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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ul 30. 2024

나는 선택의 자유를 갈망한다

당신에게 자유는 어떤 의미인가요?


나를 포함한 주변에는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중 많은 경우 '경제적 자유'를 원한다. 그 이유는 경제적으로 충족되면 이후 모든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것을 갈망한다. '이 정도면 돈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있겠다'싶을 만큼의 부를 쌓고 싶은 유일한 이유는 '선택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고 싶어서다.


만약 더 이상 돈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부가 있다면 현재의 삶을 그대로 선택할 것인가?


비슷한 질문으로, '만약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 내일 출근하실 겁니까?'라는 게 있다. 아마 99%는 당장 때려치운다고 답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현실의 선택을 타협으로 여기는 사람일수록 답은 '아니요'라고 할 확률이 높다. 마치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삶이 달라졌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그리고 또 마치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는 그 선택 때문이었다는 구실을 찾는 마음으로. 


같은 질문에 대해 나의 답은 '대부분 그렇다'이다. 물론 직장인이었다 해도 당장 때려치울 마음은 없다. 오히려 더 여유롭게 직장생활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나의 선택에는 늘 가족과, 내가 속해 있는 모임이나 공동체가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모두 내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위의 질문에 '대부분 그렇다'라고 답하는 이유는 아무리 경제력이 달라진다 해도 여전히 내 선택의 기준에는 이들이 존재할 것이기에 유사한 답을 내어놓았을 거라 생각했다. 


두 번째 이유는, 지난주 코칭을 받을 때 실제로 같은 질문에 대해 답을 해봤고 그때 나의 답에서 미래의 삶이 현재와 크게 달라져있지는 않았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이유는 지금의 나는 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기에 굳이 확연히 다른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다만 '소유'의 측면에서는 분명 다른 선택을 내릴 것이다. 만약 소비에 제한이 없는 부를 가지고 있다면 굳이 소비를 통한 결핍을 채우려는 욕구가 지금보다는 작았을 테니.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떤 선택의 자유를 갈망하고 있는가?


지금 내가 갈망하는 건 시간과 공간 선택에 대한 자유다. 가끔은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것들이 반대로 나의 장애물로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위에서 언급한 가족이나 모임이 선택에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다 보니 자연스레 고려 대상이 된다.


이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판단할 수 있는 결단력 또한 온전히 내 몫이지만 완전히 독립적인 판단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래서 늘 절충안을 택하는 게 익숙해졌다. 


얼마 전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기억에 남는 한 마디는 '용도'였다.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길들여진 것은 '용도'였다는 것.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이바지할 수 있어야 쓸모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에 갇혀 버린 체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지금까지의 선택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나 중심이 아닌 내 삶에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고려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물론 그것이 틀렸다거나 잘못되었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가장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것이 자기희생일 수도 있다. 다만 한 번쯤은 되돌아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상황에서 내가 진짜 바라는 건 무엇이었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했는지. 


퇴사 후 지금껏 나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로 남겨진 게 바로 이것이다. 좀 더 이기적인 선택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내면의 목소리는 지금도 계속 귓가에 맴돈다.


사실 우린 이미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살아간다. 문제는 선택의 폭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고 그 너비와 상관없이 강요되는 부분도 분명 존재하고, 모든 환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제약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의 통제권 밖에 있는 것들을 제외하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내가 나에게 관대해지기보다 가장 냉정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가령 나의 시간을 계획하고 실천함에 있어서도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였다면 아마 누구도 그 선택을 방해하려는 여지를 주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매일 나에게 관대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결국 이 또한 내 선택의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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