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의 삶을 견딜 수 있게 만든 힘. 아빠이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축복이다. 한 아이를 그리고 가정을 책임진다는 것은 너무나 위대한 모험을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에서처럼 위대한 여정에는 항상 많은 일들이 뒤따른다. 그리고 앞장서야 하는 자리에 선 누군가에게는 그만큼 책임감이라는 실재하지 않는 무게감이 실리기 마련이다.
사람이 이전의 살아오던 면모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딱 2가지 조건만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나는 죽음을 맛보았거나 다른 하나는 신을 만났을 때다. 근데 난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부모가 되는 것이다.
물론 부모가 되는 것은 앞의 두 가지만큼의 힘이 작동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효과는 이에 못지않는다고 믿는다. 누군가에게는 동의하기 어렵거나 공감이 잘 되지 않는 부분일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빠가 되었다'라는 사실만큼 묵직하고 간절하게 만드는 이유는 또 없다.
퇴사하기 전부터 고민하고 꿈꿨던 삶이 있다. 나는 돈과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삶을 바랐다. 당연지사 단기간에 이뤄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늘 전투태세를 준비하는 검투사처럼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삶은 기대와 달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길래 뭐라도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단히 무언가를 했다. 하지만 분명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것도 일어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은 아이와 아내와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다녀오니 금세 바닥을 보였다. 꿈꾸는 삶을 위한 투자라는 마음으로 책을 구입하고 강의를 듣다 보니 지출은 조금씩 늘어났지만 소득은 이를 충당할 만큼은 되지 못했다. 그나마 아내의 소득과 실업급여가 전부였으니.
많은 생각이 오갔다. 나의 선택을 수차례 돌아봤다. 퇴사를 선택한 데에는 회사의 사업장 이전이라는 그럴 수밖에 없는 요인도 있었지만 시기에 대해서는 조금 더 조율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불안감이 감돌 때마다 그때의 선택을 돌아보고 또 돌아봤지만 답은 여전히 한결같았다. 일단 퇴사라는 선택지를 뽑아 올린 과거의 나를 그만 괴롭히기로 했다.
가장 잠을 못 이루게 만드는 건 역시 현실적인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끊임없는 질문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답을 찾기 위한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그저 속만 끓이던 시간, 내 눈에만 보이지 않는 듯한 '나'라는 존재를 찾기 위한 고뇌의 시간을 견딜 수 있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내가 '아빠'이기 때문이다. 매일 마주하는 각박한 세상에서 잔뜩 웅크린 나의 마음을 펴주는 존재.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인생을 어떻게든 답을 찾아가게 만드는 존재. 내 아이가 있다는 사실은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갓난쟁이일 때부터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이제는 아빠를 쥐락펴락하는 슈퍼갑이 되어버린 녀석. 아들의 존재는 현재 나를 지탱하고 하루를 부여잡는 가장 큰 동기가 되어준다. 책임감은 분명 부담과 스트레스가 동반되지만 아들의 존재는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당근과 채찍이다.
마흔 살 이전의 삶은 큰 고민 없이 살아온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었다면 아이가 태어난 마흔 살부터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졌고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훗날 아이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매일 고민하고 실천해보기를 반복한다.
누구나 자신이 행동하게 만드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환경설정이 가장 큰 요인이 된다. 그리고 현재 핵심 동력이 되는 환경은 가족이다. 어쩌면 퇴사라는 선택이 기세가 아닌 허세였다 할지라도 오늘의 나는 그것이 기세였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움직이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하기에 아빠가 되었다는 것은 나에게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