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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현이 Apr 16. 2022

아빠와 딸

우리 아빠, 충기 씨는 내가 결혼하고 싶었던 첫 번째 남자다.

난 당연히 크면 아빠랑 결혼을 하는 줄 알았다. 그게 불가능하단 걸 알게 된 날, 난 큰 충격에 빠졌다.

다행히 어린 난 꽤 똑똑했고 금방 현실을 받아들였다.

아빠는 그렇게 미래의 남편감이 아닌 내가 가장 존경하는 어른이 되었다.


 할머니는 어린 내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아빠 칭찬을 하곤 했다. 우리 아빠는 야무지고, 참하고, 형과는 다르게 얌전하게 컸다고. 난 아빠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에 일말의 의심도 갖지 않았다. 그저 아빠와 할머니는 여느 모자 관계와 같았다. 할머니는 아빠를 사랑하고 아빠는 할머니에게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


 아빠는 고모와 달리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많은 얘길 하지 않는다. 그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라 말할 뿐이다. 우리 엄마의 유방암 진단 이후, 화목한 가정으로 보이는 박가네 가정에 깊이 침잠된 내밀한 상처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할머니에 대한 고모와 아빠의 상처는 세월을 비집고 올라와 서로에게 생채기를 냈다.


 순심 씨의 둘째 아들, 나의 아빠는 학창 시절 온순하고 소심한 자신과 달리 거침없고 과감한 형을 보며 일말의 콤플렉스를 느꼈다고 한다. 자신도 소위 ‘남성성으로 여겨지는 그런 모습을 지니고 싶었던 아빠는 고등학교에 올라가 술도 마셔보고 담배도 피우며 방황을 했다. 고교시절의 방황을 지나 아빠의 이십 대는 더욱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공부를 제대로  했으니 대학엔 떨어졌고 서울로 올라와 누나의 지원을 받으며 재수를 했다. 아빠는 학원에 등록하곤 한두  나가다  나갔다고 한다. 자신은 산골짜기에 태어나 순천 시내도 번화가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막상 서울에  보니 자신과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을 보며 충격과 자격지심에 공부를   없었다고 한다. 여하튼 아빠는 머리가 좋았기에 여차저차 대학에 입학할  있었다.


 아빠의 인생은 우리 엄마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내가 아는 아빠의 삶은 엄마를 만난 이후부터다.

그전의 시간에 대해 아빠는 함부로 회상하지 않는다. 아빠가 아닌 주변 사람의 입을 통해 재구성한 충기 씨의 이십 대는 다음과 같다. 아빠가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의 갓 스무 살이 된 남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빠에게 남동생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건 내가 꽤나 자란 후의 일이다. 아빠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그 동생에 대한 얘길 하지 않았다.  아빠가 군대에 있을 땐 아빠의 아버지, 나의 할아버지가 간암으로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셨다. 군대에 있던 아빠는 아버지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 아빠는 어릴 적엔 형의 그늘에서, 커서는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 속에 삶의 목적을 잃고 헤매었다.


 아빠는 말했다. 모든 경험이 다 유익한 건 아니라고. 어떤 건 그저 간접경험만으로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자신의 딸들은 어떠한 어둠도 없이 안전하고 보장된 길만 걷길 바랬던 걸까. 성인이 된 이후 나는 아빠와 잦은 갈등을 마주했다.


 그 갈등의 근원은 내가 미술을 하면서부터 일 테다. 공부를 상당히 잘했던 난 고교 진학을 앞두고 갑자기 미술을 할 거라 선언했다. 다행히 내 부모님은 내가 하고 싶은 걸 반대하진 않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난 부모의 자랑에서 걱정이 됐고, 성인이 된 이후엔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돈 들여 가르쳤는데 다 커서 돈도 못 버는 딸이란!

 

 아빠는 자식은 짐이라 선언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일은 버거워지고, 자신의 어머니도 늙어가고, 나이 드는 아빠가 감당해야 할 무게는 줄기는커녕 가중됐다. 와중에 예술을 하겠단 딸은 세상 물정은 모르고 살아가니. 얼마나 염려가 되었겠는가!

차마 드러나지 못한 그의 무게는 딸에 대한 잔소리로 표출됐다.


아빠는 종종 “넌 졸업하면 뭘 할 거니?”라 물었다.

사실 그때의 난 그저 막연했고, 뭘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땐 상대의 질문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난 아빠의 질문에 픽 화를 내질렀다.

그런 식으로 아빠와 난 다투었다. 그렇게 난 아빠의 자랑스러운 막내딸에서 염려스러운 짐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빠를 사랑하고, 존경했다. 우린 자주 싸웠지만, 항상 가까웠고, 친밀했다.


 하루는 중학생 딸을 가진 어떤 아버지가 내게 조언을 구하셨다. 자신은 중학생 딸과 도무지 친해질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하면 나와 우리 아빠처럼 친밀해질 수 있을지. 내가 들었을 땐 그분은 정말 꽤나 노력을 하고 계셨다. 딸이 좋아하는 방탄소년단의 이름을 외우고, 굿즈를 사주며 대화를 시도하셨다. 그러나 그 노력에도 딸과 자신 사이엔  몇 마디 오갈 뿐 소용이 없다고 했다. 난 그 딸이 좀 너무하다 생각했다.


난 우리 아빠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아빠의 대답은 좀 놀라웠다.


“그건 그 아버지가 잘못하신 거야. 젊었을 땐 바쁘단 핑계로 딸과 시간을 보내지 않다 이제와 친해지려 하니 애가 당연히 불편해하지.”


시간이 약이 되지 않는 상처도 있다.

우리 아빠에겐 미처 마음이 단단해지기 전 깊이 파여 그대로 굳어진 상처가 있다.

그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알기에 아빠는 차마 자신의 딸들에게 그걸 물려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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