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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Apr 15. 2023

이별이 두려운 이들에게

아이스크림만 먹어도 행복했던 그때는

강대리의 마지막 레터

화요일 아침마다 보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인의 강대리의 편지다. 강대리는 누구일까?

 매주 화요일마다 사람인(취업포탈사이트) 에 가입한 불특정 다수에게 레터를 보내주는 사람이다. 무심코 취업 준비생 시절 사람인에 가입한 뒤로 스팸문자를 다 차단했었는데 유독 이 사람만 스팸차단이 안되어 있어 우연히 읽기 시작했다. 취준생에게 위로가 되는 글, 인생의 응원과 아낌없는 조언, 현대인이 혹은 직장인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게 될 고민들에 대한 해답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하고 일상적인 주제로 내 인생의 큰 위로가 돼주었다. 근데 오늘 아마 퇴사를 하는가 보다. 늘 화요일마다 자연스럽게 메일을 켰는데 마지막 레터를 보내게 됐다며 너무 아쉽다는 글이 올라왔다.

 늘 어디서든 행복하라는 말과 함께 그는 떠났다. 사실 그녀일지도 모른다. 그냥 나에겐 강대리일 뿐이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그였지만 너무 아쉬웠다. 지난 일 년간 글 하나로 사람을 이렇게 위로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앞으로 글을 계속 쓰게 될 원동력이기도 하다. 글 하나로 누군가의 마음을 사고 글을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자산이다. 어디서든 행복했으면 한다.

 온라인상에서의 이별도 이렇게 허무하고 슬픈데, 내가 좋아하고 친한 사람 사이의 이별을 얼마나 더 슬플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정말 수없이 많은 이별을 겪는다. 매일 하는 이별인데도 할 때마다 낯설다.  늘 새롭고 늘 마음이 적적하다. 이별 앞에서 초연해지는 것은 이별의 횟수와 비례하지 않는다. 마음가짐의 차이이다. 나같이 정이 많은 사람에겐 이별은 아직도 큰 아픔이다.

 그렇다면 이별을 할 때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

가장 우선시 돼야할 것은 웃으며 축하해 주는 것이다. 그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이별을 하든 웃으며 이별하는 사람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것이다. 어떤 목적으로 나와 헤어지던 그 사람은 본인이 선택한 더 나은 길을 향해 갈 것이고 웃으며 멀리서나마 그 상대방을 응원해 주면 그걸로 된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강대리도 2년 8개월간 일하는 시간 동안 10,000장이 넘는 답변을 받으며 너무 행복했었다고 한다. 일하는 시간이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겠지만 이별에는 과거의 힘듦도 어느 정도 미화되어 긍정적으로 여기게 된다. 떠남의 과정에서는 서로의 어떤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든, 싸운 적이 있었든, 웃으면서 끝을 좋게 마무리하며 이별의 순간을 맞자. 그것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힘을 주고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세상은 매우 좁기 때문에 누구를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아무도 모른다.

 취업을 한 친구가 있다고 가정하자. 나는 당연히 진심으로 그 친구를 축하해 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한테도 누군가 일자리를 주는 것도 아니고 진심 어린 축하를 했다고 해서 나한테 뭐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상대방이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 축하를 해주는 걸까? 그것이 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고, 주변의 좋은 결과에서 와닿는 에너지를 느낄 수도 있다. 이별을 안 좋게만 받아들이지 말고 축하하며 웃으면서 보내주자. 그것이 오히려 상대방과 나를 위한 길이다.


 멕시코에서는 대한민국의 제사와 같이 죽은 자를 기념하는 '죽은 자의 날'이 있다. 멕시코에서 정말 우리나라 추석처럼 의미 있는 날이다. 멕시코 사람들은 우리나라와 같이 제사상을 만들고 한없이 웃으며 축제를 벌인다. 우리나라는 경직된 분위기와 적막한 분위기 속에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지만 오히려 멕시코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왁자지껄 떠들고 축제를 벌인다. 그 이유는 죽음이라는 것이 이별이 아니라 어쩌면 새로운 만남이고, 웃으며 보내주는 것이 나에게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처럼 매 순간 이별 앞에 당당하고 기뻐하자.


어릴 적 정말 나랑 제일 친했던 세환이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휴지에 편지를 써서 버스 창문에 던졌었던 종은이는 지금 결혼했을까? 내 군대 맞후임 한없이 정 많던 선호는 지금 잘 지낼까?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걔네들도 나도 많은 것이 바뀌고 생각, 가치관들이 다르겠지만 언젠가 다시 한번 만나 지난 기억들을 추억하고 싶다. 현재 나는 하루하루 쳐내는 삶에 지쳐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오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이다. 진짜 소중한 것을 돌아보지 못했다.

 아이스크림 하나에 하루종일 행복할 수 있고, 아무것도 모르고 순수하게 공놀이만 하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면 지금 이렇게 때 묻어버린 어른의 사고를 지울 수 있을까? 그때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

 게임이 현실과 다른 점은 리셋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생에도 적용해서 그때로 내가 과연 되돌아가서 인생을 리셋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의 세환이와 그때의 종은이를 똑같이 만나고 똑같은 행동을 한다고 했을 때 나는 돌아가고 싶을까?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나하나 하며 맘 편하게 살아라고 해도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인위적으로 내가 더 좋게 만들어버린 미래 인생아무런 재미와 감흥이 없을 것이다. 심지어 내가 인위적으로 바꾸는 미래는 한계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비록 실패한다 한들 내 노력으로 직접 일궈내고, 그 사이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 재미도 있고 나에게도 더 좋다.


인생은 쏟아버린 물과 같다. 컵에 담겨있는 물을 쏟아버렸을 때, 우리는 그것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한번 지나간 시간, 한번 이별해 버리면 이별하기 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세월과 사람과도 이렇게 이별하며 사는 삶을 이제는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때 그 순간을 그리워만 하고 지금을 부정적인 상황으로 단정짓기보다 앞으로 더 멋진 사람, 멋진 순간들이 기필코 있을 것이라 스스로 확신하며 살아야 한다. 그 당시 내가 가진 결핍과 지금의 결핍은 다르기에. 그때의 내 상황과 지금 맞닥드린 현실은 또 다르기에.

 

단순히 그때를 회상하기보다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소중했던 시절을 창고에서 물건 꺼내듯 되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따로 간직하고 지켜가야 한다.

 회사동료나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을 한번 생각해 보자. 나에게 아무런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만 주변에 가득하다. 그들의 주말이 나도 궁금하지 않고 그들도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명백하게 조직의 목표인 일을 하기 위해 구성된 집단이기 때문이다. 내겐 믿을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나는 외로운 섬처럼 혼자 서 있다. 이럴 때일수록 내가 살아오면서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 온 사람들,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들, 잊혀졌던 세환이와 종은이, 선호처럼 그렇게 하나둘 끄집어내어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또 하나는 현실에 더 집중하고 과거에 조금이라도 후회를 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의 모든 순간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토록 처절하게 살아왔던 과거의 결과물이며 최선의 모습이다. 절대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앞으로의 일들만 생각하자. 이별한 이들을 그리워할 만큼 우리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또 그만큼 또 다른 좋은 사람이 내 곁을 채울 것이고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연의 나의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다. 나는 어릴 적의 나와 모든 게 그대로다. 성형수술을 하지 않았으니 얼굴도 그대로이다. 밝은 성격도 변함없이 늘 그대로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면 좋은 순간 기회 기필코 오고 좋은 사람들이 알아서 주위를 맴돈다. 이별하는 순간순간 속에서도 외부환경이 늘 바뀌는 과정에서도 내 모습, 나를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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