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인프라
10대는 20대와 사고방식이 다르고, 20대는 30대, 40대와 또 다르다. 심지어 요즘은 같은 세대끼리도 말이 안 통하는 경우가 있다. 명절에 친척들과 서로 조심해 가며 침묵하는 이유도 다 거기에 있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들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고, 그들이 쉽게 용인하는 문제도 우리에겐 심각할 수 있다. 관성적인 편견이나, 선입견도 무시 못한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대학교나 직장에서 선배에게 왜 예의를 갖추나. 부모, 선생님을 왜 존경하나? 본인보다 아는 것이 많고 지혜롭기 때문이다. 나보다 세월을 더 많이 살아본 사람이기 때문에 인생을 다루는 데 있어 더 유연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다. 이처럼, 과거에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단순히 경험과 지식의 총량자체가 쌓이기 때문에 매사에 벌어지는 일이나 특정 논제에 대해 논리적이고 근거 있는 해결책이 그들에게 점철되어 있을 거라 여기나, 예외는 있다. 실제로는 10대, 20대가 더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왜냐? 그들보다 트렌드적인 면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사고와 신념, 가치관 이 모두는 바뀌지 않고 굳어지기 때문에 어리면 어릴수록 새로운 것을 유연하게 스펀지처럼 받아들인다. 반면, 기성세대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한계가 있다. 왜냐고? 그걸 온전히 받아들이고 맞다고 하는 순간 지난 모든 본인의 경험과 사고가 부정당하기 때문에. 그렇게 서서히 편협한 사고관을 갖게 된다.
자, 그럼 이 합리적인 20대들은 어디서 살아야 할까. 가장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활발한 나이에 어떤 경험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정답은 많은 것을 보고 듣고느끼는 것이다. 여행을 가든, 뮤지컬을 보든, 독서를 하든, 연애를 하든, 본인의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걸 가리지 않고 해야 한다. 한국에서 그 모든 걸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울이다. 서울, 경기권의 인구 2500만 인프라는 내 젊음을 가장 편리하고 알차고 효율적으로활용할 수 있는 무대다. 단순히 여행을 가도, 뮤지컬을 봐도, 전시회 하나를 가도 이들은 지방에서 할 수 있는 한정된 그 어떤 것보다 최대한의 효용을 누린다.
그런데 여행이나 취미가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당연하지. 한국사람들은 노는 것에도 어떤 대단한 의미를 붙여 자기 계발로 변질시켜 잘 살고 있다고 합리화를 하거든. 다 비교의식에서 나온 잔재다. 근데 이렇게 생각해 보자. 다 버리고 ‘재미’ 측면에서만 봐도 젊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누린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법이나, 심리적인 안정, 주변사람들의 관계, 남녀 간의 사랑, 본인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월등할 확률이 높다. 한마디로 삶이 재밌다는 거다. 남녀 간의 연애로 예를 들어보자.
사귄 지 얼마 안 된 커플이 있다. 서울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다. 익선동 한옥의 고즈넉함이나, 강남의 화려함, 근교로 자연을 보러 여행을 갈 수도 있고, 콘서트,뮤지컬, 영화관, 페스티벌, 지방과는 수 자체가 다른무수한 맛집 등등. 그런데 지방은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돼 있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영화 보고. 과한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적당한 광역시와 서울에서 오래 두 곳 모두 살아본 경험으로써 실제로 그렇다.
자, 이번엔 취미. 누군가 기타를 치는 것이 취미라고 하자. 비트를 찍는 것이 취미라고 하자. 서울에서 그 취미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많을까 지방이 많을까. 같이 즐기는 사람이 서울에 더 많기 때문에 강의라던가, 모임이라던가, 학원이라던가,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던가 관련된 모든 것도 서울에 더 많을 수밖에.
이렇게 단순히 연애와 취미에도 차이가 있으면 인프라가 한 사람에게 주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인프라의 크기가 곧 그 사람의 경험의 크기에 영향을 주고, 그 경험이 본인의 사고관을 넓히는 우주의 크기가 된다.
