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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현이 Mar 31. 2023

천이와 귀한 땅

할머니는 왜, 자신이 그리도 사랑한 큰아들 집으로 돌아가길 싫어했을까?


나이 든 할머니는 내게 애원하듯 말했다. 자신은 그곳에 갈 수 없다고. 순천으로 다시 내려가면 밭일 하다 병나 죽을 거라고. 


난 말했다. 그냥 가서 편히 살면 되지 일은 왜 하냐고.

할머니는 말했다. 눈 앞에 땅이 있는데, 어찌 그냥 두냐고. 


멀쩡한 땅을 그저 두지 못하고 심고 길러내야만 하는 할머니를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동네사람들은 할머니를 천이라 불렀다. 

12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할머니는 위로 온통 언니 뿐이었다. 딸만 줄줄이 낳다 또 딸이 태어나자 갓 태어난 아기를 그냥 죽으라고 뒷간에 방치 했다고 한다. 그렇게 며칠을 두었는데, 이 질긴 생명이 죽지도 않고 온몸에 부스럼을 뒤집은 채 살아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천해서, 그렇게 할머니는 천이라 불렸다. 


 할머니는 항상 자신의 존재를 입증 해야만 했다. 가난한 시댁에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배를 곪을때도 할머니는 친정에 손을 벌리지 않았다. (할머니의 친정은 시댁과 같은 마을로, 도보 오분 거리였다.) 할머니의 친정엄마는 자신의 딸에게 항상 밥은 먹었는지 안부를 물었지만, 할머니는 그때마다 먹었다고 거짓말 했다. 그냥 한끼 식사일 뿐인데. 할머니는 그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았다.


 할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할머니 친정은 당시 마을에서 부농에 속했고 할머니의 언니들은 모두 부잣집 아들에게 시집을 갔다. 안타깝게도 그녀들 남편의 대다수는 도박과 술을 일삼았고 물려받은 가산을 탕진했다. 그렇게 할머니의 언니들은 친정에 찾아와 돈을 빌려가기 일쑤였다. 그걸 보고 할머니의 아버지는, 돈이 아닌 인성을 봐야 한다며 마을에 참한 청년을 물색했는데, 너무 인성만 본 나머지 할머니는 논 한마지기 없는 가난한 소작농과 결혼을 한다. 


나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아빠와 고모, 할머니의 기억으로 더듬어볼 뿐인 할아버지는 조용하고 자상한 분이셨다. 병원에서 군복무를 했기에 접골에 능한 마을의사였고, 서예에 능한 선비였지만, 무엇보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벼농사, 과수원, 누에고치 농사, 담배 농사까지 쉬지 않고 좀 더 나은 작물을 고민하며 땅을 일궜고 자식들을 가르쳤다. 그러곤 옆 동네에서 비닐하우스 기술을 배워와 마을에서 처음으로 비닐하우스 오이 농사를 지었다.  할머니는 땅을 일구는 농사꾼이었지만, 유동자산의 중요성을 알았다. 당장 쓸 현금을 항상 갖고 있기 위해 무거운 '오잇쌍자'를 이고 산을 넘어 시내 장에 내다 팔았다. 그 돈으로 장터에서 옷도 사고 자식들 간식도 사고, 그렇게 오이농사로 자식들을 가르쳤다. 그렇게 그들은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해 기어코 자신의 땅을 샀다. 돈을 모으고 모아 마을에서 가장 기름진 땅을 샀을때, 할머니는 그 땅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고 한다. 


아빠는 할머니가 물려준 그 땅을 팔아 아파트를 샀다.


그로부터 십여년이 흐른 후에도 할머니는 종종  땅 판 것을 들먹였다. 그 좋은 땅을 왜 팔았냐며 아까워했다. 

고모가 아무리 땅보다 땅 팔아 산 아파트가 값이 더 올랐다 말해도 소용 없었다. 


 할머니에게 땅은 무엇이었을까. 


흙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하는데 마침 할머니의 언니가  단정히 입고 교회를 가고 있었다. 서로 마주보고 인사하는데, 그 언니가 하는 말이  “순심이 너도 언제 한번 교회에 와라”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당장 먹고살기 팍팍한 순심은 생존에 직결되는 일 외의 외출이란 있을 수 없었던 거다. 할머니는 대외적으론 교회다니는 사람들을 욕했다고 한다. 

 언니가 지나간 후 홀로 밭에 남은 순심은  할머니는 나도 먹고살만 해지면 교회에 가고잡다고 생각했다.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나같은 죄인” 찬양 선율에 순심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도 이 흙에서 벗어나 교회에 가보고 잡다고.'


우린 할머니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기에. 차마 그 세월을,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었다. 


 할머니는 흙과 흙에서 난 모든 것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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