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테니스 대회 출전.
첫 경험은 언제나 짜릿하다. 여자친구와의 첫 키스.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마신 첫 소주, 떨리는 마음으로 시동을 걸었던 첫 운전, 기대보다 걱정이 컸던 첫 배낭여행, 출입증을 목에 건 내 모습이 어색했던 첫 출근. 로봇처럼 뻣뻣하게 움직였던 첫 테니스 레슨.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별거 아니었던 일들이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심장이 몸속에 들어온 것 같은 떨림을 느꼈었다. 가끔은 떨림에 잠식당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지독한 긴장 속에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하지만, 첫 경험은 그런 실패마저도 낭만과 설렘으로 덮힌다. 그리고 지우기 싫은 예쁜 낙서처럼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첫 경험을 할 기회는 줄어든다. 매일 똑같은 길로 출근해서, 똑같은 사무실에 앉아,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시간에 퇴근해서, 똑같은 시간에 잠이 드는 하루가 매일 이어지다 보면 새로운 사건이나 가슴 뛰는 도전은 뉴스와 유튜브채널에서만 일어나는 남의 일이 된다. 마치 원래부터 내겐 없었던 일인 것처럼.
테니스를 시작한 지 6개월이 넘어가자 더블 폴트를 하는 횟수는 많이 줄었다. 그리고, 코트를 밟을 때 느껴지던 신선함과 설렘 역시 줄어들었다. 스윙은 늘 다르고, 결과도 늘 변했지만 테니스는 늘 비슷했다. 내게 특별한 스포츠였던 테니스가 평범한 운동 같았다. 기분 전환을 위해 하는 러닝, 친구들과 재미로 하는 농구, 데이트할 때 치는 포켓볼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물론 이런 운동도 심장을 뛰게 한다. 하지만 쿵쾅거림과 두근거림은 다르다.
그날도 언제나처럼 출근 후 자리에 앉아 카카오톡을 살폈다. 테니스 오픈채팅방을 쭉 돌며 참석할만한 자리가 있나 뒤적거렸다. 그러다 토요일 낮 1시부터 5시까지, 다섯 코트를 빌려 행사를 한다는 채팅방을 찾았다. 참석 인원은 40여 명이 넘었고 참석하겠다는 댓글은 이미 40개를 훌쩍 넘고 있었다. 다른 톡방으로 이동하려는 찰나, 갑자기 채팅 하나가 올라왔다. 토요일 행사에 참석이 어려워 대참자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오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대참 의사를 밝혔다.. 잠시 후 그는 자신의 계좌 번호로 참가비를 입금해 달라는 톡을 보내왔고 그렇게 나의 참석은 운 좋게 확정되었다. 역시 될놈될이다.
행사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이미 주차장은 가득 차있었고 이 중, 삼 중 주차가 되어 있었다. 적당한 곳에 차를 두고 향한 코트에는 엄청난 인파가 모여 있었고, 주최자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사람들을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많은 인원이 모인 관계로 소규모 대회를 열겠다는 말이었다. 거의 대부분이 1-2년 구력의 태린이들이 모인 행사이니 1년 차, 그리고 2년 차 복식대회를 하겠다고 했다. 파트너는 랜덤으로 정해지며 남, 녀 구분 없이 진행되니 승리보다 재미에 초점을 맞춰 달라는 말로 이야기를 마쳤다. 대회라는 말에 정신이 아득해지던 내 뺨을 때린 건 내 이름을 외치는 낯선 목소리였다. ‘네. 여기요!’ 하며 손을 들자 내 쪽으로 한 여성분이 걸어오셨다. 오늘 함께 경기를 할 파트너였다. 잘 부탁한다는 인사와 함께 자신을 10개월 차 테린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묵직한 포스를 자랑했다. 둘 모두 대회는 처음이라 이런저런 떨림을 나누다 보니 대진표와 경기할 코트가 발표되었다. 경기는 6세트 1게임으로 치러지며 1년 차는 총 8팀이었다. 4팀씩 2개 조로 나뉘어 조별 경기를 치르고 각 조 상위 두 팀이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방식이었다. 다행이었다. 모든 게임을 다 져도 조별 경기 3경기는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실내코트였다. 준결승과 결승을 뙤약볕에서 보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예상대로 결승전을 뙤약볕에서 보지 않아도 됐다. 대신 내 인생 첫 결승전 코트에 서게 됐다.
