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더가드 수수께끼

Day 12, 에어스타인 (Herrstein) , 독일

by 여행에 와 락

내가 씨기와 르나테를 처음 만난 건 2014년이었으니 벌써 꽤나 오래된 인연이다. 스티븐은 그들을 훨씬 전에 만났지만, 사실 중간에 전혀 교류가 없었으니 그리 절친이라고 할 수는 없는 관계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우리를 늘 환대해 주고 최선을 다해 맞아준다. 특히 씨기의 어머니인 에르나는 더 반갑게 더 아쉽게 우리를 반기고 작별한다. 그런 씨기가 에어스타인에서 만나자고 제안을 했다. 듣보잡인 타운인데, 아주 가볼 만한 곳이라고 한다. 마침 라인가우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던 씨기와 르나테가 중간 지점인 이곳에서 만나자고 하니 궁금반 기대반으로 두 시간가량을 달려가 그들을 만났다.


정확한 발음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그들의 발음을 흉내 내어 에어스타인이라고 따라 했다. 에어스타인은 ( Herrstein) 은 생각과는 달리 지극히 작고 평범한 마을이었다.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관광지를 기대했는데 그건 아닌듯하다. 다만 독일사람들이 관광을 오는 듯했다. 카메라를 메고 가족끼리 온 독일 관광객들만 몇 그룹 보았다. 레스토랑이나 카페도 하나뿐이고 그 흔한 기념품 점도 없다. 대신 유서 깊은 작은 중세마을의 면모가 아주 두드러지는 매력 있는 곳이었다. 이래서 자국민들이 좋다고 찾는 관광지가 조용하지만 진짜배기인 곳이 많은가 보다.


에어스타인의 레스토랑


씨기가 점심예약을 잡은 레스토랑은 아마도 이 마을, 혹은 이 부근에 하나밖에 없는 듯한 레스토랑이었는데 옛날 집을 그대로 두고 테이블 세팅을 한 듯하다.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돌 벽도 운치 있고, 창가나 벽에 있는 앤티크 가구와 데코가 특이하고 예뻤다. 주방과 홀에는 3명의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명랑하고 활기차게 일하고 있었는데 주방 바로 앞에 앉은 우리에게도 덩달아 명랑 에너지가 옮겨왔다. 덕분에 우리도 시종 즐겁게 업비트로 점심식사를 했다. 마을의 구석에 있는 이 집 레스토랑이 로컬 사람들에게 알려진 모양이다. 예약이 없다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야외 테이블도 꽤 많고 이 주택의 아래층과 위층까지 테이블이 있는데도 말이다. 맛집으로 유명한 듯했다. 독일 음식점답게 주로 고기메뉴여서 나는 근방 강에서 잡아 요리한다는 훈제 송어요리를 먹었는데, 민물고기 냄새도 하나도 안 나고 아주 맛나게 먹었다. 민물고기도 훈제를 한다니, 훈제 연어만 먹어본 나로서는 같은 맛이 나는 두 요리가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훈제 송어요리와 잼으로 장식된 창가


레스토랑 내부


점심 식사 후 에어스타인 구경에 나섰다. 씨기가 이끄는 대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 비슷한 곳으로 갔다. 성 같기도 하고 교회 같기도 하다. 아마도 교회겠지. 그런데 안내문에 힐더가드라는 이름이 나온다. 수녀모습의 심벌을 그려 넣었다. 힐더가드 폰 빙엔 ( Hildergard Von BIngen)의 그 힐더가드인가? 안내문 만으로는 이 힐더가드가 내가 아는 그 힐더가드인지 알 수가 없다. 힐더가드의 스승이 이 지역 군주의 여동생이었다는 말만 있다. 나는 힐더가드가 시무했던 교회인가 싶어 집에 돌아가 검색을 해 보았다.


에어스터인 교회는 교회이자 성인 것 같다. ( Castle Church )


마을에서 올려다본 성


성으로 올라가는 입수의 안내문


힐더가드 폰 빙엔 (Hildergard Von Bingen) 은 내가 피아노를 전공할 때 음악사시간에 배운 이름이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면 힐더가드를 모를 리가 없다. 유난히 빡셌던 중세 음악사 시간에 배운 힐더가드 폰 빙엔 ( Hildegard Von Bingen),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수년 전 라인가우의 빙엔(Bingen)이라는 마을에 갔을 때 이 빙엔 마을이 힐더가드와 무슨 연관이 있나 궁금했었다. 힐더가드 폰 빙엔이란 '빙엔지역의 힐더가드'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처 검색해보지 못했다가 이번 기회에 검색해 보니 이 힐더가드들이 모두 동일인이다.




