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a ao Tom 74≫
결혼 후 임신과 출산, 육아에 치여 10년의 시간이 지나니 거울 속에는 너무나 낯선 사람이 서 있더구나.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주부이자 엄마로서 해야 할 일들을 겨우 따라가며 살았어. 그러면서 가장 힘든 점은 아마도 ‘나’를 잃어간다는 감정이었어. 나? 그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아이를 낳아 키우기 전의 정돈된 외모? 예쁜 것을 좋아하고 가까이 두고 살던 아기자기한 마음? 사회 속에서 제 역할을 하면서 늘 적당한 거리에서 친절할 수 있었던 인간관계?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시간과 여유? 꿈꾸는 미래로 향하는 길을 열심히 걷고 있다는 희망?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었지만, 그 막연한 상실감은 내 마음을 조금씩 닳게 했지.
그러던 어느 날, 결혼 전에 매일 듣곤 하던 보사노바를 다시 찾아 들었어.
‘아, 여기 있었구나. 내가 꿈꾸고 좋아했던 ‘나’라는 세계가…’
타임캡슐 속에서 꺼낸 보사노바는, 내가 좋아했던 예전의 나를 다시 만나게 해주었어. 그리고 너희를 키워온 시간만큼 성숙해진 내게, 또 다른 이야기들을 조용히 들려주기 시작했단다.
보사노바는 참 아름답다. 그 노래를 부르는 언어는 감미롭고, 보사노바 리듬과 선율은 긴 여운을 남기며 흘러간다. 그리고 보사노바 특유의 가사는 눈물이 날 만큼 진솔하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기록해 간직하고 싶고, 또 소중한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잖니. 내가 보사노바를 다시 만난 순간, 그 아름다움을 소중한 딸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밀려들었단다.
너희에게 이 노래를 어떻게 소개해 줄까 고민하던 때, 엄마는 우연히 ≪Carta ao Tom 74≫라는 노래를 들었어. 노래 제목은 ‘1974년, 톰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뜻이야.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Vinícius de Moraes)와 토키뉴(Toquinho)가, 젊은 시절 함께 보사노바를 노래하던 톰(Tom Jobim,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의 애칭)에게 쓴 편지같은 노래란다.
가사의 첫 소절은 마치 편지 봉투에 주소를 적듯 시작해.
Rua Nascimento Silva, cento e sete
나시멘뚜 실바 거리 107번지.
이곳은 바로, 젊은 시절 그들이 함께 모여서 보사노바를 처음 만들던 톰의 집 주소였다고 해. 곧 이어지는 노래에는 그 시절의 따뜻한 추억이 담겨있단다.
기억하나요, 그 행복했던 시절을? 아, 그리운 날들.
이파네마는 온통 행복뿐이었죠.
사랑조차 평화롭게 아플 수 있었던 시절.
≪Carta ao Tom 74≫ 가사 중
짧은 구절 속에서도 그들이 함께했던 과거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해. 이 노래를 들으며 엄마는 문득 생각했단다. 비니시우스와 토키뉴가 이 노래를 만들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단순히 추억을 회상하는 건 아니었을 거야. 그 시절을 함께한 리우의 음악, 우정, 톰과 나눈 그 모든 순간이 곧 행복이자 사랑이었다는 고백이 아니었을까.
찬란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한 톰에 대한 깊은 사랑을 전하고 싶었던 거겠지. 너무 사랑하면, 애틋하면, 어떻게든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니까.
편지를 쓴다는 건 결국 내 사랑을 전하는 거야. 그래서 엄마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했어. 보사노바를 들으며 떠오르는 너희와의 추억과 엄마 마음에 차오르는 생각들을 모아 너희에게 편지로 엮어 보내기로 말이야. 보사노바에 대한 설명글은 아니지만, 이런 편지의 형식이 사랑의 마음을 가장 ‘보사노바스럽게’ 담을 수 있을 것 같았어.
이 편지를 통해 우리 딸들의 마음 한 켠에도 보사노바가 자리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인생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버무려져 있는,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더욱 아름다운 이 음악이, 딸들의 마음에도 조금은 스며들기를. 그래서 딸들이 스스로를 잃어버렸다고 느낄 때, 희망이 간절히 필요할 때, 엄마처럼 이 노래들을 다시 찾아 듣고 자신의 내면을 향한 길을 되찾을 수 있길 바란다.
보사노바는 언제나 너희 곁에서 흐르고 있을 테니까.
≪Carta ao Tom 74≫(1974년, 톰에게 보내는 편지)는 1974년에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Vinícius de Moraes)와 토키뉴(Toquinho)가 함께 만든 노래로, 보사노바의 시작을 함께한 친구 톰(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에게 보내는 헌사이자 편지였어. 기타와 보컬이 속삭이듯 시작될 때, 마치 오래된 앨범을 펼치는 기분이 들고, 그들의 추억 속에 나도 함께 들어가는 것 같아. 아마도 그 시절의 사랑과 추억, 그리움이 음악 속에 그대로 담겨있기 때문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