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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똑같은 삶이 지겨울 때

내 업이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소고

by 홍그리

70대 할아버지와 대화할 시간이 있었다. 본인의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 사람의 팔에 인생을 비유할 수 있다고 하셨다. 어깨선부터 팔이 접히는 부분까지는 10대, 팔이 접히는 부분부터 손목까지는 20대, 손목에서 마디 시작점은 30대, 손가락을 쪼개어 반은 40대, 나머지 반은 50대, 나머지는 없다고 하셨다. 인생에 무게가 날로 늘어나 50대의 이후는 쏜살같이 지나가 그냥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손으로 대충 크기의 어림을 재면 이것이 무슨 말인지 실감을 할 수 있는데, 요악하자면 10대와 20대가 인생의 50%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10대와 20대의 인생이 나머지 인생을 결정하는 것이니, 그때 어떤 인생을 계획하고 살았는지, 어떻게 처절하게 살았는지, 누구를 만났냐는 나머지 인생의 모두를 판가름 지을 수 있는 큰 요소임을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전적으로 맞는 말이기도 하다. 70년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얻으신 인생을 보는 통찰과 연륜은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이기에 그 누구도 무시하거나 부정하지 못한다. 이래서 경험이 정말 중요한 것이다.

단, 나와 생각이 다르거나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인생을 바라보는 참고로만 활용하면 된다.


할아버지는 평생을 사진작가로 사셨는데, 은퇴를 하고 집에 있으니 삶을 잃은 기분이시라고 했다. 그래서 은퇴 후에도 사진관으로 출근하고, 본인 자리가 없어도 옆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점심도 본인 돈으로 혼자 사드시고, 퇴근시간이 돼서야 집에 오신다고 한다. 물론 그 어떤 급여나 복지혜택도 없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본인의 인생을 통째로 잃어버린 느낌이 드신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족들이 빨래를 해주고, 밥을 주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지만 정작 내가 바라는 꿈, 자아실현을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다. 단 한 번도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거니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회적 여건, 프로그램, 평생을 사진작가로 살아온 그에게 세상은 어떤 것도 제공해주지 않았다. 아니 본인이 정보를 제공받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방법조차 모르는 것이다.

10대와 20대는 정말 인생에서 황금기고 중요한 시기다. 이때 사회가 바라는 30대부터의 한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죽도록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고 그 어떤 반항 없이 올바르게 커야만 한다. 물론 30대가 되어 뒤늦게 무언가 시도를 해서 대성할 수는 있겠지만 10대와 20대에 했던 노력의 2배, 3배는 해야 할까 말 까다.

특히 10대나 유아시절에는 스펀치처럼 지식을 빨아들이는 수용력도 한몫한다. 뇌가 덜 자란 상태에서의 지식의 습득은 시간이 지나서도 큰 영향을 끼친다. 북한이 아기들에게 '위대한 김일성 김정일 수령님의 은혜'를 외우게 강제로 시키기에 북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김일성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이다. 세뇌가 이렇게 무섭다. 미국에서 영어를 공부할 때에도, 멕시코에서 스페인어를 공부할 때에도 그랬다. 아무리 밤을 세서 공부해도 어릴 적 살다 온 학생들을 그 어떤 수를 써서도 이길 수 없었다. 어휘의 수준 자체가 달랐다.

지금 30대에 느끼는 것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아니지만, 이미 자리를 잡은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 포기할 것들, 자신감 하락, 경제적 이유 등 10대와 20대에 비해 더 고려해야 하는 사항들이 많다. 10대와 20대가 후회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당장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앞으로의 삶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

하 여기서 하나 의문점은 할아버지도 10대와 20대의 열정적인 삶을 얘기하지만, 지금 본인의 삶을 보면 돈도 못 벌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느낌이라 사진관에 맨날 출근하시는 모습이 결코 성공한 삶이라 보기 힘들다. 할아버지도 10대, 20대의 황금기를 정말 열정적이고 성실히 보냈기 때문에 70살이 다 되시도록 사진작가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우물만 파는 것이 얼마나 고독하고 어려운 일인지 무언가 하나라도 꾸준히 해본 사람은 안다. 정말 존경받아야 마땅할 지난 삶을 사셨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삶의 의미를 잃은 느낌이 드는 여생을 보내고 계신 걸까.

