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를 좋아합니다

새글 에세이

by 새글

다큐멘터리를 좋아합니다


뉴스를 멀리하게 되면서부터 다큐멘터리를 자주 보게 된다. 진영의 논리에 매립된 싸움꾼들의 논쟁이 짜증 나게 한다. 어처구니없는 사건과 사고들이 섬뜩해서 보기 싫다. 미담은 줄어들고 흉엄함이 이 세계를 점령군처럼 통제하고 있어서 정신이 공황상태가 되었다. 존경할 가치가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고 볼수록 인상이 구겨지는 사람들이 득시글거린다. 뉴스나 막장드라마를 보는 대신 맛집탐방이나 세계여행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들을 반복해서 보게 된다. 마음이 언짢아지지 않아서 좋다. 설렁설렁 보면서 집중하지 않아도 좋다. 중간을 끊었다 본들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다. 신경에 거슬리는 장면이나 멘트가 나오면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된다. 그런데 그럴 정도로 눈을 찡그리게 하는 씬이 다큐엔 거의 없다. 맛집정보는 중간중간 메모를 하게 된다. 멋진 풍경이 나와면 기억 속에 저장시켜 둔다. 언젠가 꼭 가봐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즐겁다.


이제 특별히 감동할 일이 별로 필요 없다. 급격한 감정의 변화가 꺼려진다. 일상이 매일 같은 스토리로 구성되기를 바란다. 변화를 만들어 적응해 나가기보다는 예측가능한 상태에 있고 싶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만으로도 지켜내며 살아가기에 벅차다. 현재의 나는 오랜 시간의 경험이 되풀이되면서 만들어졌다. 다시 무언가를 꾸미려는 번잡함은 귀찮고 두렵다. 현재의 나, 그대로를 미래로 밀고 가고 싶다. 이제 변화보다 안정이 우선이다. 무탈한 일상을 지켜내고 싶다. 무사한 날들의 잔잔함을 유지하는 것이 일상의 목표가 되었다. 가끔 맛집에 가서 인증사진을 찍어 SNS에 뽐내며 올리고 멋진 여행지에서 폼 잡은 사진 한 장에 승모근을 으쓱일 정도의 삶이면 만족한다.


급하게 가야 할 곳도 없다. 생의 급행열차는 이제 멈춰 세워도 좋을 때다.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둘러보다 다리가 지치면 쉴 만큼 쉬어도 탓받지 않는다. 있고 싶은 곳을 골라 있으면 된다. 식욕이 당기는 음식을 골라 먹으면 된다. 향기 진한 커피를 들고 마음이 허락되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고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시작하면 끝을 내야 했던 강박의 시절을 사는 것은 이제 끝내야 한다. 무한한 자유를 나에게 허락해 주도록 하자. 삶의 주인이 되자. 주변인으로서가 아닌 중심자가 되자.


짜놓은 각본대로 사는 삶은 자유의지가 개입될 틈이 없어서 불행하다. 성취감이 있을지라도 내가 주체가 아닌 이상 제한적일 뿐이다. 나의 다큐멘터리는 이제 자유분방하다. 줄거리는 있겠지만 정해진 주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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