즉, 각종 인프라가 몰린 서울에서는 내가 굳이 지금 당장 하고 싶지 않아도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이 선택지를 넓히는 일은 가만히 있어도 삶의 난이도 자체를 낮출 수 있는 길이다. 단순히 점심식사 A코스, 양식 B코스를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고 하자. 어제저녁 한식을 먹었다면 오늘은 B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그 B자체가 없다면 질려도 참고 한식을 또 먹어야 한다. 그리고는 먹기 싫은 음식을 조금 먹으며 결국은 남기겠지. 기분도 좋지 않고 포만감도 안 든다. 단순한 식사에도 이렇게 삶의 질 자체가 다르다는 거다.
10대~30대 젊은 세대만 그럴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시간은 갈수록 굉장히 빨리 흘러간다. 누군가는 인생전체를 팔에 비유한다. 10대~20대는 손목부터 팔전체라면, 30대는 손바닥, 40대는 손가락, 50대는 손가락의 마디 정도로 짧게 느껴진다고. 물리적인 시간자체는 같아도 느끼는 정도가 이렇게 빠르다는 것.
젊음은 순간이고, 순간이기에 더 찬란하다. 아무리 자기 관리를 잘한 들 우리는 언젠가는 늙는다. 자, 늙으면멀쩡하던 곳이 조금씩 삐덕대기 시작한다. 기계도 오래되면 잔고장이 늘듯, 병원을 갈 일이 많아진다. 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병원 인프라는 어디가 제일 잘 갖춰져 있나? 서울이다. 물론 지방에도 병원 많겠지. 이마저도 차를 타고 가야 된다. 단순한 감기나, 가벼운 질환이 아닌, 심각한 병에 걸렸다 치면 지방에서는 심지어 이를 고치지도 못한다. 더 큰 병원 즉,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하는데, 그게 보통 서울을 말한다. 실제로 친모도 희귀병을 앓고 계신데, 지방에서는 못 고친다고 3개월에 한 번씩 서울로 올라와 서울대병원에 다니신다. 처음에 지방병원에서는 실수로 실제 앓고 있는 병과 전혀 다른 병이라고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병원 한번 가려 KTX를 탄다고 생각해 봐라. 내 가장 가까운 분도 이러고 있는데 내가 사는 곳이 서울이었다면? 얘긴 달라졌을 것이다. 이건 사실 주변에 가까운 사람이나 본인이나, 실제로 느껴봐야만 몸소 알 수 있다. 인간은 간사해서 본인이 겪지 않으면 백날 들어도 봐도 사실 모른다.
일반인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인프라의 차이는 교통일 것이다. 대중교통시스템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30대 중반을 서서히 바라보는 지금, 나는 아직도 자동차가 없다. 나중에 필요한 순간이 올때 살 생각이다. 여행을 가거나 필요한 순간엔 렌트를 하면 그뿐이다. 서울, 수도권은 차가 없어도 웬만한 모든 곳을 갈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차가 없어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차는 자산개념에서 가장 감가상각이 빠르게 되는 자산이기에, 늦게 사면 살수록 이익이다. 근데 지방은 차가 없으면 아예 생활자체가 불가능하다. 광역시가 아닌 곳은 출퇴근 자체가 불가능해서 어쩔 수 없이 필수로 사야 하는 곳도 있다. 한 시간에 1~2대 버스가 온다면, 어떻게 출퇴근이 가능하겠나. 출퇴근은 둘째치고 연애도 못하고 밖에 나가기도 힘들다. 인프라의 본질적인 뜻 자체는 내 생활기반을 형성하는 모든 구조를 뜻한다. 즉 삶의 기반을 다져줄 수 있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 교통, 학교, 병원, 상하수도시설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나이를 불문 나와 가장 가까이 존재할 때에 우리는 그 노력에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단순히 취미나, 여가같이 즐길 거리가 넘친다는 건 단순히 유희적 요소로만 볼 것이 아니라 본인을 둘러싼 기본적인 것들이 이미 충분히 갖춰져 있음을 말한다. 거기서부터 일단 타지방 사람들과 격차를 만드는 거다. 내게 주어지는 걸 당연시 여기면서 시간을 아껴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서울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한다.
해보고 안 해보고는 천지차이. 인생은 경험이 다다. 서울에 살아보고 어떤 이유가 있어 지방에 간 사람은 얼마나 서울이 편했는지 안다. 근데 지방에만 평생을 산 사람은 서울은 사람만 많고 별거 없다며 본인이 지방에 사는 그럴듯한 명분을 찾기 바쁘다. 이렇게 서울은 온갖 불균형을 낳은 채 갈수록 더 비대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