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아가 만들고 부른 '운이 좋았지'.
이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유명한 곡이고,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노래이다.
그런데 어제 오랜만에 이 곡을 듣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태우며 눈물을 뽑아내고야 마는 그런 화려한(?)발라드 곡보다
내내 담담하고 잔잔한, 네가 그리워 죽겠다는 그 흔한 말 한마디 없는 이 노래가 더 슬프게 느껴지는걸까?
이 곡은 마치,
내게 남은 마지막 사진 한 장을 날려보내기 직전에 부르는 노래 같다.
네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고, 또 매일 한번씩 꺼내보기도 했고, 찢거나 태워버리려고도 해봤으며,
아예 처음부터 없던 사진처럼 잊으려고도 해본 후.
마침내 손에서 놓아버리기 위해 사진을 들고 서있는 느낌이랄까?
결국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사라져서도, 포기가 되서도, 이 모든 게 납득이 되서도 아니다.
이제 그 사람이 보고싶지 않아서, 잊혀져서도 아니다.
너무 슬퍼서다.
아직도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게 슬퍼서, 그게 너무 힘들어서.
줄곧 나오는
'운이 좋았지'라는 말이 거짓이라는 뜻이 아니다.
애써 합리화하는, 자조적인 말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니 후회가 없다는 말도,
긴 터널이 다 지나가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됐으니 웃을 수 있다는 말도,
아주 자잘한 후회나 여운도 내게 남겨 주지 않았으니 나는 운이 좋았다는 말도,
모두 진심일 것이다. 진정으로 깨달았고, 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픔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아주 오래도록 말이다.
비록 내가 그 일을 통해 단단해졌고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하더라도.
누군가를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어 운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그 깊은 슬픔이 어떻게, 무엇으로 가려질 수 있을까?
포기와 체념의 감정이 아닌
오래된, 그래서 깊어진 슬픔을 부르고 있는거다.
너무 운이 좋았어서 잊혀지지도 않는 그 모든 추억과 감정을 가만히 끌어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