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그런 힘이 있는 사람이야.

그게 참, 다행이야.

by 하온

‘난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할 힘이 있는 사람이야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 그게 참 다행이야.' 갑자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나는 늘 내가 했던 결정이 불확실하게 느껴졌고 올바른 결정을 했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의 강요에, 때론 자존감의 문제로 내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결정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가 나를 못미더워 하기 때문에 내가 내리는 결정 또한 자신감이 없었다. 늘 틀린 결정이라고, 내가 하는건 당연히 잘 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간혹 일이 잘 풀리면 불안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렇게 잘될 리가 없는데?’

그러다가 불행이 닥치면 ‘그럴 줄 알았지’ 하며 마음을 내려놓곤 했다. 어쩌면 나는 내 불행에 안주하고 그것이 익숙한 나머지 오히려 나에게 오는 행복이 두려웠다. 내것이 아닌 것 같았고, 언제 또 다시 무너질지 불안했다.


확신이 없는 인생에는 포기가 남는다. 하고 싶었던 일, 되고 싶었던 직업, 원하는 학교, 기회 등… 선택의 연속이라는 인생에서 나는 당연히 누렸어야 할 것들을 스스로 포기했다. 처음 시작은 작은 것부터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삶에서 중요한 것들까지 포기하게 되었다. 먹는 것, 씻는 것, 자는 것 같은 기본적인 것조차 잃어갔다. 나중에야 이것들이 우울증과 조현병 음성 증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들은 서서히 나를 잡아먹었다.


상담이라는 것을 처음 받았던 날, 두서없이 늘어놓는 나의 이야기에 선생님은 이렇게 얘기해주셨다. “어떤 것이 하온님을 여기까지 오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힘든 순간이 있었는데도 무슨 힘으로 그것들을 버텼을까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그냥 버텼어요”


어쩌면 아무 선택을 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온님은 자신이 힘들 때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으로 자신을 지켰네요. 그런 힘이 있는 사람이에요" "어떤 삶을 보내왔든지 지금의 하온님이 여기 있기까지 하온님은 온 힘을 다해서 최고의 선택을 한 거예요"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는 자신이 겪는 일들이 ‘이 정도는 다 버티면서 살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유독 멘탈이 약하고 유난 떠는 것은 아닐까 걱정한다. (적어도 나는 그러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다. 이 정도는 버틸 수 있는 고통 따위는 없다. 내가 겪는 고통과 우울은 절대 객관적일 수 없다. 내가 힘들면, 힘든 거다. 당연히 겪어야 할 아픔 또한 없다. 내가 겪고 있는 아픔은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렇게 힘든 하루를 살아내면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한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가 나 자신을 위해 선택하는 모든 것들이 최고의 선택이 아닐까? 당연히 불행한 인생도, 당연히 망가질 수밖에 없는 인생도,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 인생도 사실 없는 거다. 오늘도 나는 최고의 선택으로 하루를 살아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최고의 선택을 할 힘이 있는 사람이다. 무엇이 되었든 그 선택들로 지금의 자신을 치열하게 지켜냈을 테니 말이다. 당신도 나도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 사실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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