테니스가 만들어준 첫 경험이 다시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운수 좋은 날이었다. 내 퍼스트 서브는 평소와 달리 강력하고 정확하게 상대 서비스라인에 꽂혔고 덕분에 쉽게 포인트를 올렸다. 모두가 테린이다 보니 더블 폴트만 안 해도 세트를 가져올 수 있는데 그 와중에 서브가 팡팡 들어가니 경기가 술술 풀렸다. 거기다 내 파트너는 재빠르진 않았지만 네트 앞에서 묵직한 발리로 상대방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결국 조별 예선을 2승 1패로 통과했다. 4강에서 만난 상대 역시 생각보다 수월하게 승리했다. 그리고 대망의 결승전이 시작됐다. 상대는 20대 후반의 남자 복식팀이었다. 한 명은 1년 차, 다른 한 명은 3개월 차라는 소개와 함께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건네고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는 치열했다. 3개월 차라던 남자는 부족한 실력을 빠른 발과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만회했고 1년 차 남자는 날카로운 서브와 포핸드로 우리 팀을 공격했다. 다행히도 예선부터 이어진 나의 행운의 서브는 결승전에서도 이어졌고 파트너의 발리 역시 날아오는 공을 상대편 코트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세트 스코어는 5-4가 됐고 나의 서브 차례였다. 노애드(40-40일 때 듀스 없이 한 포인트를 따는 쪽이 승리하는 방식)에 40 ALL. 서브 준비를 하는 동안 내 심장은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내게 알려주는 듯 미친 듯이 날뛰었다. 바닥에 공을 몇 번 튕기는 동안 머릿속이 하얘졌다. 생각은 사치였다. 그냥 하던 대로 공을 하늘로 띄웠고 최대한 빠르게 라켓을 휘둘렀다. 공은 반대 코트 서비스라인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했고 상대방은 가까스로 공을 쳐냈다. 하늘 높이 떠오른 공은 코트 밖으로 떨어졌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질러본 건 태어났을 때 말고는 없었던 것 같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테니스장에 마련된 카페에서 시상식이 이뤄졌다. 1년 차 대회 우승 상품은 신발가방과 공가방, 양말과 테니스 공 두 캔이었는데 전부 윌슨 제품이었다. 덕분에 나는 윌슨에 빠졌다 나온 사람처럼 모든 용품을 윌슨으로 도배하게 됐다.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자리로 돌아와 주최자의 짧은 마무리 인사를 듣고 난 뒤 박수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조수석에 상품을 대충 던져 놓고 시동을 걸었다. 내비게이션에 집주소를 입력하자 곧바로 여자 목소리가 길 안내를 시작했다. 기계처럼 딱딱한 내비게이션 목소리가 그날은 왠지 친근하게 들렸다.
벌써 일 년도 더 됐지만 그날의 기억은 4K 영상만큼 생생하다. 그 이유는 그게 나의 마지막 대회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주변 사람들이 함께 대회에 나가자고 많이 권유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대회가 주는 긴장감과 두근거림이 혀 끝에 남는 조미료 맛처럼 계속 나를 자극하지만 열심히 참아내고 있다. 그렇게 열심히 입을 헹구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벌써부터 대회에 나가면 안 된다는 코치님의 만류 때문이다. 대회에 나가면 누구나 이기고 싶어 진다. 그러다 보면 공을 정확하고 강력하게 치기보다 안전하게 살살 치게 된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다. 만약 계속해서 대회에 출전해 그런 식으로 공을 치다 보면 강한 스트로크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고 나중엔 그런 동작이 몸에 익어 강력한 공을 칠 수 없게 된다는 코치님의 충고를 따르기고 했다.
두 번째는 승부에 집작 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날의 우승은 정말 기쁘고 행복했다. 정말 작고, 너무나 소박한 대회였지만 결승전에서의 긴장감은 테린이인 나에게 너무나 감내하기 힘든 무게였다. 그날은 운 좋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지만 만약 패배했다면 그 긴장감은 나의 테니스를 더 무겁고 어둡게 만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2년를 조금 넘긴 나의 테니스는 그 긴장감을 받아낼 충분히 영글지 않았다.
마지막 이유. 사실 이게 중요하다. 돈 아깝다. 비싼 참가비와 오를 대로 오른 기름값을 써가며 부족한 실력으로 대회에 나가면 결과야 뻔하다. 패배의 쓴 맛을 볼 바엔 그 돈으로 삼겹살 한 조각과 함께 마시는 소주의 쓴 맛을 보는 게 낫다.
겨우 8팀이 참가한 대회라 부르기도 민망한 이벤트긴 했지만 처음 겪은 테니스 결승전은 내게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줬고 승리로 인한 도파민을 만들어 줬다. 이 경험은 나를 또 다른 첫 경험, 도전, 성취에 목마르게 하기 충분했고 나는 타는 목마름으로 주변을 살폈다. 윔블던 테니스 대회 같이 위대한 경험이나 도전은 필요치 않았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경험, 도전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눈을 낮추자 내 주변엔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으로 본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기회들이 빛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침구를 정리한 뒤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를 바라볼 때, 매일 가는 카페에서 ‘안녕하세요’ 대신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라는 인사를 건넬 때, 퇴근길 자동차 안에서 매번 듣던 정치 뉴스를 끄고 오노 리사의 보사노바를 들을 때, ‘다음’을 검색해 볶음밥 레시피를 찾아 따라 하지 않고 내 멋대로 요리를 할 때. 나는 이렇게 새로운 첫 경험을 찾아 도전했다. 정말 사소하고 우스워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그 사소하고 우스워보이는 일들이 내게 충분한 성취감을 만들어줬다. 나는 그 성취감을 잔돈처럼 조금씩 모았다. 시간이 지나 보니 저금통엔 성취감이 가득 찼다.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진 못했지만 태산을 오를 자신감을 갖기엔 충분했다.
부족한 글쓰기 실력이지만 꾸준히 글을 쓰는 것도, 특별한 거 하나 없는 말솜씨지만 유튜브 채널을 만든 것도, 남들 다 읽는 책이지만 북스타그램을 만들어 소통하는 것도, 아주 작은 성취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자신감의 결과물임과 동시에 나의 새로운 첫 경험이다. 실패해도 괜찮다. 앞서 말했듯, 첫 경험은 그런 실패마저도 낭만과 설렘으로 덮여 지우기 싫은 낙서처럼 기억에 남는다.
나의 마지막 첫 경험이 지금 이 순간과 멀리 떨어지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