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와 대적하다
담장 밑에 핀 맨드라미는 시간을 거슬러내는 힘을 가졌다.
손톱으로 씨앗을 긁어내 흰 편지봉투에 담던 작은 손은
이제 마디가 굵어졌고 옹이가 생생해져 있다지만
가늘어진 눈매를 타 넘어 들어오는 선명한 붉은빛에는
아직도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담 넘어 퍼져가는 가을 햇살이 영글어가듯
꽃을 향해 파고든 친인들의 추억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지깽이 같은 할미의 마른 허리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던 아비의 눈가에 스미던 물기와
보리쌀을 씻으며 모여드는 달구 새끼들을 손사래 치며 쫓던
어미의 고됨이 맨드라미의 벼슬에 노을처럼 붉게 채색되어있다.
해거름 녘에 더 선명해지는 맨드라미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돌아갈 수도 없는 시간에 대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