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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릭Langlic Feb 07. 2023

비록 최연소 팀장이 처음일지라도

'어쩌다 팀장'이 된 당신에게 들려주는 오피스릴러 - 1편

불행한 관리자가 행복한 관리자보다 많을까요? 그럴 겁니다.

그러면 굳이 불행할 확률을 시험해야 할까요?

회사가 하란다. 그렇게 나는 어느 날 팀장이 되었습니다.


매년 가던 국제 도서전에서, 어느 스웨덴 스님의 책을 홀린 듯 집어왔습니다. 젊은 나이에 대기업 최연소 임원으로 지명받았으나, 홀연히 그만두고 스님이 되어 평생 수행한 분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불행한 관리자가 되리라는 자신의 미래를 판단하고 미련 없이 그 길을 버렸습니다. 비슷한 기점에 놓인 나는 마치 프로스트의 시처럼 가지 않은 길을 가늠해 보았습니다. 미래형이지만요.


최연소, 업계에서 알려진 사람, 2년 연속 승진, 일 잘하는 검은 소, 성공할 것 같은 커리어, 혼자 일 다 하는 직원. 이력서의 사족처럼 나에게 따라붙은 낱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사원인 나와 팀장인 나는 다를까요. 신입사원 때와 지금은 또 얼마나 다를까요.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하듯이 그래봐야 성격도 외모도 똑같은 나입니다. 하지만 저런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고평가 되어, 그 기대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과 미래가 어깨에 묵직하게 내려앉는 기분을 체감했습니다. 자존심에 밥 먹여 줄 수는 있었지만, 결코 행복감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절벽 끝에 발끝으로 선 감각에 가까웠습니다. 두 가지는 확실했지요. 하나는 나에게 딸린 사람들과 의사결정에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과, 둘째는 일이 어떻게 되든 모두가 보고 평가하고 저울질할 거라는 사실을요. 


그날, 나는 5년 전쯤의 나를 떠올렸습니다. 지금의 삶과 전혀 다른 나날을 살리라고 생각했고 누구나 그렇듯이 보기 좋게 틀렸지요. 인생에는 예고편이 없어 방심하는 순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든 싫든 매 순간 선택하며 정신없이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거대한 분기점이 눈앞에 놓입니다. 생애 처음 돈 받는 관리자의 역할을 요구받은 때가 저에겐 그 지점이었습니다. 그전에 동아리 회장도 하고 반장 같은 것도 했으나 그건 무급이었거든요. 그 무게는 생각보다 차이가 큽니다. 왜인지 첫 입사하기 전 한강에서 3천 원짜리 대여 자전거를 타고 산책하던 때가 그립기도 하였습니다. 그때는 세금을 안 내던 시절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날 무거운 어깨가 부담스러운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백팩에 넣어둔 업무용 노트북 때문인지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붐비는 9호선에 배송되어 가면서 가장 먼저 결심한 건 '겸허함'이었습니다. 내가 그분처럼 스님이 되기엔 너무 속물이라고 판단하였거든요. 다른 말로 자본주의 사회가 적성이라고 해도 되지요.


깨닫기엔 부족한 사람이라 외려 성취하고 경쟁하며 다투는 삶이 더 맞음을 인정하였습니다. 불행해질 확률을 감수하기로 결정한 겁니다. 다만 그렇게 살면 화려한 포장지가 생기는 순간부터 스스로를 잃기 쉽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딱 한 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 어떤 처지이든 내가 나로 남아야 정확한 통찰을 통해 성장하여 오히려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고 여겼어요. 한낱 명함 위 완장에 속지 않고 나 자신에게 겸허하기로. 젊은 사람이 빠르게 성공하면 스스로의 마음을 곧잘 망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얼마나 정확히 보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기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빨리 팀장이 되었는지 궁금하신 분이 있을까요? 시작은 회사가 어렵고, 정해진 길도 없고, 전례도 없는, 불리한 일을 요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나는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회사는 요구했고, 나는 돈 받았고, 그냥 할 일을 해야 한다고요. 결론은 담백했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일을 고민할 때는 두려웠고,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 협상할 때는 지쳤습니다. 나를 지탱한 건 아주 약간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난처할 때마다 조금 더 용감하게, 조금 더 담담하게, 조금 더 괜찮다고 했습니다. 딱 심호흡 한 번 정도 할 만큼만요. 그 약간의 마음가짐이 누적되어 나타난 나비효과의 강력한 힘으로 여기까지 떠밀렸습니다. 보통 팀장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어집니다. 예고편이 없다지만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의 큰 흐름이 있어 그 안에서 나의 역할과 위치가 변해가는 걸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로 변화 직전에 보여서 대비하기 어렵습니다만, 실력이든 운이든 연차든 반드시 하나 이상의 요인이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렇게 '어쩌다 팀장'이 된 사람이 겪어낸 모든 마음과 일화를 적어 내려가는 글입니다. 과속 승진이었지만 그만큼 배워야 할 것이 많았고, 회사에서 날밤 새기 마련이었던 직원이기도 합니다. 낯선 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분들이나, 중간관리자의 고충에 공감하고 싶은 분들, '리더'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분들, 그리고 회사 지박령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나 궁금한 분들께 재미난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직을 부여받은 후 나를 둘러싼 규칙과 상황이 바뀌어 처음 적응해야 했던 부분들이 기억이 납니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팀장이 되면 인사팀에서 명함도 새로 주고, 아래 팀원도 배치되고, 작지만 보직수당도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회에서 돈 더 주는 건 이유가 있습니다. 헤라클레스처럼 온갖 추가 과업이 주어지는 상황을 반복하다 보면 어엿한지는 몰라도 주어진 역할에는 꽤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기본편을 마스터하면 심화편이 오기 마련, 게임에서 슬라임 잡다가 레벨 업했더니 더 센 애가 나오는 것처럼 새롭고 스릴 넘치는 상황들이 닥치기 마련이지요. 다음 편은 MZ세대 팀원들과의 요지경 일화를 담은 실제 경험담과 함께 다시 찾아뵙기로 하겠습니다. 내일 또 일찍 나가야 하는 먹먹한 마음을 달래며, 출근하시는 분들 모두 모닝 카페인 챙겨서 가벼이 걸음 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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