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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Oct 08. 2023

단편소설/장님 고양이 6.

뫼비우스 굴레의 수레바퀴

우윳빛 아지랑이가 먹구름 사이로 숨어버리고, 어느덧 회색빛 뫼비우스의 띠가 그들을 천천히 감싸고 있었다. 뫼비우스의 띠는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곡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인과 종서는 안과 겉이 모호한 상태로 오래된 연인이라는 명제가 붙은 채, 헤어졌다 다시 만나고 다시 헤어지는, 끈덕진 연인으로, 끊임없는 뫼비우스 굴레의 수레바퀴에 올라타 있었다.

                     

아인은 졸업하기 직전에 출품한 미술대전에서 점묘(點描)로 그린 그림이 우수상을 받고 드디어 화단(禍端)에 입문(入門)했다. 작은 획이나 점이 모여 하나로 어우러져 멀리서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점묘 기법으로 아인은 자신만의 영역을 넓히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후 그의 작품은 좀처럼 빛을 보지 못했다. 작품들은 매번 혹평으로 돌아왔고 이름 없이 사라져만 갔다. 화단에 입문만 하면 화가로써 성공할 거라는 그의 희망은 여지없이 깨져갔다.


실패를 거듭하던 그는 자주 바깥생활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아인의 그림은 시골마을 골목길을 채우기도 했고, 어두운 터널 속을 채우기도 했고,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공터 담벼락에도 채웠다. 그즈음 야외에서 그리는 아인의 벽화 역시 대부분 점묘화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주의(注意)를 굉장히 집중해야 하는 작업들이었다. 아인은 자주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깨알 같은 점을 찍으며 그림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오랜 시간 야외에서 먹고 자고 노숙자 같은 지난한 시간을 보냈다.


아인은 그 무렵부터 웬일인지 신경이 예민해져서 점점 날카롭고, 거칠어져 갔다. 게다가 자주 사람들과 시비가 붙고 입에 욕을 달고 살았다. 자주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기도 하고, 현기증으로 물건을 쏟거나 어지럽히는 일도 늘어났다.


“똑바로 보고 안 다녀!”


거칠게 소리치는 사람들에게 아인은 자신이 제대로 못 보고 부딪혀놓고는 오히려 큰소리를 치다가 결국 싸움을 만들었다. 싸움에서는 매번 된통 얻어맞고 쓰러지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눈을 마구 비벼 세상을 똑바로 보고 싶었지만 아인의 세상은 웬일인지 뿌연 안갯속 같기만 했다. 종서와도 자주 연락을 하지 않아 그녀를 애달프게 만들었다. 그는 더 깊게 자신만의 세계에 닿으려고 했고, 그럴 때면 뿌연 안갯속 외딴 길에서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종서에게 찾아왔다.     


종서는 졸업 후에 작은 출판사에서 디자인 업무를 하며 안정적인 삶을 꿈꿨다. 얼마 되지 않은 최저시급으로 그녀는 항상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했다. 아인이 얼른 졸업도 하고 자리를 잡기를 바랐지만 그는 늘 종서 옆에 없었고 저 멀리 구름 속이나, 그가 그린 인물화의 눈동자 안에 숨어서 깨알 같은 점이나 찍고 있었다. 종서는 늘 외로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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