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준비하는 자세

새글 에세이시

by 새글

가을을 준비하는 자세


역대 최초라는 강조어와 유례가 없이라는 수식어가 귀에 익은 여름이 이동을 준비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폭염과 폭우와 때 이른 태풍의 흔적이 아직은 흩어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아침과 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진 바람이 나뭇잎을 쓰다듬듯 불어온다. 여름과 가을의 혼재기다. 드디어 오늘은 기다리고 있는 비가 한차례 오고 나서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무더위가 한풀 꺾일 것이라는 예보가 반갑다. 입주를 시작한 지 두어 달이 지났지만 불이 켜지지 않는 빈집들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관리인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더위가 물러가면 대기하고 있던 예비가구들이 이사를 시작하지 않겠냐는 무성의한 대답이 옳았다는 듯 하나둘 이웃이 늘어난다. 새집에 들어온 사람들과 동물가족들이 가을의 초입에 접어들어서야 어색하게 인사를 해온다. 비어있던 공간을 메울 어울림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기다리고 있던 가을이 주는 변화는 이렇듯 이미 준비되어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세상의 이치에는 앞과 뒤, 순서가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방치되어 있는 듯 하지만 끝나지 않을 고난은 없다. 막상 닥치면 빠져나올 틈이 보이지 않는 험난함도 나아가고 돌아감을 반복하다 보면 출구가 보이기 마련이다. 준비하는 이에게 막힘은 없다. 눈앞에 당도하지 않았지만 짐작할 수 있는 미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예측가능성에 대한 준비가 해답을 준다. 배롱나무꽃이 절정의 빛깔로 물들며 가을이 오고 있다고 알려준다. 보낼 것은 미련 없이 떼어내고 험한 여름을 잘 익힌 알곡을 거둬들일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거뭇하게 그슬린 피부를 덥어줄 긴팔옷을 준비하도록 하자. 기우에 지나지 않을 앞날을 향한 불안의 허물을 벗겨내자. 지척에 이르고 있는 가을을 오늘 나에게 와준 뜻밖의 선물로 만들려면 마음의 자세부터 준비를 해야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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