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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그동안 그 앨 남자로 봤나 보다.

by injury time Jun 21. 2021

너무나 뜬금없는 말이지만, 나는 국민의  이준석 대표가  참 부러웠다. 종편에 나와 절대 기죽지 않는 멘트도 부럽고, 하버드대 나온 것도 부럽고, 코인으로 많은 돈을 번 것도 너무너무 부러웠다. 당대표가 되어 지지율 고공 행진하는 젊음도 미치게 부러웠다. 뭐, 내가 정치에 대해서 뭘 알겠냐만은(그냥 보통의 아줌마니까) 아무튼 99가지 부러운 점이 많은 청년이다.  딱 한 가지만 빼면 말이다.

14일 국립대전현충원 방명록14일 국립대전현충원 방명록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 이준석 대표의 손글씨를 보며 남자로서의 매력이 확 떨어졌다. 그동안 그앨 남자로서 지켜봤나 보다.  


나는 평소에 손글씨 잘 쓰는 사람에게 섹시함과 신뢰와 성실함과 지성을 느끼는  까다로운 꼰대 같은 취향이 있다. 그런데 이번 이준석의 글씨체는 키보드가 익숙했던 딱 우리 초등 6학년 아들 글씨 같았다. 


일터에서 서류 작성하는 민원인들의 손과 손글씨를 보며 한번 더 쳐다보고 미묘한 친절을 베푸는 나는 손과 손글씨에 판타지가 있는 게 분명했다. 마음속으로 음흉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성희롱이 될지 모르겠다ㅠ)


17년 가까이 53세의 그와 사는 요즘, 그는 내 맘에 하나도 안 든다. 권태기와 갱년기로 찌든 내 곁에 꼰대가 한 마리 산다고 보면 된다. 내가 왜 이 남자랑 결혼했을까 생각해봤는데 딱 하나 이거였다.


손글씨체!


이성을 사로잡는 여러 개의 섹스어필한 부분이 있다면  그에게는 단연 손글씨 쓰는 팔뚝과 손가락과 글씨체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남편과 많은 부분 코드가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글씨 쓰는 모습을 보고 결혼했다고 보면 된다. 성실함을 믿었다.

초등학생 아들에게 영어 가르친다고 저러고 있는 중초등학생 아들에게 영어 가르친다고 저러고 있는 중

손글씨란 확실히 얼마나 많이 갈고닦냐에 따라 달라진다. 학교 때는 교과서 자간과 자간 사이에도 색깔 펜으로 바글바글 메모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제일 많이 글씨를 썼으니 그때의 필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최고로 빛나는 글씨체였던 것 같다. 잘 써진 손글씨란  글씨가 쓰일 자리를 정확히 4등분으로 나눠 나름의 규칙을 적용하여 써야 하는 정교한 작업이다.


우리 집 그는 빛나는 손글씨로 부좃돈이나 조의금 봉투, 학교에 제출하는 서류에 손글씨를 도맡아 써왔다. 물론 사무실에서도 명필로 인정받는 듯하다.

그는 자주 손글씨를 쓰고 또 연마하기도 하여 제법 내 마음에 드는 성실한 필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행히 별로 고백 같은 거 하지 않는 무뚝뚝한 갱년기 아줌마로서 자주 캬~글씨 참 잘 쓴다.  손도 예쁘고, 천상 책상에 앉아 펜대 굴리며 먹고 살 팔자야~ 하면서 칭찬과 고백을 남발하기도 한다. 

신혼여행에서 작은 수첩에 쓴 남편의 손편지신혼여행에서 작은 수첩에 쓴 남편의 손편지

100개 중에 99개 부러움과 한 가지 안습의 이준석 대표의 손글씨, 그 한 가지가 99개를 이길 힘이 있는 듯하다.  잘하고 머리 좋고 돈 잘 버는 이준석보다 우리 집 꼰대가 더 좋은 걸 보면 말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몇  전 겪은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났다.

주민센터에서 일하는데  40대 남성 민원인이  나에게 왔다. 으레껏 신청서 양식에 이것저것 신상을 써서 그가 내게 건네었는데 그 글씨가 기가 막혔다. 신청서에 인쇄 된 글씨만큼이나 깔끔하게 정리된 11포인트의 굴림체였던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에게


 - 선생님, 글씨 너무 예쁘세효~


하며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그는 그런 칭찬이 지겹다는 듯이 무뚝뚝하게


- 글씨 잘 써서 뭐합니까


했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관심을 끄고 내게 넘어온 서류를 검토하고 심사 후 문자로 연락이 갈 거라는 안내 후 일을 마무리했다. 그는 나와의 일처리가 끝나고 옆으로 옮겨 직업상담사와 다시 상담을 이어갔다. 알고 보니 그는 직업상담사에게는 블랙리스트 민원인이었다. 대여섯번 취업을 알선해 주었는데 번번이 한 달도 안돼서 때려치우고 다시 주민센터찾아와서 투덜거리며 좋은 일자리를 소개해달라고 하소연을 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취업이 될 때까지 매일매일 동사무소로 마치 출근하듯 찾아와 아내와 이혼할 거라는 둥 사적인 얘기까지 늘어놓으며 30여분 앉아있다 간다며 직업 상담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손글씨 필력이 차분하고 성실과 끈기 이런거 하고는 상관없는 사람도 있는 듯 하다.


사실 이 글을 쓰며 역대 유명 정치인들의 글씨를 찾아봤는데 글씨체로 그 사람의 성실함을 논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냥 내 취향이다. 나는 로맨티스트임으로♡♡♡♡♡♡♡



왼쪽 위부터 정몽준 , 안철수, 박근혜, 노무현, 트럼프, 오바마왼쪽 위부터 정몽준 , 안철수, 박근혜, 노무현, 트럼프,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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