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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May 31. 2023

396만 원짜리 시계를 찹니다

이 돈으로 시간을 더 샀길!

한동안 액세서리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침에 차고 다니는 것이 기억이 안 날 때도 많거니와 어릴 때부터 반지나 팔찌, 시계 등을 잘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시계 같은 경우에는 만약 산다고 해도 요즘 스마트워치(갤럭시워치, 애플워치 등) 핸드폰과 즉시 연동되고 저렴한 가격에 잘되어 있기 때문에 비싼 시계는 엄두도 못 내지만 살 필요성자체도 못 느꼈다. 특히 미니멀리스트라는 새로운 인생을 배우며 사치품에 관해서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와중에 여자친구가 천만 원을 보여주며 결혼 예물로 전부 다 사고 싶은 거 사라고 무엇을 갖고 싶냐고 하자 처음엔 받지 않겠다고 했으나 백화점상품권도 마침 여분이 있어서 평생 찰 생각으로 200만 원을 투자해 시계를 사줬다. 내 인생 첫 명품(?) 시계다. 나머지는 다 우리 살림에 보태 쓰라고 했다.

 시계는 태그호이어 아쿠아레이서 새 모델로 정했다. 시계에 대해 과거에 공부를 잠깐 했었는데 설명을 하자면 매니아가 아니고서야 롤오까를 사면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롤렉스, 오메가, 까르띠에다. 없어서 못 구하는 시계이고 가격은 정말 최소로 잡아야 1000만원이다. 이런 시계를 구입하는 사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나지만 이해 가는 부분을 설명하자면 대대손손 물려줄 수도 있고 몇십만 원 오버홀을 하면(시계 같은 기계를 분해하여 점검 및 수리하는 일) 새것처럼 몇십 년 사용할 수 있다. 나는 어쩌면 그다음으로 인지도로는 유명한 태그호이어를 구매했다. 인지도에 비해 최근 성능면에서 구설수가 많은 브랜드이지만 내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브랜드라 후회치 않는다.

과거에 시계를 공부할 때에도 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명품시계를 차는 사람들은 비싼 돈 주고 스마트워치보다 더 불편한 걸 사는 이해 안 가는 사람들’ 이라고만 판단하며 살아왔다.

나는 명품축에도 끼지 못하지만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일반직장인 월급의 3배~많게는 4배에 달하는 1500만 원~2000만 원짜리 명품시계에 왜 집착하는 걸까? 오랫동안 이것에 대해 고민하고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내가 396만 원짜리지만 나에게는 어느 정도 고가의 시계를 차고 몸소 느낀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미니멀한 삶을 추구하며 이런 삶은 틀렸어!라고 생각해 왔던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다.

 

첫째는 시간의 소중함이다. 시간을 핸드폰 시계에만 의존하는 삶과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는 삶은 차원이 다르다. 그것이 명품시계든 스마트워치든 아무 상관이 없다. 값어치 있는 시계를 산 뒤로 스마트워치랑 다른 점은 그 순간이 귀찮다고 안 차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아까워서라도 맨날 찬다. 손목시계를 매일 차고 다니면 매일 시계를 보기 때문에 순간순간의 시간의 흐름을 실감할 수 있다. 즉,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내가 오늘 5분 더 잠을 잔다면 5분 더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고, 3시간 술을 마신다면 그다음 날까지 영향이 와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그만큼 내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시간을 철저히 관리해야 함을 느낀다. 시간을 계속 봐야 내 삶을 철저히 쪼개어 효율적으로 살 수 있다. 수험생들도 하루일과표를 작성할 때 9시~10시 언어영역, 13시부터 15시 수리영역 등 철저히 시간을 쪼개어 공부를 한다. 매사에 시간을 정해놓고 살아야 실수도 없고 제한시간 내 내 일을 끝마칠 수 있다. 20대, 30대 젊을 때일수록 시간을 내가 어디에 투자하고 있냐에 따라 앞으로 내 모든 삶이 달라진다.


둘째, 지위에 어울리는 최소한의 격식이다. 여자는 팔찌, 목걸이, 시계, 가방 등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시계는 어쩌면 남자로서 유일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액세서리다. 얼마 전 국회의원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도 그 직위에 맞는 위원님의 자리와 격식에 어울리는 시계를 찰 것이다. 물론 프레젠테이션에 카시오 시계를 차고 나왔던 스티브잡스는 예외이다.  자리에 맞는 최소한의 격식. 이건 시계를 찬 본인뿐만 아니라 중요한 자리의 그 사람과 지위에 어울리는 가치를 부여한다.


셋째, 자신감과 본인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다. 인생에 불변의 법칙이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은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거 없는 자기애가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어제보다 좀 더 나은 나 스스로를 발견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무의식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한다. 내가 350만 원짜리 시계를 찼다고 해서 이것이 과시가 아닌, 내 수준에 맞지 않는 시계라고 단정 짓기보다 나는 이걸 충분히 찰 수 있는 사람이야.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계속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암시하다 보면 진짜 그런 사람이 된다.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덤이다. 래퍼들이 몇천만 원짜리 시계를 차는 이유는 단순히 본인의 자산을 과시하는 목적이 아니다. “나보다 랩 잘하는 사람 없어! 난 나 스스로 이 돈을 벌어서 그에 걸맞은 시계를 찬 거야”라는 스스로의 무의식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오늘도 이 시계와 함께 힘차게 하루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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