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 트라벤-트라바크 ( Traben-Trabach), 독일
처음 트라벤-트라바크(Traben-Trabach)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이름이 너무 귀여워서 장난감 나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0년 초, 코비드 바로 직전 우리는 영국-이태리-독일 여행을 확정하고 비행기표며 숙박시설이며 모두 예약을 끝낸 상태에서 여행 2주 전에 모두 취소를 해야 했었다. 서로 다른 나라에 사는 이유로 20여 년을 못 만난 뉴질랜드에 사는 동생 가족과 이곳에서 5일 정도 함께 여행을 하려고 했던 터라 무척 아쉬웠었다.
모젤이라는 이름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동네 슈퍼에 가면 가끔 눈에 띈 길쭉한 병에 담겨 있던 와인이라는 술이름이었다. 그때는 의미도 이유도 몰랐던 그 이름이 바로 독일의 강이름이었으며, 동시에 그 지역 이름이었고, 리즐링으로 유명한 와인 산지였던 것이다. 모젤강은 독일 중부에 위치한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볼 때 서쪽으로 흐르는 라인강과 만나는 강이다. 모젤 강변은 양 방향에 작은 산들이 등성이를 이루며 강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그 작은 산이 모두 포도원이다. 강을 따라 경치를 감상하며 달리다 보면 아기자기하고 그림 같은 마을들이 나온다. 어제 우리는 엘츠 (Eltz Castle)에서 20분 정도 산을 내려와 모젤 강변에 도착했고 우리의 목적지인 엔컬쉬 (Enkirch) 라는 마을로 향했다. 강변을 끼고 달리는 드라이브는 환상적이었다. 눈에만 담아두기엔 너무 아름다워 우리는 또다시 오자며 몇 번을 다짐을 했다. 그렇게 다짐이라도 해야 얼마 안 가서 잊혀버릴 이 아름다운 모습을 그냥 보내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모젤 강변에서도 그림 같기로 유명한 트라벤 트라바크 ( Traben-Trabach)로 길을 떠났다. 마을 이름이 하이픈으로 연결된 긴 이름인 이유는 두 마을을 함께 표기했기 때문이다. 강을 중심으로 한편은 트라벤 (Traben)이고 다른 쪽은 트라바크 (Trabach)이다. 알고 보니 독일의 마을들 중 이렇게 하이픈으로 연결된 곳이 꽤 된다. 우리가 묵고 있는 Enkirch는 이 그림 같은 수많은 마을들 중에 몇 안 되는 그림 같지 않은 마을이다. 관광객도 없다. 스티븐이 어떻게 그 많은 숙소 중에 여기를 골랐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집이 크다. 욕조가 있다. 밖으로 난 베란다에 가면 인터넷이 터진다. 이 마을의 유지인 이 호텔 사장님이 아래층 레스토랑도 하고 계셔서.. 왠지 맘이 편하다. 맛도 좋고 가격도 착하다.
트라벤-트라바크는 우리 마을에서 10분 거리였다. 어감만으로도 왠지 아기자기한 장난감 나라일 것 같던 그 느낌은 딱 들어맞았다. 강을 마주 보고 두 마을이 누가 누가 더 예쁜가를 서로 겨루는 것 같다. 중세에 세워졌을 탑이 솟아있는 브릿지위의 한 노천카페는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다. 사람들이 느슨하게 앉아 담소를 나누며 커피를 마시는 노천카페에는 왠지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다리 건너편 경치를 하염없이 감상했는데, 몇 시간이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떠나려고 사람들을 태우고 있는 리버 크루즈 배를 보니 문득 물 위에서 유유히 이 경치를 감상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유람선이 보이는 곳으로 갔다. 티켓 부스에 있는 아주머니가 상류로 가는 크루즈는 없고 하류로 가는 것밖에 없는데 시간이 왕복 6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 내일모레에는 짧은 크루즈가 있다고 한다. 다시 와서 이걸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눈치 빠른 스티븐이 크루즈는 코컴( cochem)에 가서 하잔다. 상류 풍경이 하류보다 나을 거다. 내일모레 가서 1시간짜리 크루즈를 해도 충분할 거라고 한다. 코컴은 큰 도시이니 여러 크루즈가 았을 거라고... 스티븐은 촉이 좋다. 예리한 편이고 느낌이나 추측이 정확한 편이다. 우리 둘 다 잘 모르는 것을 선택할 때, 스티븐이 선택한 것이 옳고 좋을 때가 훨씬 많아 어느 순간부터는 나는 그에게 다 맡긴다. 생각과 추측은 그의 몫이다. 덕분에 내 삶이 편해졌다. 이번에도 그의 추측이 맞았다. 며칠 후 방문한 코컴에는 훨씬 다양한 크루즈가 있었다.
우리는 트라벤과 트라바크를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특별히 상업화된 모습이 보이지 않아 더 좋았다. 사방이 온통 다 예쁘다. 카페도 가게도 의자도 심지어 돌까지도... 돌 벽을 따라 담쟁이들이 예쁘게 올라가고 있는 건물, 두 마을을 잇는 브릿지를 시작하는 성처럼 생긴 건물, 중세 마을에 빠질 수 없는 라푼젤 성. 강에서 보는 마을 모습은 장난감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트라벤-트라바크, ' 이름처럼 장난감 나라다.
집에 돌아올 때는 강변이 아닌 산으로 올라가 뒷길로 돌아왔다. 특이하게도 산에 올라가니 꼭대기에 평평하고 드넓은 평원이 나온다. 말하자면 고원인 셈이다. 이곳에서 농사도 짓고 사람도 산다. 밭도 있고 마을도 형성되어 있으니 말이다. 고등학교때 재미있게 읽은 루이제 린저의 '고원에 심은 사랑'이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피터와 일세가 첫날 데려간 레스토랑도 산 위의 고원에 있었다. 독일엔 이런 고원이 꽤 있나 보다. 그 소설의 배경은 아주 열악한 환경의 마을이었는데 어디쯤이었는지 매우 궁금해졌다. 집에 가면 책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