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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취업하는 사람들

1화: 일자리

by 홍그리

한 사람이 정상적인 인생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의식주가 갖춰져야 한다. 근데 서울에서는 이 의식주를 위한 최소비용이 지방의 2배 이상은 든다. 서울살이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관악구 신림도 최근 시세를 보면 보증금 1000만 원에 최소 월세 70만 원은 해야 인간다운 집에서 살 수 있다. 침대하나 놓고, 책상 하나 놓으면 끝인 거기다 작은 화장실 하나가 다인 이 작은 원룸에서 꿈을 키우는 대가가 월 70만 원이라는 것. 발품을 판다면 이보다 싸게 구할 수는 있겠지만 자본주의의 원칙에 빗대어보면 효용성 측면에서 크게 떨어진다. 금액이 낮은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거든. 말하기 불편한 어떤 이유가 반영돼 시세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울을 바란다. 모두가 서울에 살고, 서울에서 일하길 바란다. 월세 70만 원 아니, 월 100만 원을 지불해도 좋으니 서울에서만 일자리를 가지고 살 수 있다면 여한이 없다. 왜냐고? 기회 자체가 모두 서울에만 몰려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만 믿고 싶기 때문이다. 일자리 측면에서 한번 보자. 실제로 대기업 본사 93%가 서울에 소재를 두고 있고, 지방에 비해 꿈을 펼칠 수 있는 직업의 다양성이 보장돼 있는 대한민국 유일한 곳이 서울이다. 임금 자체도 남녀불문 지방보다 높기 때문에 임금으로 보나, 고용가능성으로 보나, 자아실현으로 보나 서울이 청년들에게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지인 몇 명도 지방에서 일자리를 구해 몇 년간 살고 있지만 서울입성을 위해 밤낮없이 자기 계발을 한다. 반대로 서울에서 퇴사를 하거나, 직종을 변경하는 경우에도 한번 들어오면 어떻게든 서울에서 버티지 절대 지방으로 다시 내려가지 않는다. 그 자체로 내 인생이 다시 퇴보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없거든. 지방에서 가질 수 있는 일자리는 미래의 모습이 100% 예측가능하다. 그래서 이들은 이 예측가능성에 안정성을 갖는 게 아니라 오히려 두려워한다.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는 이유다.


내가 살던 곳은 여자가 할 수 있는 직업이 명확했다. 아니, 직업은 많다. 정확히는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여자의 직업을 말한다. 오랜 노력을 들여야 하는 전문직은 제외한다. 간호사, 교사, 공기업 직원, 공무원. 이 네 가지. 공인중개사와 같은 예외도 일부 있다. 남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기업생산직, 공기업, 중소&중견기업 회시원. 공장이 많은 지역이라도 만약 문과를 전공했다면? 선택지는 없다. 대기업공장이 아예 없다면?더 선택지가 좁아진다. 개인의 관심도나, 역량, 살아온 환경을 둘째치고 그 외에는 모두 결혼을 하거나 미래를 준비할 때에 직업이 큰 메리트를 가질 수 없는 직업뿐이다. 모두가 공무원을 꿈꾸는 사회는 곧 망할 것이라 한다. 근데 지방은 현실적으로 그 준거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공무원만 꿈꿀 수 있는 환경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대피할 곳을 찾다 그 대피처가 바로 서울인 느낌이다.

실제로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이 있다 치자. 특정 기술직 자격증이 필요 없는 자기소개서나 NCS 인적성시험, 면접 등 무난한 절차로 입사할 수 있는 사무직지원에는 경쟁률이 100대 1이 넘는다. 이마저도 최소로 잡은 것이다. 모두가 선망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군이고 노력하나로 입사할 수 있으니 이렇게 몰리는 것이다. 그러면 회사입장에서는 100장의 지원서를 10명, 5명으로 전형마다 추려야 하기에 인적성문제를 더 어렵게 내거나, 기괴한 면접질문으로 변별력을 낼 수밖에 없다. 실제 입사해서는 전혀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청년들은 인적성 검사 하나 더 맞추려 인터넷강의를 듣고, 오답노트를 하고, 거기에 모든 목숨을 건다. 삶에 있어 전혀 단 1의 도움도 안 되는 기계적 문제풀이에 인생을 걸고 있는 것이다. 100대 1에서 본인이 50명, 30명, 10명 안에 들기 위해서.

거기서 더하다 싶으면 토익점수나 영어성적을 5점 단위로 계량화 해 서류전형을 매기는 공기업도 있다. 그런 곳에 입사를 준비하고자 하면 한 달에 2번 있는 토익시험을 5만 원 넘는 돈을 내면서, 20만 원 넘는 인강비를 내면서 매주 주말 아침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치러 다닌다. 그렇게 토익점수 5점 더 높이려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청춘은 어느덧 지나가고 30대를 바라보게 된다. 이게 싫어, 조금이라도 깨어있다 자칭 생각하는 사람은 서울행을 택하는 것이다. 뚜렷한 정답이 없어도 그게 이 삶보다는 낫거든. 본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최소한 직업 선택의 자율성에서는 지방인들에 비해 우월하기 때문에.