10살 때 수녀가 된 힐더가드는 후에 저자, 과학자, 의사, 문학자, 언어학자, 신학자, 식물학자, 철학자에 작곡가가 된다. 40세 이전까지는 여성 차별 때문에 조심하며 조용히 지내다가 어느 정도 지위가 올라간 40대 이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강하고 용감한 여성으로서 귀감이 되는 듯하다. 게다가 세인트로 칭함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녀가 일생동안 거쳐갔던 곳들을 137Km에 거쳐 필그림 트레일로 만들어 놓았을 정도로 아직도 그녀를 기리고 따라가려는 여성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이곳도 그 필그림 트레일에 속해있다. 그런 그녀가 중세에 태어났으니 그 천재성을 숨기느라 얼마나 답답하고 애를 썼을까? 그녀가 작곡한 곡이 현존하는 악보로서는 가장 오래된 곡이다. 또한 Ordo Virtutum이라는 오페라의 기원이 된 전례곡을 작곡하였다. 이 힐더가드 폰 빙엔이 태어나 자란 곳이 바로 이 에어스타인지방이고 그녀가 숨을 거둔 곳이 빙엔 ( Bingen)이었던 것이다. 이제 힐더가드의 수수께끼가 모두 풀렸다.


에어스타인을 떠나 두 번째로 간 곳은 이다-오베르스타인 ( Idar-Oberstein)이란 곳이다.. 어제 갔던 트라벤-트라바크처럼 두 마을 이름을 합쳤다는 것을 이미 눈치챘고 있었는데, 씨기가 친절하게 이다와 오베르스타인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라고 설명해 준다. 한참을 가는데 난데없이 아는 회사간판이 보인다. 커다란 싸인이 공장지대에 걸려있다. ' FISSLER ' 휘슬러, 내가 아는 그 휘슬러? 틀림없다. 약 3년 전에 휘슬러 냄비들을 샀기 때문에 스펠링을 확실히 알고 있다. 참 뜬금없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휘슬러가 프랑크푸르트도 아니고 뮌헨도 아닌 독일의 남동부의 듣보잡 작은 마을에 이렇게 소박하게 위치하고 있을 줄이야. 우리는 차를 돌려 공장옆, 큰 길가에 있는 휘슬러 샵으로 갔는데 토요일이라 이미 문을 닫았다. 아까비... 무거워도 몇 개 사가지고 가려고 했는데....


다시 차로 씨기를 따라간다. 씨기와 르나테는 대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계속 따라가기만 하니 궁금해진다. 그런데 불현듯 멀리 산 위에 멋진 성이 보인다. "아, 저기를 가는 거구나!" 사진 찍을 준비를 하고 가까이 가기만 기다리는데 바로 옆에 더 신기한 구조물이 나온다. 커다란 암벽에 하얀 교회당이 박혀 지어져 있다. 피터와 일세의 마을에서 암벽 위에 세운 성들을 보고 엄청 신기하다고 여겼었다. 지반 없이 돌 위에 거대한 성을 세울 수가 있는 건가? 그런데 이 교회는 암벽의 정면으로 암벽 속으로 박혀 지어져 있다. 역시 우리는 이곳을 가는 것이었다. 씨기는 저 높은 곳에 있는 암벽 교회까지 등산을 하고 싶어 했으나, 지금 공사 중이라 외부출입이 금지란다. 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수백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저곳, 무척 궁금하지만 그냥 유튜브로 보고 싶다.



Felsen 교회. ( Felsenkirche)



교회바로 아래 형성된 관광지는 예쁜 기념품 가게, 커피숍 그리고 노천카페들로 아기자기하다.




이곳에서 우리는 드디어 쿠켄 (Kuchen) 타임을 가졌다. 나는 쿠켄 타임 아이디어가 너무 좋다. 브런치 먹고 저녁까지 출출하니 3시쯤에 가지는 케이크와 커피타임. 왠지 0 칼로리일 것 같은 이름이다. 관광객이 모이는 곳이라 한 조그만 광장이 커피숍과 음식점으로 둘러 싸여 있다. 우리가 흔히 사진에서 보는 그런 유럽의 노천카페 모습이다. 한 귀퉁이에서 흘러나오는 거리의 악사의 트럼펫 연주가 어울리는 오후. 모처럼 더웠던 그 오후, 땀을 식히며 커피와 케이크 시간을 가졌다. 우리를 보러 휴가 중에 두 시간을 달려와 준 씨기와 르나테. 어디를 보여줄까 좋은 곳만 데려가고 싶어서 애쓰는 모습이 보이는 이들에게 참 고맙다. 내가 며칠 전 일세의 수제잼이 너무 맛있었다고 흘려 말한 것을 잊지 않고 르나테가 직접 만든 수제잼을 챙겨 왔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사라졌다가 오더니 기념품점에 샀다고 선물을 전해주는 정 깊은 사람들.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우리에게는 뜨겁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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