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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Jun 17. 2024

주관식 없는 인생

20대의 고민에 대한 소고

사촌동생이 한숨을 쉰다. 올해 대학에 입학했는데 아무것도 한 거 없이 친구 집에서, 술집에서 술만 먹으니 한 학기가 갔단다. 원래 대학생활이 이런 거냐고 묻는다. 학점은 물론 바닥이다. 사회에서 정한 자기 탐색기간으로 암묵적 허용된 대학생 1학년의 현실판이라 할 수 있다.

나의 20살 때를 떠올려본다. 동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똑같았다. 삶에서 가장 후회되는 시간을 떠올려 보면 대학교 1학년과 군대 일병시절이다. 인생이 한 권의책이라면, 이 두 개의 페이지만 도려내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을 가지 못해 늘 후회와 열등감으로 가득했던 1학년이었다. 당연히 수업이나 주변 동기들, 선배들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여기서 잘해볼 생각이나, 지금 내 상황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은 않고. 지금은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게 자취를 감춘 선배들에게 잘 보이려고 술자리 시중이나 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대학에서 1학년, 2학년은 공식적이지는 않으나

암묵적으로 자기 탐색기간이라고 정해둔다. 배낭여행을 가든, 연애를 하든, 교환학생을 가든 친구와 다른 걸시도해 보든 학과 수업 말고도 어떤 걸 하든 이 사회는 용인한다. 실패해도 용서한다. 설령 용서하지 않는다 해도 다시 일어날 충분한 체력과 시간이 있다. 이때는 모두가 마치 대학생 때만 가지고 있는 특권인양 연애나, 여행을 추천한다. 오히려 많은 경험을 이때 해봐야 나중에 꿈을 찾는데 밑거름이 된다는 거다. 30대에 내가 가진 직업과 반려자를 누굴 만나냐 이 두 가지가 삶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얘기다. 일천하다고 생각했던 이때의 결정과 경험들이 내가 지금 직장에 나가 돈을 벌고, 와이프를 만나고 글을 쓸 수 있었던 좋은 양분이 되고 있다.

‘아, 난 다 필요 없고, 지금 그냥 젊음을 즐길래! 술 먹고 놀래!’

라고 하는 이도 더러 있다. 우리가 잘 생각해봐야 할 건매일 술을 마시고 싶어도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있어야 안주도 시킬 거고, 술도 먹고 싶은 걸로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든 과외를 하든 하겠지만, 결국 한 가지 결과에 도달한다.

‘좋은 곳에 취업을 해야 한다’는 논리. 그래서 요즘 대학생은 1학년 때부터 스펙 쌓기에 돌입한다. 인턴이나 대외활동, 그리고 자격증 따기, 학점관리. 이렇게나 젊고 혈기왕성할 일이 년을 본인 스스로 리밋을 정해 자유를 구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인생을 더 착실하게 사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건 꿈을 찾는 자기 탐색의 과정이 아니라, 하나의 골인지점만 보고 가는 마치 자기 탐색의 가면을 쓴 자기 계발이다. 심지어 그 결승선은 점점 좁아져간다.


자, 이 자기 탐색이라는 가면을 쓴 자기 계발은 과연 어떤 걸까. 인턴 지원하고, 자격증 따고, 영어공부하고, 좋다. 다 좋다. 안 하는 것보다 내가 일단 공부를 하니까 여러모로 경험치가 쌓이는 건 맞다. 근데 이건 하나의 결승점만 보고 달려드는 획일화된 과정일 뿐이다. 합격과 불합격 이 두 개의 결과에서 한쪽만 쫓기에 벌어지는 것. 나만의 자기 탐색을 해보겠다고 꿈을 찾아가는 사회를 우리는 더 응원하고 대단하다고 해줘야 할 판에 나태하고 방만한 사람 취급한다. 심지어 이 사회가 말하는 정상적인 그 루트를 밟아도 취업을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사회다. 인턴 경력과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를 포기하는 일은 마치 대학생에 주어진 유일한 ‘자유’ 즉, 자기 계발을 포기한 건데 당연히 좋아 보이지 않겠지. 골인지점이 안 정해져 있으니까.


이 한국형 자기 탐색 ‘자기 계발’은 그냥 ‘자기 관리’ 그이상 이하도 아니다. 남자는 65킬로, 여자는 55 키로가 넘으면 안 되고(키는 고려하지 않음), 늘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식단관리를 해야 하며, 눈이 너무 작으면 쌍꺼풀 수술을 해야 하고, 남자는 잔근육이 있어야 한다.

키는 175는 무조건 넘어야 연애를 할 수 있고, 옷은 늘 가꿔 잘 차려입어야 하고 트렌드에 뒤처지면 안 되고, 냄새도 나면 안 된다. 신발은 열 켤레 이상 있어야 하고향수는 필수다. SNS는 꼭 해야 하고, 대인관계도 좋아야 하고 이 상태에서 인턴이나 토익, 자격증까지 다 챙기는 게 한국형 자기 탐색이란 거다. 우린 그걸 근사한 말로 자기 계발이라고 하는 거고.


