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경험
30cm를 뛰는 벼룩이 있다. 이 벼룩에게 컵을 씌워 가두면 벼룩은 컵에 이리저리 부딪히다 결국 컵 높이에 딱 부딪히지 않을 정도만 뛴다. 이틀이 지나고, 컵을 치운다. 근데 컵을 치워도 벼룩은 원래의 30cm가 아닌 컵을 치운 그 높이까지밖에 뛰지 못한다.
인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본래보다 더 작은 세상을 강요하거나 주입시키면 그 안에서만 생각하고 뇌를 굴린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착각한다. 왜냐고? 그게 제일 편하거든. 능동적으로 뭔가를 새롭게 창작하고 만들거나, 어려운 문제를 풀거나, 내가 하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도전을 하는 데에는 큰 노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거든. 그리고 그걸 누군가가 강제로 막을 땐 자괴감마저 든다. 그냥 가만히 순응하면서 사는거다. 심지어 이렇게나 바쁜 현대사회에서만약 본업이 따로 있거나, 바쁜 일상에 지친다면 과연 이를 시도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 그래서 사람은 점점각자의 그 작은 세상 안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그 작은세상을 준 누군가, 책임전가를 할 그 대상을 증오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고마워한다. 지금 당장 내가 편하니까. 여기서 본인의 삶을 정당화할 수 있는 책 한 권이라던지, 유튜브의 글귀하나라던지 뭐라도 하나를 봐서 감명깊었다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그 신념이 세상의 전부가 된다. 이 부정적인 결말을 가진 삶은 주변에 많이 없을 거라고? 아니, 너무 많다. 회사라는 적당한 울타리 안에서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월급을 받으면서 적당히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어쩌면 이 컵안에 갇힌거랑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삶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그 삶을 만든 이 사회구조가 안타까운 것이다.
과거에 서울에 왜 살아야 하냐고 불특정다수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았다. 서울뿐 아니라 도쿄나, 뉴욕, 파리, 런던 등 전 세계 선진국의 수도에는 사람이 많아서 불편하고, 집값도 터무니없이 비싼데 왜 사람들은 수도에 모여살까. 최근 부동산정책을 보면 서울과 수도권을 더 이상의 집값상승을 막고자 토허제로 묶어버려사실상 투자과밀지역이라는 걸 정부자체도 인정한 꼴이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고, 본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삶의 터전에 대한 정답은 없겠지만 그래도 소수가 아닌 다수의 사람들이 서울에 살고 싶어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건 ‘경험’이 아닐까 한다.
어릴 때부터 우린 수많은 경험을 하고 살아간다. 게다가 첫 경험은 그 어떤 감정보다도 짜릿하고, 기억에 오래 남으며, 삶을 역동적으로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근데 그 첫 경험 중에서도 보통 우리가 말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은 흔하지 않은 무언가에 기인한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것들. 가령 남들이 가보지 않은 곳에여행을 해봤다거나, 한국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의 생활을 해봤다거나, 전교 1등을 해봤다거나, 예체능에 특출 난 재능이 있어 어떤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거나 뭐 그런 것들. 그리고 그 흔하지 않은 것에 깊이 몰입해 본 경험은 돈과는 바꿀 수 없는 인생전체의 값진 양분이 된다. 자, 여기서 생각해 보자.
만약 본인이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획일화된 교육 속에서 획일화된 생각만 하고 정규교육만 받다가 학교를졸업하고 회사를 취업하고 그냥 평범하게 일을 하고 있다면?
본인의 자녀는 그렇게 키우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를 더 시켜보고, 흥미를 찾게 해 주고, 어떤 방식으로든 노력하겠지. 회사를 다닌 대부분은 공감할 것이다. 내 자녀가 보통의 회사원을 하는 꿈으로 가지도록 권유하거나, 추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나이가 더 어리면 어릴수록 더 큰 잠재력과 가능성에 배팅하니 더 새로운 무언가를 시켜주고 싶겠지.
이 흔하지 않은 경험자체를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은 곳이 어디일까. 그게 바로 서울이다. 경험이라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내가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내가 벌 수 있는 돈, 생각, 마인드, 주변 사람, 사는 곳, 하물며 입고 다니는 옷과 외모까지 전부 다 바뀔 수 있다. 내가 한 경험 하나로.
