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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이 직업이면 마냥 좋을까?

좋아하는 것과 직업 사이의 감정적 파고에 대하여

by 홍그리

어렸을 때도 그랬듯 내 주변 사람의 생각도 모두 동일하다. 다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하며 우리는 그런 사람을 부러워하며 자랐다. 경제적인 벌이와 자아실현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을 살며 몇 안 되는 큰 복이다.

좋아하는 일은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고 투자 대비 능률도 오르기에 남들보다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손흥민도 축구만 보며 자랐고 좋아했기 때문에 미치도록 노력해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득 아이유가 한 말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노래를 정말 좋아했지만, 실제로 가수가 되니 노래 부르는 것이 싫어진 순간이 있었다고.


요즘 내 삶이 어쩌면 이와 비슷하다. 얼마 전 전 직장 동료의 결혼식이 있어 동기들이 모두 함께 모여 티타임을 가지는데 친한 누나가 이런 말을 했다. "외국어를 너무 좋아해서 글로벌팀에서 해외영업을 하는데 좋아했던 외국어공부 마저 싫어졌어" 이 말을 듣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나 또한 어릴 적 해외에 대한 동경이 가득했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주저 없었지만, 글로벌과 관련된 업무를 하면서 일로써 외국을 맞이하니 과거보다 관심이 없어지고 외국어공부 시간투자도 줄어드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글쓰기도 이와 마찬가지다. 정말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취미활동이다. 그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소개해준 적도 없었다. 올해 초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는데 그와 관련된 내용을 하나 둘 떠올리며 그대로 내 감정을 써 내려가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연한 계기로 그렇게 꾸준히 글을 써 내려갔고 어느새 책까지 낼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도 갖게 되었다.


내가 스트레스 덜 받기 위해서 한 일이 최근에는 무언의 압박을 느끼고 있다. 그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왠지 모르게 매일 글을 써야 할 것만 같고, 안 쓰고 하루를 보내면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지 못한 것 같은 의구심이 들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마저 나에게는 과제로 여겨지는 순간이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아하는 일에서 강박을 갖지 않고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계속할 수 있을까?

먼저, 조금 내려놓는 것이다. 그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매일 억지로 반복하며 스스로에게 강박을 느낀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 더 못한 것이다. 억지로 한 행동들에는 절대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재밌어서 더 알아보고, 공부하고 주체적으로 한 행동에서야 비로소 내가 보지 못했던 잠재력이 나오고, 좋은 평가가 나올 수 있다. 하루 이틀 쉰다고 내가 한 업무들과 써 내려갔던 글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리프레쉬하는 느낌으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 일들을 하면서 어쩌면 챙기지 못했던 것들을 돌아볼 수 있는 재정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기대치를 스스로 높게 설정해 두었기 때문에 강박을 느끼는 것이고, 그것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이 일에 서마저 현타가 오는 것이다.

주변에서 슬럼프가 왔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주로 정상적인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잠깐 번아웃이 온다거나, 내 노력, 연습 대비 뜻대로 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때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나는 이것을 '나 자신이 만든 감옥'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강박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성적부진이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시험이나 면접 전, 청심환을 먹는 이유는 조금 더 긴장을 완화하고 편안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다. 그래야 내 실력발휘를 후회 없이 할 수 있다. 조금 더 나 스스로를 비우고,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연습을 하자. 내가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이 세상은 그대 로고, 그 누구도 당신을 질책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다 나 스스로가 만든 감옥일 뿐이다.


둘째, 매사를 장기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친구와 드라이브를 하다 오렌지색의 터널이 나왔다. 생각보다 길더라. 30초가 넘었다. 이 터널을 지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흔히 칭하는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순탄한 인생을 살면서 그 자리까지 간 사람은 단언컨대 5%도 안 될 것이다.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정말 운이 좋거나 둘 중 하나다. 대부분이 수도 없이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고 나서야 그 경험치가 쌓여 그 자리까지 본인만의 노하우로 올라간 것이다. "빌딩을 올린 자는 4~5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라는 말이 있다. 빌딩을 살 수 있는 재력을 가진 건물주는 그 돈을 갖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고, 절박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무엇이든 장기적으로 마라톤을 하듯이 매사를 바라봐야 한다. '토끼와 거북이' 이솝우화는 어릴 적부터 아이들에게 조금 더 긴 호흡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알려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해서 처음부터 막 힘을 쏟으며 열정을 붓는다면 나중에 가서 본인이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금세 지쳐서 포기하고 만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 보다' 라며 스스로를 자책하기 바쁘다. 이태원스캔들에 나오는 박새로이처럼 복수도 장기전으로 생각하고 달려드는데 왜 내 인생을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면서 살려고 하는가? 빠르게 가지 않아도 정상에 도착하지 않아도 출발한 것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삶이다. 여유를 가지고 매사를 들여다보자.


셋째, 비난은 철저히 참고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해오다가 그 일이 업이 되어 부담을 느끼고 멈춰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타인의 비난의 화살은 더 스스로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데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나를 향한 비난은 절대적으로 참고만 하고 매몰되어서는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걸 명심하자. 연예인들도 본인을 좋아하는 단 한 명의 팬이라도 있기 때문에 악플이나 루머와 같은 힘든 순간들에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그 한 명은 그 연예인의 단 하나의 점이라도 마음에 드는 점이 있었기에 팬이 된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며 연예인의 자격이 있는 것이다. '노래를 정말 잘한다'라고 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기 때문에 오늘도 무명가수들은 더 힘을 내어 연습실로 향할 수 있다. 나를 지지해 주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두 배의 사랑을 주고, 두배로 더 힘을 얻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는 참고만 하되 머릿속에 담아두지 말자.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찾은 것 자체가 축복이고 그들보다 한참 더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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