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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느껴봐

Wave

by 송영채

우리 딸들이 커가면서 거울앞에 서는 시간도 늘어나고, 멋있게 꾸미고 싶다며 자신의 스타일로 옷을 고르기 시작했어. 이제 조금씩 자기만의 멋을 찾아가는 것 같아.


엄마는 어릴 적엔 학교에서 머리카락 길이와 스타일에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나만의 개성’을 찾을 겨를이 없었어. 그러다 대학에 가면서부터 유행하는 스타일을 따라 해보며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곤 했지. 하지만 ‘나만의 멋’이 무엇인지 굳이 고민할 겨를은 없었던 것 같아. 젊음 그 자체로도 충분했으니까.


그런데 40대를 지나면서 엄마는 조금씩 알게 되었어. 중요한 건 겉모습의 화려함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멋이라는 걸.


멋이란 무엇일까?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에선 멋이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와 절제’에서 나온다고 했어. 마음의 여유와 품격, 비워낼 줄 아는 관대함과 여백의 미. 이런 크고 작은 멋들 덕분에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도 했지.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가끔 ‘아 그 사람 참 멋있다’ 싶은 사람들을 만나게 돼. 패션이나 스타일이 멋진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자신에게 어울리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지.


그런데 외적인 부분이 아니라, 사람 자체에서 풍겨나오는 멋도 있어. 그들의 멋은 태도와 품위에서 우러나와서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지. 아마도 그런 내적인 멋짐 역시 자기 내면의 순수한 모습을 알고, 그것을 세상과 사람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어. 결국 외적인 멋이든 내적인 멋이든, 그 시작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데서 시작하는 것 같아.


단점으로 보일 수도 있는 부분까지도, 멋쟁이들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그럼 그 단점이 오히려 그 사람만의 고유한 개성이 되고, 결국은 장점으로 바뀌는 거야. 그렇게 우러나오는 멋은 그래서 색다른 맛이 있고, 여유롭고, 당당할 수밖에 없지.


그렇다면 멋쟁이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주변에 보이는 멋쟁이들을 따라 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어. 따라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면, 자기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되거든.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결국 거쳐야 할 가장 중요한 단계는 따로 있단다. 바로 자기 스스로와 마주하고, 오직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 그때부터 비로소 진짜 자기만의 멋을 찾을 수 있는 거야.


Jobim의 ≪Wave≫는 사랑 노래지만, 이 노래의 시작은 정말 중요한 것을 알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속삭여 주는 것 같아.


So close your eyes, for that’s a lovely way to be.

눈을 감아봐, 그게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 방식이니까.

Aware of things your heart alone was meant to see

오직 너의 마음만이 볼 수 있도록 주어진 것들을 온전히 느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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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눈을 감는다’는 건 세상을 외면한다는 뜻이 아니야.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진실한 리듬을 듣기 위해 눈을 감고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지. 진짜 멋쟁이는, 가끔은 눈을 감아야만 만날 수 있는 자기 자신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일 거야.


눈을 감아보렴. 세상에 보여주던 모습은 잠시 내려두고, 네 진짜 얼굴을 마주해봐. 내면 깊숙이 자리한 사랑스러운 존재를 느끼고, 너만이 느낄 수 있는 리듬을 들어봐. 그리고 그 리듬을 따라가면 너만의 멋은 바로 그곳에서 피어나기 시작할 거야.


멋이란 그런 거야. 진짜 ‘멋’을 아는 사람은 남들에게 멋져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 그저 자기만의 파도 위에 서서, 두려움 없이 자신의 모습으로 세상이란 바다를 향해 나아가지. 누군가를 부러워하거나 흉내 내는 대신, 가장 자연스러운 스스로의 모습으로 존재하고자 하지.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의 역할을 아는 데서 나오는 당당함은 난꽃의 향기처럼 은은하게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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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멋진 삶의 태도는 보사노바를 닮은 것 같아. 보사노바는 크게 소리치거나 요란한 춤을 추려 하지 않아.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장식들은 다 벗어버리지. 그리곤 찰박찰박 파도가 치는 듯한 리듬에 맞춰 내면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읊조려. 그러나 그 속삭임이 오히려 사람을 숨죽이게 하고 귀 기울이게 해. 부드럽지만 단단하고,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음악이 바로 보사노바야.


보사노바처럼, 너도 자신만의 멋을 알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어. 서두르지 않아도 돼. 느리게 흘러가도 괜찮아. 네 안에 있는 진심이 네 리듬을 따라 파도처럼 흐르면, 그 자체가 바로 가장 자연스럽고 당당한 너만의 멋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Wave≫는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이 작곡해 1967년 앨범 Wave에 수록한 연주곡이었는데, 후에 영어와 포르투갈어로도 불렸어. 엄마는 로베르투 카를로스(Roberto Carlos)와 카에타노 벨로주(Caetano Veloso)가 2008년 헌정 공연에서 함께 부른 곡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단다. 두 전설의 목소리가 대화처럼 이어지고, 숨죽여 귀 기울이는 관객의 몰입까지 더해져서 감동이 한층 더 깊어지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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