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말하다
경주의 한 카페.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펜을 들고 공책에 이것저것 1시간째 쓰고 있다. 뭘 쓰고 있는지는보이지 않지만 어디 베껴서 쓰는 것 같진 않고, 중간에 잠시 생각을 하다 다시 쓰는 걸 봐서 일기나 본인만의 생각을 쓰는듯하다. 여행에서 무언가 써 내려가는 건데 세상에 이만한 가치 있는 일이 있나 싶다. 내가 카페사장이었다면 저분께 커피를 한잔 더 서비스로 줬을 것이다. 단언컨대 이 분은 이 여행이 본인의 여행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여행은 본인 인생에 있어 이정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때 우리는 보통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때운다. 근데 펜을 들고 메모장에 무언가 적는 사람을 최근 본 적이 있는가? 요즘같은 세상에 참 귀한 풍경이다. 스스로 생각하면서 단어와 단어의 조합을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글쓰기다. 모든 공부의 기초다. 왜? 스스로 생각하고 본인이 생각한 대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한 대로 나만의 논리를 펼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누군가 이렇게 질문한다. 에세이는 그냥 일기 아니냐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맞다. 누구나 쓸 수 있다. 지금도 서점에 가봐라. 자기 계발 부문, 에세이 부분에 하루가 다르게 수많은 에세이가 쏟아진다. 제목도 다 비슷비슷하다. 에세이를 사서 읽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이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어?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때 출판계에 에세이가 붐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불경기 때 위로나 공감 에세이. 근데 이제는 에세이는 출간에 있어 큰 매력이 없다. 아니, 오히려마이너스다. SWOT분석으로 따지자면 'T' 위협에 해당한다.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사람들이 잘 사서 읽지도 않거니와, 전문성이 결여돼 있다.
즉,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라는 것. 근데 이런 요소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예상치 못한 명저가 나오기도 하고, <세이노의 가르침>처럼 본인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한 자서전형식의 스테디셀러가 나오기도 한다.
요즘 에세이에 한정한 출판업계 트렌드라고 하면 출판사들은 유명유튜버, 연예인 등 이름 있는 네임드 저자나,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인플루언서 책을 내려고 한다. 글의 질은 크게 고려하지 않고 책 판매의 손익분기점을 안전하게 넘을 수 있는 저자를 찾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이러니까 에세이 시장 생태계의 질이 낮아지고, 독자들에게 외면받는 것이다. 이걸 모르는 출판업계 관계자들이 그저 안타깝다. 본인 사리사욕을채우기에만 혈안이 되어있으니. 오죽하면 유명 유튜버들이 마지막 단계로 뛰어드는 산업이 출판산업이다. 더 많은 돈과 유명세를 가질 수 있는 마지막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직업에 위엄을 실어주는 굿즈나 훈장 같은 개념이다. 개개인이 에세이의 특징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더 나은 책을 저자가 만들고 독자들이 읽는 데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에세이와 일기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에세이에 그토록 열광하는 걸까? 정답은 매우 간단하다. 에세이는 독자가 있는 글이다. 글을 읽는 대상이 정해져 있다. 반면 일기는 글을 읽는 대상이 없다. 오직 나를 위해 기록용으로 쓰는 것이다. 오늘 있었던 일이나, 내 경험, 내 생각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일기인 반면, 에세이는 거기서 추가로 독자로 하여금 전하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일기와 에세이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다.
처음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럼 가장 먼저 일기를 써보면 된다. 덤덤하게 오늘 있었던 일을 부담 갖지 않고 차근차근 써 내려가보는 것이다. 가령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을 집 오는 길 먹었다면 거기에 대해 어떤 맛이었고, 어떤 상황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써본다. 글은 정말 신기하게도 단지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집에 오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다. 여름밤 집 오는 길 아이스크림이 스트레스를 푸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거나, '와, 근데 여긴 어떻게 이렇게 장사가잘되지?' 하고 퇴근길 아이스크림을 할인판매하는 편의점의 마케팅 전략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의 신제품에 대해 분석을 할 수도 있다.
이건 단지 ‘평일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집에 오는 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에 관해서만 쓴 것이다. 근데도 벌써 아이디어가 3~4개씩 나오지 않는가. 글은 이래서 재밌는 것이다. 한 현상을 바라보고도 여러 가지 해석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또 다른 신선함을 준다.
