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너는 핑크퐁 코딩 컴퓨터를 해라, 아빠는 글을 쓸 테니.
방에서 책을 좀 읽어 볼까, 글을 좀 써 볼까 싶어 앉아 있었더니 아이가 들어와 한 마디 한다.
"아빠 나도 일 할래."
몇 번 줌 미팅을 할 때 무릎에 앉혔더니, 방에 들어가 있으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줌 미팅 중 노트북을 만지려고 손을 뻗는 걸 몇 번이고 저지했었는데. 핑크퐁 아기상어 코딩 컴퓨터가 생기고 난 뒤로는 제 장난감을 들고 들어온다. 그리고 옆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이는 아빠의 행동을 하나 둘 따라 하고 싶은가 보다. 입으로 내는 우스꽝 스런 소리도 따라 하고, 막춤을 추면 옆에서 따라 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근본 없는 스텝을 밟으면 어설픈 움직임으로 그걸 또 흉내 낸다. 아이랑 함께하는 시간은 이처럼 순간순간이 충만하다. 아직은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해 주니.
아빠가 되니 아이가 나를 닮아가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 닮지는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생긴다. 나의 모난 부분들. 나의 부족한 부분들. 약한 부분들은 닮지 않으면 좋겠다. 원래 다음 세대가 출시될 땐 이전 버전에 버그를 개선하고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출시되지 않던가. 그렇다면 내 아이는 응당 나의 버그가 개선된 버전으로 태어났을 거라 믿어 본다.
근데 또 달리 생각해 보면 나의 연약한 부분들을 닮았다면 차라리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기 쉬울 것 같기도 하다. 이미 겪어 봤으니까.
닮아서 좋으면서 또 닮아서 걱정되는 마음. 아빠의 마음이란 게 참 아이러니 하다.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 많아지고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깨달은 건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하나라도, 그리고 하루라도 더 빨리 아는 게 좋다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변화해도 그 세상을 살아가는 건 나 자신이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자유로운 변주가 가능하다.
단지 앞서 경험해 봤다는 이유만으로 아이의 선택을 대신하고 싶지 않다. 요즘 자주 떠올리는 생각이 '정답'과 '해답'이다. 옳은 답으로서의 정답은 인생에선 오히려 오류를 범한다. 삶은 각자의 질문에 답을 해나가며 성장하는 과정인 만큼 정답이 아닌 해답을 찾아가는 힘을 길러야 한다.
어른이기에 정답을 제시하는 건 어쩌면 가장 이기적인 쉬운 선택인지도 모른다. 또한 아이에게 답을 찾기 위해 고뇌하는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돌아본 나의 삶에 가장 부족했던 시간. 해답을 찾는 시간이었다.
이제야 나의 삶은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뒤늦게서야 이 시간을 보내지만, 한편으론 다행인 건 이 시간에 아이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읽고 쓰며 나만의 삶을 찾아가는 아빠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며 성장한다면, 내 아이가 조금은 해답을 찾아가는 삶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내 아이가 아빠와 엄마를 보고 거울삼아 자신을 비춰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럴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할 수 있는 아빠가 될 수 있길 바란다. 가족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