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을 못 했던 엄마, 자신이 제일 아파도 내 걱정만 하느라 고생했는데, 엄마의 표현방식이 나에게 너무 익숙하지 않아서 상처만 받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원망도 많이 했어. 근데 결국 그게 다 사랑한다는 표현방식이었더라고, 알아주지 못해 미안했어.
아빠, 항상 나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얘기해 줘서 고마웠어. 자유롭고 꼼꼼한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삶을 사는 아빠의 인생 나도 응원했어.
때로는 부모처럼 날 챙겨줬던 큰언니, 네 잘못이 아니다 이제부터 잘하면 된다는 그 말이 더 이상 삶의 의지가 없었던 나에게 큰 힘이 되었어. 언니의 꿈과 앞길을 누구보다 응원했고, 언니는 뭐든 해낼 수 있는 멋있는 사람이었어. 힘들어도 무너지지 않은 줄 아는 힘을 가진 책임감 있는 엄마야.
세상에서 제일 멋진 작은언니, 언니는 늘 내 삶의 자랑이었다. 마음먹은 모든 것을 이뤄내고 성장시키는 능력을 갖췄어. 새로운 도전에 서슴지 않았고, 그 선택에 자신이 있었고,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했어. 그 과정이 절대 쉽지 않았을 텐데 버텨줬고, 때론 그 모습을 나에게 알아달라고 했을 때도 몰라줬던 나를 그래도 이해해 주려 했지. 그 모든 것을 버텨냈고 언니는 우리 가족을 지켜냈어. 누가 뭐래도 언니는 존나 멋있는 사람이야.
얘들아, 미안하다. 은일, 유경, 용선, 선웅. 내가 유일하게 마음 놓고 웃고 나다울 수 있었던 가장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줘서 고맙다. 특히 유경아, 17살 의기소침하고 괴롭힘을 당했던 나를 붙잡아주고 챙겨줘서 고마웠어. 덕분에 그 시간 버틸 수 있었다. 은일아, 용선아, 선웅아 내 시신 운구는 너희가 해줬으면 좋겠다. 마지막까지 너네와 함께이고 싶다. 힘들면 언제든 달려와 주고, 화내주고, 잘했다고 말해주고, 보잘것없는 나에게 멋있다는 말을 해줘서 고마웠어. 같이 갔던 바다, 계곡, 학교 운동장, 노래방, 카페, 술집, 은일이 집, 유경이 집. 너무 좋았다. 앞으로 여행 자주 가라. 좀 좋은 데로 가서 재밌게 놀고 술 한잔하면서 잠깐 내 생각 한 번만 해줘. 난 그걸로 충분하다.
은서야, 미안해. 네가 나에게 자랑이었던 것처럼 나도 너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끝까지 참 어리석고 미련했다. 나의 모든 순간을 함께 해주고, 늘 내 편이 되어주고, 너만의 방식으로 날 위로했던 네가 난 정말 좋았다.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지금처럼 욕심 갖고 하고 싶은 거 꼭 이뤄. 난 널 믿어.
요배, 시헌. 내 삶에 가장 바닥이었던 순간에 만난 귀한 사람들. 내가 뭐라고 오빠들은 그렇게 날 챙겨주고 도와줬을까. 궁금하다. 작았지만 같이 사업도 도와주고, 학교 졸업하는 것도 도와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생존 확인도 해주고, 기도해 주고, 울면서 전화해도 다 받아주고, 들어주고, 욕해주고.. 받은 게 많아. 그래서 정말 고마웠어. 지금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지? 잘 이겨낼 거라 믿어. 꼭 좋은 목사님이 되어줘. 내 마지막 부탁이야. 그리고 요배오빠 결혼 축하해. 순서지랑 영상 만들어 주기로 약속했는데 진짜 미안. 정희 언니랑 이쁘게 살아.
