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원하는 삶을 향한 한 걸음
퇴사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전적으로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뜻한다. 매일 지켜오던 출퇴근 시간의 루틴이 더 이상 지켜질 필요가 없는 루틴이 된다는 의미다.
1년 전, 회사를 그만둘 무렵 가장 홀가분한 기분을 갖게 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차로 왕복 3시간의 출퇴근길은 마치 도로 위에서 버려지는 시간처럼 느껴졌고 심심의 피로를 가중시켰다. 그런 요소가 사라진다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퇴사가 내포하고 있는 또 다른 의미는 무엇일까. 여기서부터는 개개인마다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월급과의 단절, 안정된 삶으로부터의 이별, 경력 단절, 이직 준비, 관계의 단절, 그리고 소비 생활의 변화 등 현실과 직결되어 있는 다양한 것들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만큼 각오가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퇴사는 살아온 익숙한 삶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한다. 만약 '단절'만 존재한다면 퇴사는 해서는 안될 위험한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삶이 가르쳐 준 지혜가 한 가지 있다. 어느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즉, '직장인의 삶'이라는 문이 닫히면 '자유로운 삶'이라는 문이 열린다.
우선 좋은 건 시간의 통제권이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다는 점이다. 더 부지런해질 수도 있고 반대로 게을러질 수도 있다.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이 존재하지 않고 그저 매일의 선택만이 존재할 뿐이다. 또한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매일 부대끼며 지내던 사람들과의 이별은 불특정 다수와의 만남의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 시대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이 다양해진 요즘 마음만 먹으면 수 십 수 백 명과 소통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소득의 단절도 누군가는 오히려 퍼스널 브랜딩을 통해 월급보다 더 높은 소득을 만들어내기도 하니 안정적인 고정 수입과의 단절이 꼭 리스크가 되는 것은 아닌 듯싶기도 하다.
정리해보면 퇴사는 단절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연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나에게는 이런 다양한 의미들보다 더 큰 의미로 남은 것이 있는데 진짜 나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겹겹이 둘러 입고 있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어던지고 나니 이제야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
매일 나를 사유하며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의 존재를 풀어내기 시작하니 그동안 외면해오던 나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직장 생활을 할 때와 비교하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오히려 마음의 풍요를 느끼고 살아갈 수 있는 건 그만큼 과거에는 나의 존재의 빈곤이 더 컸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본래의 나를 잘 보듬어 주지 못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사회가 요구하는 페르소나를 입고 살아가야 하는 삶은 때론 본연의 나를 고립시키기도 한다. 회사를 다니며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경험, 삶이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경험은 본래의 내가 보내는 심연의 외침일 수도 있다.
'나'라는 존재를 지키기 위한 외침 말이다.
요즘 시대의 콘텐츠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지나치게 퇴사를 종용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마치 퇴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한참 퇴사를 고민하던 때의 글을 되돌아보면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었던 것 같다.
퇴사 후 1년이 되어 다시 퇴사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진다. '꼭 퇴사가 답일까요?'
물론 나에겐 답이었기에 난 이 길을 선택했지만, 사람들 말처럼 회사 밖의 삶은 때론 외롭고, 무척이나 고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글쓰기를 통해 존재의 빈곤에서는 벗어났지만 퇴사 후의 삶을 현실적으로 표현하자면 '가까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삶을 보다 진중하게 고민하고 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향을 찾기 위한 나의 선택 때문이겠지만 많은 경우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만큼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고용이 불안정한 사회에서 퇴사가 담아내는 심리적 무게감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고민의 출발은 감정이었을지 몰라도 선택은 이성적으로 하는 것이 이후의 삶을 견디는데 도움이 된다.
어떤 삶을 살아가든 뒤따르는 모든 상황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러니 상황에서 한 발짝 물러나 먼저 한 번이라도 자신을 더 돌아보자.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실마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