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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Oct 08. 2023

단편소설/장님 고양이 7.

주인 없는 떠돌이 개

오래된 연인이 된 아인과 종서는 습관처럼 사람 많은 도심에 숨어들어 각자의 취향에 맞는 일방적인 대화를 하며, 잡고 있는 손이 자신의 손인지, 그의 손인지, 아니면 제3의 손인지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종서의 출근길에 어는 날,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인 씨 여자 친구인가요? 한번 뵙고 싶어요.”

“누구시죠? 제 연락처는 어떻게 아셨나요?”

“만나면 자세한 설명 해드릴게요.”


여자는 종서에게 약속 장소와 시간을 다짐받은 뒤 전화를 끊었다. 약속시간이 되어갔다. 종서는 최대한 세련된 복장으로 그녀를 만나러 간다. 약속 장소에 앉아 있는 낯선 여자는 종서보다 열 살은 더 돼 보이는 30대 중반의 아담하고 수수한 여자였다. 그녀는 대뜸 스스로 이혼한지 좀 됐다고도 했다. 종서는 좌석에 앉자마자 스타우트 흑맥주를 시키며 어이없는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30대 중반의 그 이혼녀는 그를 중소도시 어느 거리에서 알게 됐고, 만난 지는 일 년 가까이 되어 간다고 했다. 아인과 한 달 전 부터 같이 살았다고도 했다. 지금 아인이 길거리 싸움으로 경찰서 유치장에 있다며 그의 짐을 가져가라는 얘기였다.


“아인 씨는 그 쪽을 사랑해요.”


‘아니에요, 됐어요.’종서는 제발 그만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구역질이 나서 차마 그 말을 내뱉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구치소에서 나온 아인은 또 다시 종서를 찾았다. 며칠 만에 만난 그의 유난히 퀭한 눈동자를 종서는 차마 놓을 수가 없었다.      


“정리하려고 그랬어. 그 년이 자꾸 매달렸어.”


종서의 가슴은 그 후로 부풀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인과 만난 지 7년째가 되어 가고 있었다. 속절없이 지나는 시간 속에 책임감 없이, 형편없이 청춘을 낭비하는 아인을 봐왔고, 자신과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지만 웬일인지 그녀는 번번이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뫼비우스의 띠에 올라탄 듯 제자리에 서있는 자신을 보며 좌절했다. 종서는 번번이 그와 헤어질 순간들을 여러 번 놓쳤다.

어쩌면 종서는 씁쓸한 아인의 사주풀이 때문에 헤어지지 못했는지 모른다.

"자네는 초년에 운을 다했어."

언젠가 재미로 들어간 사주카페에서 아인의 앞날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허탈하게 웃었지만 그의 개떡 같은 운명을 어쩌면 그녀만이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자만심이 종서에게는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사랑에 실패했다는 패배자가 되는 게 죽기보다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종서는 아인을 놓을 수가 없었고, 밤이 되면 주인 없는 떠돌이 개처럼 그녀에게 다시 돌아오는 아인을 작은 이불 속에 숨겨줄 수밖에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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