존경하는 박해정, 오석진 교수님. 교수님들을 만난 것이 제 인생에 행운이라면 가장 큰 행운일 것 같습니다. 교수님들의 수업에서 다시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보았어요. 사랑해 주시고, 기억해 주시고, 예배할 수 있어서 제 삶의 기억 속에서 가장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폐쇄병동으로 들어가기 전, 눈물로 기도해 주셨던 박해정 교수님의 기도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누군가 나의 아픔을 위해 눈물을 흘려준 일이 살면서 처음이었거든요. 감사했습니다. 자랑스러운 제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죄송합니다.
교수님들, 저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교수님들께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얘기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이상하고 무리한 부탁일까요? 그렇다 하지 않아도 항상 감사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가 없어서 장례예배 인도해 줄 분이 없는데 너무 염치없고 죄송하고 어려운 부탁이지만 나눔의 예전 학회에서 제 장례예배를 인도해 주세요. 제 마지막 부탁입니다. 먼저 떠나는 못난 제자와 학회원이지만 저의 마지막 예배를 부탁드립니다.
이철원책임님, 고마웠습니다. 제 삶을 응원해 주고 행복을 빌어주셔서요. 나의 일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셔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힘들 때 도와주시고, 제 얘기 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가희야, 내가 청주에서 널 만난 건 진짜 행운이었어. 친구 해 줘서 고마웠고 항상 아무렇지 않게 챙겨줘서 고마웠다. 이제 친구 비 매달 못 주는데 그래도 친구 해 줄 거지? 고맙다.
누군가에게 미움받고, 미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평생을 누군가에게 미움을 샀거든요. 어렸을 적 동네에선 따돌림으로, 학창 시절엔 왕따로, 직장에서는 상사에게서 미움을 샀습니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는데, 왜 마음엔 그들의 미움이 나를 잡아먹을까요. 이제는 제가 정말 미운 사람인 것 같습니다. 나를 미워했고, 미워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고 합리화시키고 있어요. 나에게도 문제가 있으리라 생각하면서요. 여러 정신질환으로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 자신을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고, 많은 사람이 노력해 주었지만 저는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나아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힘들어도 웃었고 일상을 버텼습니다. 누구를 위한 버팀이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이젠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괜찮아지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미련하게 마음 주지 않아도 되고, 떠날까 봐 두려워하고 불안해하지 않는 상태로 가려합니다.
나의 인생을 지켜주기 위해 애써주었던 모든 손길들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들은 누구보다 노력했고, 사랑했고, 나에게 과분했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당신들은 언제나 제게 최고였습니다. 그 기대를 내려놓고 떠나는 저를 마음껏 원망해도 좋습니다. 당신들의 남은 인생이 더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김하온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내 인생은 결국 김세은에서 끝나네. 사실 지금 조금 무서워. 마음먹고 준비가 되고 보니까. 죽는 게 두려운 것보다 내 장례비용, 빚, 집 처리하는 것들 등등 그런 것들이 나는 걱정되고 무섭네. 나 친구 별로 없어서 부조금도 얼마 안 나올 텐데 죽는 것마저 돈이 드네… 미안해. 아, 그리고 너무 슬퍼하지 말아 줘.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니, 자책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부디 금방 잊어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내일은 오고 세상은 돌아갈 테니까.
마지막으로 미안했다고, 사랑했다고, 고마웠다는 말 남기고 싶었는데 내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다들 무서워하더라. 그래서 이렇게라도 전합니다. 부족했던 사람이어서 미안했고, 그래도 함께해 줘서 고마웠고, 표현이 서툴러 얘기 자주 못 했지만 사랑했습니다. 아주 많이요.
(내 장례 문자는 아이폰에 저장된 연락처에 있는 사람들로만 보내줘. 영정사진은 그동안 그 용도로 찍어놓은 사진들 있으니, 제일 최근 사진으로 해줘. 그리고 화장해서 할머니 근처로 놔줘.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