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심의 삶은. 내가 잠시 가르쳤던 그 어르신의 말마따나 불쌍한 인생인가.
아니다 우리 할머니 정도면 괜찮은 인생 아닌가?
다섯 살부터 이십 년간 나의 주 양육자였던 할머니는 내게 가장 많은 말을 들려준 사람이다. 할머니는 내게 자기 삶에 대해 자주 얘기했다. 다른 이의 말이 아닌 순심은 그녀의 삶이 소설 한 권을 써도 모자를 것이라며 고생이란 고생도 이런 고생은 없다고 말했다. 동시에 분당에 올라온 이후, 노년의 자신의 삶에 이런 평안함이 있는게 상상도 못해본 일이라며 자신의 노년에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섯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 이십여 년간 들어온 할머니 스스로가 말한 자기 삶의 굴곡들은 다음과 같다.
1. 딸부잣집에 다섯째 딸. (태어나자마자 죽으라고 창고에 방치되었다. 죽지 않고 살았는데, 온몸에 부스럼으로 가득한 그 모습이 너무 천해서 어릴 적 마을에서 ‘천이’라 불림)
2. 아홉 살에 국민학교 중퇴.
3. 사대독자 소작농과 결혼.
4. 결혼 후 남편 군대 징집
5. 시모의 시집살이
6. 어린 시누이 양육
7. 가난으로 인한 배고픔에 여러 차례 자살 시도
8. 시모와 같은 해에 자식을 낳음.(시모의 아이를 제 아들처럼 키움)
9. 시모의 치매 간병
10. 돌 안된 막내딸이 심장병으로 사망
11. 셋째 아들이 스무 살이 되던해 자살
12. 남편 간암 말기 진단 후 치료 시도도 못 하고 사망
13. 언니들과 남동생의 사망
이 중 내가 태어난 이후의 일은 할머니 언니들과 남동생의 죽음 뿐이다. 내가 일곱살 때 할머니보다 한참 어린 막내동생이 돌아가셨다. 지금도 기억나는건, 할머니가 거실에서 빨래를 개면서도, 나물을 다듬으면서도. 어린 나를 앉혀 두곤 펑펑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단 거다. 사실 그때의 난 할머니가 왜 그렇게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며 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형제를 잃는게 슬픈 일이란 것도 상상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내게 되뇌었던 자신의 삶에 있었던 고통들을 이렇게 글로 적어보니 어떻게 한사람의 인생에 이런 많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저 중 하나라도 내 삶에 일어났다면, 난 할머니 처럼 건강하게 남은 여생을 살아낼 수 있었을까. 할머니가 자기 남동생의 죽음을 슬퍼했다면, 자신의 다 큰 아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슬픔이 얼마나 컸을까. 할머니가 분당에서 우리와 살면서, 그것도 죽기 몇년전에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지냈다는 이유로 할머니의 삶을 “그 정도면 잘 살다 가신거지” 라며 퉁쳐버릴 수 있을까.
처음엔 궁금했다. 할머니의 삶이 어떠했고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그녀의 삶에서 내게 다가올 미래의 시간을 보았기에 한순간에 사라진 한 여성의 삶을 규명하고 싶었다. 이러한 시도는 시간이 거듭될 수록 흐려만 진다. 그녀에 대한 글을 쓰며 점차 그 삶을 정리하고 정의하는 게 필요치 않겠단 생각이 든다. 오히려 내가 보고 싶은건 그녀의 삶이 의미 있었다는 증명 보단, 그녀의 삶이 분명 내게 행사하는 가능성, 역동을 창발하는 그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