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별의 고향, 밤의 고요

Corcovado

by 송영채

첫째에게,


항상 열려 있던 너의 방문이 점점 닫혀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요즘 너를 가만히 바라보면, 예전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게 느껴져. 어른들의 말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보다는, “왜요?” 하고 질문하기 시작했어. 나중에 커서 무슨 일을 할지, 어떤 꿈을 가질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곤 하지.


가끔은 속상한 마음이 들면 방문을 닫고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갈 때도 있단다. 항상 뛰어놀고 재잘대던 네가, 이제는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지. 밤이면 방 안에 가만히 앉아, 뭔가를 한참 생각하기도 하고, 책상에서 무언가를 혼자 적어 내려가기도 하지.


어린아이에겐 밤은 무서운 괴물이 나타나는, 어둡고 두려운 시간이야.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 후 피곤에 못 이겨 잠드는 게, 바로 ‘아이의 밤’일 거야. 하지만 이제 너는 점점 밤의 고요에 파묻혀 사색하고 꿈을 꿀 수 있는 나이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엄마는 그런 너의 밤을 사랑한단다. 아무 말도 없고,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은 네 안의 가장 깊은 곳과 연결되고, 그 속에서 많은 것이 자라고 있는 시간이라는 걸 엄마는 잘 알거든. 엄마도 어릴 적 그랬어.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작은 방 안에서 수많은 생각을 했단다. 그 시간은 엄마의 마음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사색과 세상의 진실을 보는 눈을 심어 주었단다.


KakaoTalk_20250921_110254164_04.jpg


하지만 그 적막과 고독을 견딘다는 건 좀 힘들 수도 있어. 어린 시절 엄마도 칠흑 같은 밤에 홀로 깨어 있다가, 커다란 외로움이 다가와서 놀랐던 적이 있었어. 하지만 그런 고독과 어둠 속에서 비로소 꿈은 별처럼 더욱 밝게 빛날 수 있고, 네가 더 쉽게 네 꿈을 느끼고 따라갈 수 있게 될 거야. 이제 너의 밤은 깊이 사려 하고 성찰할 수 있는 ‘실존의 밤’이 된 거야.


≪Corcovado≫(코로코바두)라는 노래는 깊은 밤처럼 아주 잔잔하게 시작해. 노래 속 주인공은 자신의 방 안에 혼자 앉아서 창밖으로 코르코바두 언덕과 바다, 그리고 별을 바라보며 자신의 사랑과 인생, 평화를 생각하지.


고요한 별들 아래 고요한 밤

기타에서 흐르는 고요한 화음이

우리를 감싸는 이 고요 속에 떠다니네

고요한 생각들, 고요한 꿈들

고요한 시냇가를 따라 걷는 고요한 발걸음

그리고 창 너머로 보이는 코르코바두 언덕,

아, 얼마나 아름다운지!


≪Corcovado≫ (Quiet nights of Quiet stars) 가사 중


KakaoTalk_20250921_110254164_08.jpg


이 노래는 단지 하나의 풍경이 아니라, 밤의 정취 속에서 서서히 자라나는 내면의 소리를 들려준다.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작은 방은 어느덧 창문을 통해 커다란 밤하늘의 일부가 되고, 끝내 별이 빛나고 있는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 같은 감상에 빠진다.


가끔은 좁은 방에 앉아 있어도, 그 공간이 온 우주만큼이나 넓게 느껴질 때가 있어. 아마 그 순간 우리의 마음과 의식도 경계를 허물고, 마침내 우주를 품을 만큼 넓어지는 게 아닐까? 가만히 앉아 코르코바두 언덕의 잔잔한 밤바람을 느끼거나, 머나먼 별빛이 스치는 시간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일은 그렇게 가능해지는 거야.


네가 자기만의 방에서 고즈넉한 사색으로 밤을 채우다 보면, 네 방은 하늘이 되고, 우주가 되고, 네 마음은 세상 모든 것을 꿈꾸고 탐구할 수 있게 넓어질 거야. 앞으로 더 아름답게 물들어 갈 너의 밤과 고독,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날 너만의 꿈과 이야기들을 엄마는 기대하고 있을게.

ChatGPT Image 2025년 8월 16일 오후 05_56_14.png




≪Corcovado≫는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이 작사·작곡한 노래로, 1960년에 처음 발표됐어. 엄마는 이 편지를 쓰면서 1964년 뉴욕에서 녹음된 Getz/Gilberto 앨범 속 음원을 들었단다. 스탄 게츠의 부드러운 색소폰 연주, 조앙 지우베르투의 절묘한 기타 반주, 그리고 서로 조금씩 다른 영어 가사와 포르투갈어 가사를 함께 감상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