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양식

새글 에세이

by 새글

보양식


보양식은 주로 제철 음식이다. 계절에 맞는 음식이 몸에도 좋다는 반증이다. 열돔현상으로 한여름이 펄펄 끓고 있다. 새벽의 기온이 섭씨 25도 언저리에서 출발한다. 한낮의 기온이 35도를 넘어서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습도까지 포함하면 열사의 날씨다. 식욕이 떨어지고 열대야로 뒤척인 밤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다. 기가 빠져서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정신이 육체를 이탈해 몽롱한 상태로 하루를 시작한다. 온열병의 증상이 생활을 무섭게 방해를 한다.


폭우의 기간이 끝나자마자 폭염의 시간이 도래했다. 극한의 환경을 버티기가 겁이 난다. 몸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 보양식이 절로 생각날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여름 보양식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제철 보양식 재료로는 낙지가 최고다. 8월이 시작하는 첫 주 즈음에 금어기가 막 끝난 낙지는 폭염 때문에 어로를 하지 못해 금값이다. 중국산 산낙지의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선뜻 지갑을 열기가 망설여진다. 이 시기의 낙지가 최고의 보양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이유가 갯벌 작업이 힘든 데다 금어기 이후라 부화해 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세발낙지라서가 아닐까 유추를 해본다.


산채로 나무젓가락에 감아 한입에 털어 넣고 머리부터 다리까지 오물오물 씹는 맛이 그만이다. 잘게 썰어놓은 낙지탕탕이에 참기름을 끼얹어놓은 접시는 한번에 비울 때까지 젓가락을 놓을 수가 없이 고소하고 찰지다. 갖은 야채를 넣고 육수를 끓이다 꿈틀대는 낙지를 넣어 데쳐먹는 연포탕의 국물은 더위에 지친 속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미나리와 살짝 삶아낸 낙지를 초고추장에 무쳐낸 초무침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흐른다. 민어회와 탕도 좋다. 하모회와 샤브샤브도 좋다. 갓 잡은 병어회나 조림도 보양식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나는 한 달이란 금어기동안 먹을 수 없었던 낙지를 이맘때 보양식의 최고로 친다. 제철 음식이 보양식으로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면 상대적으로 사람마다 몸이 원하는 제맛의 재료는 다를 수 있다. 나에겐 낙지가 그렇다.


체력이 급격하게 바닥을 친다. 더위를 먹었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잠시만 실외에 있어도 땀이 흥건히 이마를 흐른다. 그렇다고 에어컨 밑에서만 있을 수도 없다. 이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에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배부른 소리겠지만 장시간 냉기 아래에 있으면 냉방병 증상으로 어지럽다. 온열병이나 냉방병이나 증상은 비슷하다. 속이 메스껍고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멍해진다. 과하면 탈이 나는 것은 더위나 냉기나 마찬가지다. 몸이 상하면 마음도 상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아무것이라도 해야 더위를 헤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이 비싸더라도 오늘은 지갑을 열어야겠다. 딸리는 기운을 보충해줘야 할 때다. 통째로 먹을 세발낙지 몇 마리, 시원한 국물로 속을 풀어줄 중 낙지 몇 마리 게다가 요즘 소비가 위축되는 바람에 가격이 내려서 양식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진 전복도 몇미 사들고 들어가 저녁상을 차려야겠다. 유별나게 더위에 약해 하루종일 어지럽다는 아내와 함께 기를 보해야겠다. 사는 게 별거냐, 잘 먹고 잘 싸는 거지, 아껴봤자 똥 된다라며 지갑을 열 때마다 부린 허세를 부려도 좋을 때가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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