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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Oct 21. 2024

‘오늘’만 사는 삶의 현실

마지막을 생각해 보기

현대인은 하루 24시간이 바쁘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월요일 출근하면 부랴부랴 해야 할 일을 하고,점심을 (거의 마시듯) 먹고, 여기저기서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을 처리한다. 항상 기한은 오늘까지다. 다 급하단다. 직장인은 그나마 나은 게 그나마 휴가가 있다. 연차사용을 효율적으로 함으로써 급한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고 내 삶을 돌아볼 시간이라도 있지, 자영업은 더 심하다.

친구는 미용산데, 그저께 모처럼 일주일 동안 휴가를 냈다. 하루 10만 원 잡고 와이프한테 이번달은 약 70만 원 정도 월급이 덜 들어올 거라고 말하는데 미안해죽겠다고 한다. 이렇게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는 억지로내 수입을 깎아서 시간을 만들어야 하는 반면, 직장인은 연차 쓴다고 해서 월급이 줄어드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더 팔자 좋은 고민일지도.


요즘 죽음에 대한 콘텐츠가 많다. 과거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콘텐츠가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대중들의 고민이 깊다. 삶이 팍팍해서 죽고 싶다거나,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사건사고로 이런 비극적인 생각들도 물론 자리하겠지만 대부분‘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서 뭐 하나, 결국 남는 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생각은 왜 드는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대체로 삶은 늘 쳇바퀴 굴러가듯 똑같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쁘기까지. 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혹은 어느 정도 본인이 하는 일과 미래의 모습의 가랑이를 붙잡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끝을 찾아내기 위해서 직장인은 연차를 쓰고, 내 친구처럼 자영업자는 본인 수입을 깎아가며 리프레쉬 차원에서 휴가를 즐기고 오는 것이다. 이 휴가는 그냥 놀고먹고 오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 삶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가늘 포함되어 있다. 혼자 여행을 즐기는 나 같은 사람들도 그냥 새로운 거 보고 먹고에 의미를 두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풍경들을 관찰하면서 내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 가는 것처럼. 결국은 끝과 죽음을 생각해 보는 건 시간에 대한 시야를 축소해 주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내 20대가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음을, 30대가 끝자락임을, 내 40대가 1년 남았다! 를 명확하게 인지시켜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매일 반복적인 패턴 속에서 지금 이 흐르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본인에게 더 이로울지 명확하게 인지하게 된다. 베스트셀러 도서 '원씽'이 그 많은 독자들을홀릴 수 있었던 이유도 그거다. 결국 One. 딱 하나만 선택과 집중해야 이 제한된 시간 안에 남는걸 하나라도 건진다는 것이다. 근데 나는 반대다. 하나에 선택과 집중을 하기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활용하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 깨달음에서 주목한 게 바로 '가성비'다. 가성비란, 내는 금액에 대비해 최대의 효율을 뽑을 수 있는 소비를 말한다. 비싸게 샀어도 그만큼 효율을 뽑으면 그것도 가성비에 포함된다. 요즘 기본 국밥 한 그릇, 냉면 한 그릇도 만원가까이 하는 시대에서 시장에서 6천 원짜리 칼국수를 시켰다 치자. 그게 만약 최고의 맛이었다면 그 소비는 가성비일 테고, 백만 원짜리 아이패드를 사서 글도 쓰고, 영상편집도 하고, 메모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최대효용을 몇 년간 뽑았다고 하면 넷플릭스만 보는 사람보다 그건 100만 원을 투자대비 훨씬가성비로 구입한 것이다. 즉 제한된 시간 내에 어떻게든 내가 가진 자원이나 기회들을 최대치로 활용해 보는 것. 끝과 죽음이라는 걸 생각하면 우리 삶에서 뭐가 제일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내가 좀 더 중요하다고생각되는 부분에서 적은 자원을 투입해 최대효용을 뽑아내는 것만큼 가치 있는 게 있을까.


