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질문은 질문으로 남겨두는 것이 오히려 좋다.
속 시원하게 퇴사도 했고, 가족과 늘 바라던 제주 한 달 살기도 다녀왔고,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여유가 없었던 이유.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방향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이 질문에 답을 쉽게 달기 어려운 이유는 두 가지 고민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현실적인 돈벌이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장기적인 삶의 방향성에 대한 것이다.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프리 워커 또는 1인 사업가라는 새로운 페르소나를 입기 위해 여러 강의를 들어보았다. 나를 하나의 브랜드로서 브랜딩 하는 방법, 강의를 론칭하는 방법, 월 1000만 원 버는 방법, 무자본 창업 등 참 다양한 방법들이 세상에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선뜻 시작하지 못했던 것은 방향성에 대한 부분이 명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요즘 20대 젊은 친구들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일찍이 자신의 살 길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탐구를 하는 것이 무척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20대일 때는 그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MZ세대들이 주식, 부동산, NFT 등 투자와 재테크를 공부할 때 우리는 토익, 토익 스피킹, 오픽과 같은 스펙 쌓기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겨우 취직이라는 높은 문턱을 넘었으니 그다음은 순리자로 살아가는 것 말고는 리스크가 큰 선택처럼 보였다.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를 두고 선뜻 방향을 잡지 못하는 건 지난 20년의 세월 동안 삶을 근시안적으로 살아온 결과였음을 깨달았고, 생각 없이 보내온 시간이 그저 야속했다. 퇴사 후 1년이 지나는 동안 계속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이라는 긴 항해의 방향을 찾아가는데 1년은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적어도 동서남북 방향은 정해져야 힘을 집중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보니 우선 방향 설정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삶의 방향 설정이라는 것이 말이 참 거창해서 그렇지 결국 나의 가장 솔직한 욕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완성 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나의 욕망을 발견하는데 유용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1. 글쓰기
다른 여러 가지 방법들이 세상에 존재하겠지만 나는 글쓰기만큼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에세이, 일기, 블로그, 짧은 메모 등 어떤 형태의 글쓰기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순간 떠올랐다 금세 휘발되기 쉬운 감정을 붙잡아 기록하는 것이다. 기록을 할 때는 맞춤법, 문장 구성 등을 생각하지 말고 순간 적어 내려가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검열관이 존재하기에, 눈으로 읽어가며 글을 쓰기 시작하면 스스로 필터링을 시작하기 마련이다. 가장 솔직하고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배어 나오던 것이 점점 정제되고 순화되어 마치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로 바뀌어 버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시간이 지나 내 글을 꺼내 보았을 때 스스로 모호해질 수 있다. 그러니 빠르게 가장 날것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 필터링은 공개된 플랫폼에 글을 옮길 때 하면 된다.
나의 경우 스마트폰 메모장에 순간의 생각들이 쌓여있다. 거기에는 정말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 배어있다. 때론 문장으로 또 어떤 경우에는 단어들의 나열로 기록된 것들이 한 편의 글이 되어 브런치에 발행되었다. 남겨진 기록은 나의 삶의 궤적이 되어 내 감정의 평균을 찾을 수 있게 만들었다. 이 부분에서 한 가지 팁을 더 남겨보자면 그래서 양적으로 많은 글을 남기는 것이 이롭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감정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글이 쌓이면 삶의 방향을 찾아가기 쉬워진다.
2. 독서
두 번째 방법은 독서다. 너무 뻔한 이야기이지만 뻔한 이야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을 만큼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마 지난 1년 사이 읽은 책의 수가 39살까지 읽은 책의 총 량 보다 월등히 많을 것이다. 그만큼 독서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삶의 문제 앞에 서게 되니 앞서 고민하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답을 기록한 사람들의 글을 집어 들게 되었다.
흔히들 책은 15,000원에 저명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가성비가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고 한다. 동의한다. 질문을 던지며 저자의 글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시간은 그들의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된다. 더 좋은 것은 그것을 적용하고 실행에 옮겨 보는 것이겠지만 일단 읽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3. 나의 역사와 미래 커리어 기록
마지막 한 가지 방법은 나의 지난 역사를 기록해보고 앞으로 5년 또는 10년 뒤의 삶을 상상하며 적어보는 것이다. 나는 늘 나에게 지금의 나와 다른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역사 연표를 기록해보면서 깨달았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나로 살아가고 있었음을.
MBTI 검사가 유행이었다. 몇 가지 질문을 통해 내가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의 본심은 좀 더 특별한, 그리고 보다 명확한 나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물론 전문가의 견해가 더해진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어떤 문장으로 확연하게 나를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나의 과거를 시간 순으로 기록해보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 커리어 기록이다. 내가 어떤 삶을 성취하고 싶은지 상상력을 동원해 기록해보는 시간은 살아가고 싶은 방향을 느껴볼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이야기를 적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나를 근거로 하여 선을 이어 그리듯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은 어쩌면 평생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쯤 되니 삶에 답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오히려 좋다. 답이 없으니 내가 그려 나가는 게 곧 나의 답이 되는 것이니까.
퇴사 후 얼마 동안 마음이 불안하고 기복이 심했던 이유는 그만큼 내 시선이 나에게 있지 않고 남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얼마나 잘 난 사람들이 많은지, SNS를 보고 있으면 상대적 박탈감이 절로 밀려든다. 아니 그냥 못하면 바보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나에게로 집중하기 시작하고 나와 독대하는 시간을 더 많이 보내기 시작한 뒤로는 오히려 저들의 성공담이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된다.
한 가지 예로, '바라는 삶을 종이에 적어보세요. 그러면 이뤄질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예전의 나였음 '되고 나서 하는 헛소리'라고 치부했었다면 지금은 '나도 한 번 해봐야겠다'로 마음이 바뀌었다. 실제로 경험하기도 했으니까.
나의 다이어리에는 '셀프 탐구일지'라는 이름으로 바라는 삶을 빼곡히 적어놓은 부분이 있다. 이제는 불확실한 삶이 두렵기보다 기대가 된다. 순간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돌아보니 분명 삶의 방향이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삶의 방향에 대한 질문은 질문으로 남겨두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설레는 모험이 되고 성장의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질문은 다음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만능 키 같기도 하다.
결국 어떤 모습으로든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