의 시간도 잊지 않았다. 유통기한을 넘긴 삼각 김밥이나 도시락이 그들의 늦은 저녁 식사였지만 가난한 그들은 행복했고 행복했다. 정말 행복해 보였다. 이상하게 깜깜한 밤에도 그들에게는 폴폴 빛이 품어져 나왔다. 별빛 옆에서 깜박깜박 졸린 눈을 비비며 지켜보던 내가 부러움에 한숨을 후~쉬면 그들에게 여지없이 찬란한 별빛이 쏟아지곤 했다.    


청춘의 시간은 다른 시간들보다 좀 더 빠르게 지나간다.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자주 쓸어 올리는 아인의 머리카락은 어느덧 종서의 손길이 대신했다. 그리고 아인의 앞머리를 넘겨주며 종서는 그의 반듯한 이마를 사랑하게 되었다. 반 무테안경을 연신 추켜올리며 꽉 다문 아인의 각진 입술을 사랑하게 되었다. 콧대 높은 콧날은 안경을 착 걸치기만 했는데도 아인의 콧방울에 윤이 났고 종서는 자주 그 콧방울을 깨물었다.


그녀도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초봄이 되자 서울에 있는 대학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하여 그들은 좀 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만난 지 1년째 되는 날, 종서는 뭔가 특별한 이벤트를 기획했다. 평소에도 기획력이나 엉뚱한 생각을 잘하던 종서는 1년 된 기념으로 '헌혈의 집'에 가서 나란히 앉아 헌혈을 할 계획을 세웠다. 모두들 어이없어 했지만 아인은 재밌겠다며 종서를 칭찬해줬다. 난생처음 해보는 헌혈에 사실 약간 긴장한 쪽은 종서였다. 생각보다 피는 한참 뽑혀 옮겨졌고, 끝나고 나서는 현기증이 났다.


현기증 나는 달콤한 그날, 그들은 처음으로 섹스를 했다. 오래된 7층 상가의 맨 꼭대기 층, 어둡고 서늘한 무인 모텔 방은 싸구려 방향제 냄새가 섞여 비릿한 공기로 가득했다. 봄비가 왔는데 그날 켜놓은 음악방송에서는 오래된 팝송 she's gone 이 흘러나왔다. 어두운 방 안, 낡은 창문으로 어른거리는 빗줄기를 보며 그녀는 아인을 안았다.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얼굴을 파묻은 아인을 종서는 신기하게 내려다보았다. 그때 그와 눈이 잠깐 마주쳤는데 아인의 모습이 콧수염 난 조니뎁처럼 보여 조금 웃겼다.

아인은 그녀의 발가락과 손가락과 젖꼭지를 사랑했다. 아니 뭐든 그녀의 동그란 걸 다 사랑했다. 그녀의 숲 속에 숨은 살구색 진주는 더없이 동그랗고 동그랬다.


종서는 씩씩하고 담대하게 첫 경험을 완수했고 이제 조금씩 성숙한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세틴 끈 나시에 노브라로 다니는 그녀는 자유로워졌고, 찰방찰방 종서의 젖꼭지는 자주 흔들렸다. 빛나는 시절이었다.

대학을 들어가고 졸업하고, 그가 군대에 갔다 올 동안 한결같이 그들은 하나였다.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이 한 사람만 바라보며 청춘을 낭비했을까 싶을 만큼 그렇게 그녀는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종서가 천안 집에 갔다가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날이면 그는 언제나 버스승강장에서 그림을 그리며 그렇게 종서를 기다렸었다.          

아! 그 시절에 내가 터미널에서 게네들을 본 거구나옹.

맞아, 얘들, 진짜 예뻤어.

에잇, 나도 암컷 사귀어보고 싶네.

난 다리 길고 눈 쫙 찢어진 암컷이 좋더라. 미야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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