그래서 나는 20대에 1억을 모았느니, 주식에서 큰 돈을 불렸다느니 등 돈에 매몰된 사람에 다소 회의적인 게 돈이라는 재화하나 때문에 20대 벌써부터 어떤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비용자체를 날린다는 것이 너무 아깝거든. 돈은 나중에 30대가 돼서 내가 20대에 해 놓은 경험으로 자리를 잡아 벌어도 아무 상관없다. 빚까진 아니더라도, 본인이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해외여행을 갔다 오는 게 사실 나는 훨씬 더 값지다고 본다. 아무리 해외여행이 배우는 것 없이 그냥 '놀러 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서라도. 일단 더 다양한 걸 내 눈으로 보고 느끼잖아. 어마한 차이다.
결국 상황에 따라 다른 건데 아이에게 어떤 기회와 다양성을 경험하게 해 주기 위해서는 무조건 서울로 와야 한다. 선례로 내가 만약 예체능 전공자라고 치자.
성악 전공이다. 혹은 피아노전공이다. 이 성악과 피아노를 가장 뛰어난 교수 밑에서 배우고,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지방 시골이겠나 서울이겠나. 주어지는 기회자체가 다르다. 아무리 본인이 실력이 뛰어난 들 지방 시골에 있다면 실력을 키우는 건 둘째 문제고, 그 실력을 알아봐 줄 사람 자체를 만나기도 힘들다.결국 기회는 사람이 주는 거거든. 그게 회사 안이든, 사회생활이든, 뭐든 다.
작가, 아티스트, 예술가, 성악가, 피아니스트같은 예체능뿐만 아니라 회사원도 마찬가지. 대기업본사가 왜 서울에 몰려있을까. 회사원도 필요 없다. 집에서 노는 백수나 주식을 전업으로 하는 트레이더나, 모든 직업을 통틀어 각자의 분야에 탑을 찍은 사람들. 분야가 많으니까 정상의 위치에 오른 사람 수도 어마하게 많을 거다. 그런 성공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어디?서울이다. 내 바로 옆집에 연예인이 살 수도 있고, 유명한 배우와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있다. 단순히 같은 공기 마시는 거 아무 쓸모도 없고 배울 게 없는 거안다. 그럴지라도 가까운 곳에서 같은 꿈을 꾸고 롤모델을 삼고, 나 스스로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곳. 장소는 소름 돋게도 사람을 바꾸는 데 이렇게나 큰 영향을 준다.
사람이 많으니, 당연히 교통이 발달하고, 문화가 발달하고,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어떤 인프라가 만들어진다.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주말에는 하다못해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전시를 볼 수도, 예술의 전당에서 오케스트라를 들을 수도,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볼 수도, 그 안에서 내 경험의 총양을 그렇게 일상 속에서 쌓아가는 거다. 하다못해 홍대 길거리에서 사람들 다니는 옷차림만 봐도,
'아, 저렇게 힙하고 멋있게도 입을 수 있구나'
아무렇지 않은 그냥 흘러가는 생각일지라도, 한 번이라도 나는 그 옷을 사기 위해 찾아보고, 어울리는지 입어보고, 나를 가꾸어가는 과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 보면 이것도 경험이고 내가 당연히 커가는 과정이겠지.
뭘 많이 보고, 해보고, 듣고, 느끼고 해 봐야 결국 내 스타일을 알 수 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문제나 이슈를 해결하는지를 모르면 살아가면서 가지게 될 무수한 생각의 파편들을 어떻게 맞출 건가.
그게 옷차림이 아니라 연애나, 인생관이나, 재테크나, 일자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값지다고 생각하는 모든것에 나를 알아가는 것은 이토록 중요한데, '기왕이면' 그 장소가 서울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 큰 게 마지막으로 남았다. 결국 그렇게 해서 본인의 시야를 넓히고, 경험을 쌓아 늘 사유하는 한 사람 A가 마침내 있다고 하자. A가 속한 학교라던가, 동아리라던가, 회사라던가 어떤 조직이 있을 것이다. 그 조직은 아주 높은 확률로 이상적이고, 올바르고, 선한 영향력을 타인에게 줄 수 있고, 경제적 능력도 뒷받침되는 조직이겠지. 그럼 그 조직에 속한 다른 사람들이 있을 거다. 그럼 그들도 A보다 혹은 A보다 더 뛰어난 사람만 실제로 있다. 최소한 A보다 모자라거나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그들만의 무리를 쌓아가고, 철옹성을 굳건히 하고 서로에게 선한 시너지를 만들어 각자의 삶을 정상에 찍도록 돕는다. 말 그대로 끼리끼리 논다는 것.
대치동에, 목동에, 노원에 왜 그렇게 어릴 적부터 부모들이 사교육에 미쳐있는지 아는가. 왜 포화인지 아는가. 결국 이 논리다. 더 나은 사람과 환경에서 내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 공부를 하지 않아도 주변인들이 공부를 하면 나도 따라 하게 되는 그런 논리. 심플하다.
그래서 우린 서울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