그래서 서울의 청년인구는 매년 증가세고, 서울은 그렇게 꼭 상륙해야만 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모두가 선망하는 서울의 일자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이 거대한 서울에서 어떻게 각자의 삶을 꾸려가고 있을까. 서울의 일자리를 한번 보자.


서울은 일자리 측면에서 크게 5가지 지구로 나뉜다. 강남/ 여의도/광화문/ 구로가산/ 잠실성수. 그 외에는 판교성남까지. 부동산도 사실 이 업무지구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보면 된다. 이쪽이랑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싸지고, 가까워질수록 비싸다. 대기업의 공장이나, 이과계열 직무들은 대부분 서울이 아닌 서울 근교나 지방에 있다고 보면 된다.

먼저 서울살이 성공의 상징 강남. 강남은 대기업이나 금융, 로펌등의 본사가 테헤란로에 모두 위치해 있다. 사람냄새라고는 찾아볼 수 있는 빽빽한 빌딩숲에서 직장인들은 막 점심식사를 허겁지겁 끝내고 커피 한잔을들고 사무실에 복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늘 어딘가에 쫓기는 바쁜 모습이다.

다음은 반대로 가보자. 을지로. 을지로에는 강남과는 다소 다른 느낌을 준다. 무너져가는 듯한 건물도 보이고, 손에 스치면 파상풍이라도 걸릴 것 같은 녹슨 간판 속 인쇄사, 공업사, 스타트업이 몇 개 보인다. 다소 강남보다는 자유로운 업종이 많아 걸어 다니는 사람 모두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느낌을 준다.

바로 옆에는 시청이 있다. 시청에서 5분 정도 걸으면 광화문이 보인다. 여기는 누군가 ‘서울에서 일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이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 앞에서 자랑스럽게 사원증을 걸고다니는 직장인들. 이들이 사실 서울에서 일한다는 꿈을 실현한 사람이다. 진짜 서울 중심부. 통신사, 금융, 언론사, 정부기관, 주요 공공기관 본사가 위치한다. 정장이나 깔끔한 오피스룩, 세미정장을 자주 입으며 정갈한 느낌을 준다.

여의도는 점심시간만 되면 이곳에 위치한 거의 모든 음식점엔 발 디딜 틈이 없다. 정장으로 도배를 한 직장인들이 11시부터 들이닥쳐 이 붐빔은 1시까지 계속된다. 만둣국 하나에 만오천 원은 기본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물가다. 그래도 팔린다. 왜냐? 도시락을 싸 오지 않는 이상 점심은 먹어야 되기에. 요즘은 정장을 안 입는 추세라고는 하나, 영업직들이 많기 때문에 아직은 많이 보인다. 최근 여의도의 금융업계 모두 점심시간의 근태관리를 타이트하게 규제함으로써 왠지 모르게 모두가 급하고 조급한 모습. 평일 유일하게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여의도공원은 아이러니하게도 걸어 다니는사람이 많이 없다.

구로나 가산디지털단지엔 중소기업이 많다. 아니면 스타트업. 근처 오피스텔에 살거나 경기도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다. 체계가 잡히지 않은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다수 포진해 있어 복장도 자유로운 편. 저녁에 꺼지지 않는 불빛을 가진 고층빌딩은 몇 없는 대기업 건물이다. 넷마블 같은. 직장인들을 위해 억지로 조성된듯한 역 앞의 중국풍의 술집들은 뭔가 정리가 안된 투박한 야시장 느낌을 준다.

잠실은 그야말로 롯데가 먹은 도시다. 롯데타워를 필두로 롯데와 관련된 거리의 간판, 회사들이 많이 보이며, 그 사이에 힙한 스타트업, 트렌디함이 묻어나는 신생회사들이 성수까지 이어진다. 판교는 네이버를 필두로 IT업계가 산업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어 일단 공장이 없다. 개발자가 회사를 먹여 살린다. 개발자특유의 너드한 옷차림 후드티에 청바지, 나는 심지어 운동복과 슬리퍼도 봤다. 시차출근제로 크게 붐비거나 하지 않고 분위기 자체도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모습이다.


이처럼 지방에서의 몇 개의 선택지보다, 서울에서는 업계에 대한 관심도나 열정이 있다면 내가 서울 어느 지역에서 살 수 있는지 일자리만 보고도 이렇게 대략적으로 정할 수 있는 폭이 생기는 셈이다. 임금은 단연 지방의 최소 1.5배. 서울상륙작전은 이렇게 일자리로 첫 포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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