직업적 소명이 있는 소방관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도 사고로 죽는다는 생각으로 사고현장에서 시민을 구한다고. 또 부상을 이겨내고 이번주 복귀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손흥민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는 32살이다. 오늘 지금 뛰는 경기가 내 마지막 경기라 생각하고 늘 임하겠다"


이렇게 끝을 생각하면 어느 곳에 내 힘과 자원을 투입해서 결과를 내야 하는지 거시적으로 보인다. 나무가 아닌 숲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끔찍하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익숙한 것들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각도와 새로운 조명을 가지게 된다.

가령, 과거에는 150만 원을 주고 산 결혼식 예복 타임옴므 정장을 아주 중요한 날에만 입을 거라고 옷걸이에 보물처럼 모셔뒀지만, 일 년 내내 한 번도 입지 않았더라. 그래서 나는 크게 중요한 날이 아니라도 이젠 잘 입는다. 사소한 물건에서도 새로운 각도로 매사를 바라보는 것이다. 좋아하는 비싼 술이 있으면 이젠 오랫동안 집에 두지 않는다.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준다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귀한 손님이 누구인지도 명확하게정해지지 않았을뿐더러, 우리 집에 오는 날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냥 기분 좋게 내가 마시고 만다.

저축성 개념이 아니고 그냥 지금 내가 행복하다면, 혹은 내게 도움이 된다고 하면 그냥 쓰고 소비한다. 이게 활용의 사전적 정의다. 삶에 이런 일들은 부지기수다.

오늘 교보문고에서 포인트가 소멸 예정이라고 알림이 왔다. 소멸되는 포인트는 소멸되기 전에 어떻게든 써야 한다. 12월 31일까지 유효하다고 했을 때 1월 1일에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

군대 일병 때 포상휴가를 받았다. ‘나중에 써야지’ 하고아껴둔 적이 있다. 나중에 친구와 약속이 잡혔다거나, 이벤트가 있을 때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아껴뒀던 포상휴가는 대대장이 바뀌면서 사라져 버렸다.


이런 걸 내 일과 직업적 상황에 빗대면 된다. 회사에서 내가 맡은 일을 하든, 자영업에서 내 음식이나 물건을 팔든, 누군가와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하든, 우리는 늘 끝을 생각한다. 결과물이 00 하게 도출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빈틈이 있는지를 점검하고,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 결말을 늘 생각한다. 특히 기획을 하는 업무에서는 마감일로부터 역순으로 시기별로 끝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예상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점검한다.

근데 우리는 우리 삶에 있어서는 끝을 보지 않는다. 단순히 그 끝은 10년 뒤에 회사에서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다던가, 서울 강남에 부동산을 매수한다던가 이런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처한 모든 상황의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다. 그게 문제다. 손흥민이 지금까지 롱런할 수 있는 이유도 늘 오늘이 끝이라는 걸 미리 심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설령 끝이라 할지라도 그 충격을 쿠션역할을 하게끔 자기암시하기 때문에 현재의 퍼포먼스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상에서 언젠가는 박수받으면서 서서히 내려올 수 있는 미래를 본인이 머릿속에 그리기 때문에 지금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자, 끝을 생각했을 때 거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나만의 가성비가 뭐가 있나. 그 가성비는 돈으로 교환할 수 있는 '본인만의 개인기'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걸 회사에서 활용하거나 나만의 것으로 무언가 도전해 보든 그건 어떻게든 남는다. 단 이런 생각만 안 하면 된다.

‘에이, 나 말고 다 할 수 있는 건데 뭐’ 이런 건 본인을 그렇게 자기객관화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본인을 좀 더 관대하게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도 그렇다. 본인만큼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있겠지. 아니 많겠지. 근데도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의 마인드차이가 다르고 결과물이 다르다. 그들은 0이고, 우리는 1이다.


마지막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에서도새로운 미래를 볼 수 있다. 그게 내 ‘끝’에 도움이 안 된다 여겨진다면 서서히 고쳐나가거나 버리거나 끊어내야 한다.

이젠 상대방이 불편할까 봐, 혹은 나 스스로가 불편한 상황을 만들기 싫어서 계속 미루고 숨겨왔던 것들에 대해 직접 불편함을 감수하고 질문을 미루지 않게 된다. 유한한 인생에서 그게 더 이로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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