또 한 가지, 내가 이렇게 편하게 아이디어를 내고 거기에 대해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글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집에 오는 것이 살이 찌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그렇게 적었다 해서 그 아무도 비난하진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건 오로지 100% 나만의 견해이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 사견에는 옳고 그름, 맞고 틀렸다가 없다. 그냥 내 자유다. 이래서 내가 학창 시절 때 답이 정해져 있는 수리영역 보다 언어영역에 더 흥미를 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평범한 한 일기 내용에서도 내 의견과 경험을 덧붙여 글을 써 내려가면 그것이 에세이가 되는 것이다.
에세이를 쓰면 특정 독자로 하여금 마음의 울림을 주고 본인도 새로운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장점이 많다. 가령, 아까 예시로 들었던 한 여름의 아이스크림 회사의 마케팅전략에 대해 내가 이 글을 씀으로써 나도 검색이나 책을 통해 공부를 해야 결국은 쓸 수 있는 것이다.객관적인 정보들은 사실에 입각해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나 또한 몰랐던 사실을 알 수 있고, 풍부한 배경지식으로 추후 다른 글을 쓰거나 정보를 활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일기는 그 어떤 글로도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어릴 때 숙제에 일기가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이다. 글을 매일 쓰면서 내 머릿속에 있는 사고의 확장과 사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냥 '기본기'다.
하지만 일기와 에세이를 쓸 때 주의할 점이 있다. 먼저 일기를 쓸 때에는 절대 어떤 행사나, 이벤트가 있을 때에만 써서는 안 된다.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늘 기록하고 싶은 날이 있을 때에만 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길거리의 풀내음을 맡은 기분에 대해 평소처럼 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이 큰 이벤트가 있을 때 일기를 쓴 것보다 더 깊은 마음의 울림과 충만함을 선사한다. 내가 풀내음을 맡으면서 느낀 생각들, 왜 여기에 집중하게 되었는지, 스스로에 대한 사유와 한 현상을 바라보는 깊이가 넓어진다. 단순히 어떤 이벤트가 있을 때에만 일기를 쓰게 된다면 그것은 내 스스로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글쓰기가 아니라 단순히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용도 그 이상이하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
늘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어느 것에 더 가치를두는지, 내 주위의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것을 매일 일기를 통해 드러낼 때 글쓰기가 주는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고 더 삶이 질이 높은 인생을 살 수 있다. 글쓰기의 실력 또한 말해 무엇하랴.
또 한편으로 에세이를 쓸 때 명심해야 할 것은 에세이는 일기와 달리 독자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정보전달/ 감동/ 재미/ 교훈 전달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는 본인의 돈과 시간을 지불하고 내 글을 읽는다. 따라서 독자들은 본인이 경험해보지 않은 타인의 경험을 이 에세이를 통해 알고 싶어 한다. 타인에 관심이 없는 대부분 현대인들이 남의 인생을 알고 싶어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감동/교훈과 같은 인사이트를 얻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독자들에게 무언가 당당하게 알릴 수 있는 이야기를 뽑아내고 선별한 내용의 묶음이 에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렇게 선별된 내용을 뽑기 위해선 먼저 글감이 많아야 한다. 뭐든 쓸 내용이 많아야 어떻게든 쓸 수 있다.
그 글감이 바로 일기가 되어주는 것이다. 아까 말했던 '기본기'. 전혀 부담 없이 매일 있었던 내용을 하나하나 꾸준히 써 나간다면 본인만의 그날의 인사이트가 떠오르고, 그것의 묶음이 본인만 가진 개성 있는 에세이가 완성될 수 있다.
잘 생각해 보자. 우리가 아는 네임드 개그맨을 예시로 들어보겠다. 이들 대부분은 똑똑하다. 호사가 김구라만 생각해 봐라. 김구라의 뇌 안에는 마치 슈퍼컴퓨터가 있는 듯하다. 모르는 게 없고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는 생각할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그 이유가 뭔지 아나? 누군가를 웃기려면 그 사람 혹은 그 사람과 관련된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이 공감을 살 수 있다. 가령 나는 수학에 관심 있고 수학전문간데 김구라가 인하대 영어영문학과 나왔다고 영어얘기만 한다면 과연 그는 웃을 수 있을까? 그래서 김구라는 매일책을 읽고 신문을 보고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한다. 뒤쳐지면 모르는 분야에 얘기를 할 수가 없으니까. 성대모사 하나 하려고 해도 그 사람의 목소리, 표정을 정확하게 분석해야 할 수 있듯이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 그게 글감이 많아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개그맨으로 치면 성대모사를 할 수 있는 대상이 늘어나는 것이다. 작가에게 이 글감의 근간은 일기이니, 일기부터 차근차근 써 내려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내 가장 날카로운 이빨을 만드는 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