그럼 이런 사회를 물려준 지금의 30대가 이들에게 미안해야 하는 걸까? 나는 사촌동생에게 미안해야 하나?40대는 우리 30대에게 또 미안해야 하고? 그건 아니다. 각자 세대 별 그때가 제일 힘들었고 그때의 고충이 상존했다. 부모세대가 희생과 생존의 발버둥이었다면,우리 세대는 그게 이루어진 상태에서 또 다른 차원의 경쟁 과도기였고, 지금 세대는 또 그들만의 사정이 있는 것이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바뀌고 어제의 문제를 해결하면 오늘 또 새로운 문제가 나오고, 내일 또 새로운 이슈가 있다. 100년 전 인간과 지금의 인간은 다르듯, 현시대를 사는 사람들도 각자 그들의 속한 집단에서의 고충이 존재한다.

심지어 요즘은 우리 때처럼 수능이 아니고 학생부전형이 대다수라 내 옆사람과 경쟁한다. 대학수학능력평가가 전국 고3들과 경쟁하는 거라면 이젠 내신을 잘 받아야 해서 내 옆 짝꿍과 먼저 경쟁을 하는 거다. 이기심, 질투심이 자연스레 생겨서 나중에 오답노트 빌려달라고 해도 아마 안 빌려줄 거다. 내 옆 짝꿍보다 내가 더 점수 잘 받아야 되거든. 어릴 때부터 경쟁이 몸에 배어있는 세대다. 이런 이기주의는 점점 더 심해질 거라 확신한다.


이런 현실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현재의 제도교육은 절대 오래갈 수 없고, 우리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 내가 멕시코나 미국에 있을 때를 보면그렇다.

멕시코나 미국, 유럽에서 만난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본다고 했을 때 만약 한 과목을 80점을 맞았다 하자. 그럼 이들은 더 이상 이 과목을 공부하지 않는다. 80점이라 패스했으니까 그 시간에 다른 국가 여행 한번 더 가고, 책 읽고, 다양한 사회이슈에 대해 토론하고 하는 데에 시간을 보낸다.

근데 봐봐. 우리는 80점을 내 아이가 만약 받아왔다고 하자. 화부터 낸다.


“옆집 누구는 100점 맞았다던데, 90점 맞았다던데, 너는 왜 80점이야? 뭐가 잘못됐지? 학원을 더 보내야 하나? 요즘 무슨 고민 있니? “


로 시작한다. 제도교육에 뼛속까지 길들여진 대한민국부모의 자화상이다.

제도교육을 그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떨까. 똑같다.

어떻게든 성적으로 줄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게 열려있는 현안에 대해서도 객관화로 (억지로) 만든다. 예를 들어, 오늘 아침 1면 뉴스에 난 요즘 논란인 금투세, 종부세 예시로 들어보겠다.

“금융투자소득세랑 종부세 폐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는 토론 주제가 있으면 거기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를 말하면 되는데,

<금융투자소득세를 시행 중인 국가가 아닌 것은?>

1번 : 영국 2번: 미국 3번: 한국 4번: 러시아 5번•••

이런 식이다. 어떻게든 맞고 틀리고의 정답을 만드는 사람들. 이런 걸 배우는데 애들이 어떻게 창의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제도교육이 요구하는 것이나 미디어가 전달하는 것만 정답인 줄 알고 커 왔다. 그러니까 당연히 30살이넘은 나 같은 사람들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뿐이라고 획일적으로 생각하는 거다. 물론 이 제도를 만드는 지배자들에게는 쉽겠지. 이토록 편한 세상이 없겠지. 자기 마음대로 그냥 다 주무를 수 있거든. 주관식으로 비판적 안목을 못 기르게 하니까 자기 맘대로 우민들을 휘어잡는다. 전두환정부 때 3S정책이랑 같은 거다. 문제가 있어도 재밌는 거 몇 개보여주면 그냥 잊는다.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패자부활전이 당연시 여기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 남을 죽이고, 밟고, 팔꿈치로 옆 사람을 갈기고 내가 더 높이 올라가겠다는 일명 ‘팔꿈치사회’가 아니고, 팔꿈치에 맞은 사람들도 다시 위를 볼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들에게 존엄성을 주고 보편적 복지를 이끌어야 한다. 현대사회가 직면한 위기, 모순이나 병폐는 결승선을 다양하게 만드는 것만이 해결책이라 본다. 지금 이 한국형 자기 계발 성장 프레임은 절대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정신승리하는 어른사회의 패착일 뿐이다. 지금 수 1을 백점 맞든 영재라 과학고에 가든 SKY대학에 가든 그것만이중요한 게 아니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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