답은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는 대한민국 사회적 제도, 프로그램이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절대 본인의 노력부족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이가 40~50대가 되면 그 어떤 직장에서도 채용을 꺼리고, 20~30대한테 밀려 그 어떤 자리에도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경력이 많으면 급여를 많이 줘야 하기 때문에 그 어떤 기업에서도 부담을 느낀다. 이제 와서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20대부터 사업준비를 한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당연 밀릴 수밖에 없다. 노년준비를 위한 매뉴얼이 대한민국에는 부재하다.

서울에는 50 플러스재단이라는 공공기관이 있다. 이 공공기관도 최근 서울 평생교육원과 합병을 논의 중이며, 그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 50대 60대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원하는 공공기관인데 주로 재취업알선, 교육등 노년들의 제2의 인생설계를 돕는 데 그 역할이 있다. 다만 참여율이 저조하고, 대다수의 노년층들은 이런 기관이 있는 것조차 모르는 게 현실이다. 아무리 홍보를 해도 정말 일부의 노년층만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사실이고, 정작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만이 지원이라도 할 수 있는 형태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서울특별시 평생교육원, 서울 50+플러스재단 등을 보면 이 모든 것이 서울특별시에서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10대~30대의 시간들만 가치 있고,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고 큰소리치는 걸까? 정작 그렇게 살아온 본인들도 노년층이 됐을 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이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직업이 단순히 내 생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올곧은 본인의 철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유시민작가는 왜 보건복지부 장관직까지 한 정치인에서 작가로 돌아설 수 있었을까? 본인만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그저 작가가 하고 싶어서 작가가 아니고, 글이라는 것을 씀으로써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글을 쓰는 것이 이것이 스스로 옳다고 믿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자신 있게 그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작가라고 하면 돈을 벌기 위한 한평생 사진작가가 아니라, 이 일로써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그 업에 대해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그 업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시간이 흘러도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다.

남들이 취업을 한다 해서, 직장을 가진다 해서 그 일을 따라가기보다 조금 느려도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삶을 더 이롭게 한다.

서점에 가보면 10대에 꼭 해야 할 것들, 20대에 놓치면 안 되는 것들, 30대가 들어서면 후회하는 것 등등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 젊은 세대들 만의 책들은 너무 많지만 정작 노년층을 위한 책들은 없다. 작가 본인도 물론 그 나이가 안되어 겠지만 사람들이 큰 관심을 안 가지는 것에도 한 몫한다. 지금은 몸과 생각들이 가장 혈기왕성한 나이이기에 그들보다 수용이 빠르고, 배우는 데 있어 주저함이 없지만 오래 삶을 살아온 누군가의 격언이나 인생에 대한 조언, 삶을 바라보는 태도, 오랜 경험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이 위대하다. 지금도 우리가 논어, 공자, 맹자의 얘기들, 조상들의 위인전, 대한민국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그러한 이유다.


지금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셨다는 사진작가님의 말을 듣고 '나 또한 그 나이가 되면 그러지 않을까' 스스로 반성한다. 모든 것이 초연해지고, 직업을 누가 알선해 준다 해도 “지금 내가 그것을 해서 뭐 하지?”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지?” 로 단정 짓지 않을까 한다.


영화 인턴의 할아버지처럼 스스로 삶의 의욕과 열정을 되찾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만 나 혼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20대와 30대의 삶과 같이 60대 70대의 삶도 소중하듯, 정작 지하철 요금 무료라는 원론적이고 맹목적인 정책보다 더 실효성 있는 프로그램과 제도로 제2의 삶을 설계하는 노년층들을 위해 모두가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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