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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May 14. 2023

왜 우리는 남들을 부러워하는가?

'부러움'이라는 양면적인 감정에 대하여

부러움이란 무엇일까? 왜 현대인들은 늘 누군가를 부러워하며 살까?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10위권의 경제력과 국가경쟁력을 가진 몇 안 되는 국가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행운을 타고난 것이고 본인이 의지만 있으면 아주 높은 확률로 의식주에 있어 걱정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주변 많은 사람충분히 괜찮은 삶을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쉽게 부러워한다. 부러움을 넘어선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이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자본주의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 상대적이다. 어떤 사람은 아무 노력 없이 한 번에 많은 부를 얻, 또 어떤 이는 죽도록 노력했는데 가난을 아직 못 벗어난 사람도 있다. 후자는 전자를 부러워한다. 왜 나한테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현실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기 바쁘다. 늘 화살은 자기한테 돌아온다는 것을 모른 채. 모든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가장 익숙한 부러움이라는 감정에 대한 양면적인 시각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부러운 감정 자체는 궁극적으로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그것은 바로 '동기부여'다. 부러움의 사전적 정의는 ‘남을 보고 자기도 그것을 이루거나 가지고 싶은 감정’이다. 즉, 다시 말해 내가 현재 가지고 있지 않은 결핍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라는 것.

 내가 천 원을 가지고 있다 치자. 그럼 똑같이 천 원을 가지고 있는 이를 부러워할까? 원, 오만 원, 만 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더 부러워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될까? 나 또한 만원, 오만 원을 벌고자 더 노력할 것이다. 그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 감정을 다시는 느끼지 않기 위해 인생을 더 치열하고 진하게 살아갈 것이다. 부럽다는 감정은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이유를 준다.

 뿐만 아니라, 생각지도 않은 영감을 얻다. 예를 들어 내가 웹개발자라고 해보자. 동기 웹개발자가 UX디자이너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야의 사람 협업하여 혁신적인 마케팅 툴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그것이 유명해진다면 나는 어떤 생각이 들까? 나는 웹개발이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에만 전념하며 살아왔는데, 능력 있는 디자이너와의 협업으로 큰돈을 벌었다면 나 또 사고의 확장이 일어난다. 나라고 못할 것이 없다. 왜냐? 나는 평생을 웹개발자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 분야에 있어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이 있고  얼마든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100% 새로운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벤치마킹을 통해 2등 전략을 사용하거나 후발주자로 큰 성공을 이룰 수도 있겠다. 회사 중에도 후발주자로 진출해 글로벌에서 성공을 거둔 기업이 많다. 똑같이 베끼지만 않는다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우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뭘 만들던, 뭘 창작하던, 소비자로 하여금 이로움을 주기만 하면 된다. 소비자를 더 재밌게 이목을 끌고, 더 편리하게 하고,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무조건 돈을 번다. 인간은 대개 이기적이기에 내가 경험한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고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참고만 할 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회사에 나중에 입사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사회생활을 해보면 알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른 사람들은 본인에게 관심이 없다. 따라서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나만 생각해 왔던 틀에 박힌 세계를 깨고 더 넓은 세상을 더 이롭게 하는 데 이바지한다.


 또 부러움은 ‘나’라는 주체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나는 노래를 정말 잘 부르는 가수인데 전혀 관계없는 물리학자를 부러워할까? 나는 정적이고 진지한 사람이어서 내성적인 성향인데 유투버가 백상예술대상에서 상을 받는 것을 부러워할까? 전혀 아니다. 부러움의 대상은 로또 1등에 당첨된 것과 같은 금전적인 문제를 제외하고 대개 본인의 관심분야에 한정한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작가들을 부러워하고,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프로게이머를 부러워할 것이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손흥민을 부러워할 것이다.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삶을 살아갈지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알려준다.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모르사람은 '어떤 주체를 부러워하고 있나' 생각해 보면 된다. 사람으로 살아온 이상 적어도 최소 한 분야에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그것이 곧 내가 관심 있는 분야, 좋아하는 분야다. 그쪽으로 내 삶을 발전시켜 나가려고 꾸준히 노력만 한다면 언젠가 그 부러움의 대상이 본인이 되어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단, 부러움의 감정을 가지는 데 있어서의 장점 이 모든 것들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여기서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부러움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질투나 분노, 욕심,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 자책으로 감정이 발전된다면 결론은 단 하나다. ‘불행’ 밖에 없다. 그 어떤 길로 가도 그 삶은 불행하다. 부러움이라는 감정까지 기필코 끝내야 한다. 욕심을 예를 들어보자. 10억이 있는 사람들은 우리 모두 부자라고 생각한다. 그 부자는 100억을 가진 사람을 안 부러워할까? 무조건 부러워한다. 그 100억을 가진 사람도 500억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앞서 열거한 분노, 욕심, 열등감은 한번 시작하면 끝을 모르고 계속되기 때문에 불행하다. 내 미래를 갉아먹는다. 무조건 ‘부러움’에서 끝내야 한다.

  인스타그램을 요즘 안 하는 MZ세대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OOTD #맛집 #셀카 등의 해시태그를 올리며 본인의 일상을 공유하는데 한 가지 맹점은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일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OOTD라고 해시태그를 지금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해 보자. 본인의 일주일 중 가장 멋있고 빛나는 옷을 입은 날이다. 나는 안다. 왜냐? 한 때 인스타그램 중독 경험자이기 때문이다. 남의 인생의 하이라이트, 아주 찰나의 순간을 우리는 그것을 보고 부러움을 넘어 자멸감, 열등감을 느낀다. 이보다 시간아 것이 있는가?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는 부러움이라는 선순환의 감정을 분노, 자멸감, 열등감으로 이동시키는 지름길과 같다. 상대방을 폭력 없이 무력화시키는 것은 SNS만 한 것이 없다. 내가 취업준비를 할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SNS를 끊은 이유다. 만약 그것이 담배같이 하루아침에 끊기 어려운 존재라면, 조금씩 줄여나가는 연습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내 밝은 미래를 위해서.


 최근 결혼을 어느 정도 준비하며 느끼는 것은 주위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는 것이 비슷비슷하다는 것이다. 집은 어디야? 돈은 얼마 모았어? 전세야 자가야? 집에 얼마를 보태주냐 등등 대개 이런 질문들을 대놓고 하기엔 본인들도 무안한 지 어떤 한 주제에 대해 섞어서 은연하게 물어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본인의 삶과 비교를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타인에게 이런 질문들을 통해 본인이 위안 및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는 것을. 자본주의에 살아가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적적하다.

 결핍에서 오는 이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확장시키기보다 그냥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걸까. 부럽다는 것은 그 말을 듣는 상대방도 내가 타인에게 부러운 감정이 드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단 이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하나다. ‘나는 어디 수준에서, 어디까지 매사에 만족할 수 있나?’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만의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원룸에 살아도 본인이 만족한다면 그것은 성공한 삶이다. 나는 방 2개까지는 평생 불편함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코드쿤스트가, 유튜브에 나오는 스윙스가 3층, 4층 집에 산다고 해도 그냥 보고 흘리고 만다. 전혀 부럽지 않다. 청소하느라 힘들겠다 이 생각까지도 든다. 나만의 만족 기준을 따져본다면 부러움이 곧 행복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으며 나만이 내 기분을 컨트롤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가 얼마큼 어떤 것에 만족하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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