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전업맘>을 직업으로 생각하면 일어나는 일들

by 쿙그민

회사를 그만두고 느껴진 상실감이 살짝 올라오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이론의 방어기제, 그 중에서도 <억압>이 강하게 발동하여 그 마음을 무의식 저 멀리 눌러버렸다. 동시에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그런 감정이 들었던 사실에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예쁘게 웃고 있는데 이 순간순간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욕심 가득한 사람❜ 이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올라왔고, 그 감정은 어쩌면 연속된 출산으로 불안정해진 호르몬 상태로 인한 산후 우울증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감정을 바라보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출산을 한 후 남편을 따라 해외에 거주하게 되었고, 그곳엔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목을 간신히 가눌 수 있게 된 아기뿐이었다. 잠깐잠깐 커피 한잔이라도 할 수 있고 따뜻한 물에 여유있게 목욕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해줄 수 있는 ❛엄마 찬스, 이모님 찬스❜ 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큰아이가 일어서서 걸음마를 뗄 때 즈음에 둘째가 찾아왔다. 그렇게 우리는 넷이 되었다.


두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되었으니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기때문에 연년생 아이들을 누구에겐가 맡기고 회사에 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사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경제력을 상실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의미했다. 아무도 뭐라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에게 점차 가혹해져갔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사회심리적 발달이론에서 인간의 발달을 8단계로 설명했다. 엄마가 되고 시간이 흘러 40대에 가까워오자 7단계에 해당되는 성인 중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의 발달 과업은 ❛생산성❜ 이다. 이 시기에 과업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하면 ❛침체❜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문득, 현재의 어려움이 이 과업을 이루지 못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시절, 취업 전에도 학생들을 가르치며 돈을 벌었고 졸업 후에도 경제활동이 중단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생산❜이 아닌 ❛소비❜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무척 서글픈 일이었다. 물론 에릭슨 역시 ❛생산❜ 의 가치가 경제적인 활동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고 가족을 돌보는 일, 후계 양성을 위한 교육활동 역시 가치를 지닌다고 했지만, 뭔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생산적인 일은 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부를 직업으로 삼아보기로 했다.


직접 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를, 주부를 직업으로 삼고 정말 열심히 하기로 했다. 동기부여를 위해서 집안 대청소를 하는 날이면 통장에서 현금을 뽑아서 자신에게 주는 방식도 동원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결과가 보이는 노력이었지만... 예상대로 그러한 방식은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퇴근이 없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의미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 해도 업무 장소에서 밥을 먹고, 퇴근 없이 잠을 자고 근무 시간과 업무 범위의 경계가 없다고 한다면 직업으로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잠이 든 후 정확히 20분 후부터 계속 깨는 예민한 기질의 아이와 매일 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육퇴 후 맥주한잔의 여유조차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마와 주부의 역할이 직업이 될 수 없다고 느낀 또 하나의 이유는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빨래를 접어 두고 잠시 부엌에 다녀오면 빨래들은 두 아이들의 놀잇감이 되어 구깃구깃해져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시기에 빨래감은 뒤돌아서면 쌓였고 손으로 쥐어짜며 과일을 먹는 시기에는 열심히 빨래를 해도 옷에 묻은 얼룩은 쉽게 지워지지도 않았다. 아무리 청소해도 발바닥에는 과자부스러기가 밟혔고 아무리 정리해도 한밤중 물을 마시기 위해 나오면 꼭 발바닥에 뾰족한 장난감을 밟고 쓰러지곤 했다. 무언가 ❛완성되었다, 이 정도면 됐다❜ 하는 결과물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주부와 엄마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도 직업이 될 수 없는 이유는 《한국표준직업분류》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앞서 확인한 주관적인 생각보다도 가혹하지만 객관적인 기준에서도 주부는 직업이 될 수 없다.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따르면 주부는 학생, 봉사자, 의무복무 중인 군인, 수감자와 함께 직업이 아니라고 명기되어 있고, 이러한 내용은 직업상담사 자격시험에 종종 출제되기도 한다. 직업이 되려면 유사성을 갖는 과업을 수행해야 하고 일시적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경제적인 거래 관계가 성립하는 활동이어야 하므로 주부도 엄마도 직업이 아닌 것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주부도 직업이고 일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은 처음부터 터무니없는 고집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생산성❜을 찾고자 했던 그때의 나를 마주하기로 했다.


직업으로서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다양한 시도 속에서 주부와 엄마라는 역할이 절대 직업이 되어선 안 되는 이유를 찾아냈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많은 경우, 성과 위주로 평가를 받고 소위 말하는 몸 값이 책정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보니 과정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보다는 결과물, 성과가 중요한 사회에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그러한 잣대에서 엄마의 역할을 수행하다보면 깨끗하게 정리된 집안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거나, 집안을 어지럽히는 아이와 갈등이 심해지기도 한다. 또한 아이의 성적이 엄마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 성과로 평가 받는 현실과 마주하기도 한다. 전혀 교육학적 지식이 없어도 자녀가 명문대에 입학하면 갑자기 입시 컨설턴트로 변신하여 제 2의 삶을 살아가는 엄마들을 만나는 것 또한 익숙한 일이 되었다.


엄마는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 아니다.

의미 있는 하나 뿐인 역할인 것이다. 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먼길을 돌아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지만 여기서 모든 것이 정리된 것은 아니다. 머리로 정리는 끝났지만, 마음 한 구석이 어지러웠다. 기분이 좋고 편안하지만 조금 불편한 그 마음을 이제 바라보아야 했다.


<틈새 심리학>

참고문헌: 『심리학의 쓸모』(이경민 지음, 믹스커피, 2020)

에릭슨의 심리사회발달이론

심리학자로 가장 널리 알려진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격의 발달을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성기기로 나누어 설명한 것에 반해 에릭슨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인간은 발달과 성장을 지속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심리사회발달이론에서는 각 단계의 연령 별로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위기를 경험하고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경우 각 단계의 성취를 달성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실패할 경우 심리적 어려움을 경험한다고 하였습니다.

각 단계별 발달과업

1단계(0~1세) 기본적 신뢰 vs. 불신

2단계(1~3세) 자율성 vs. 수치심

3단계(3~6세) 주도성 vs. 죄책감

4단계(6~12세) 근면성 vs. 열등감

5단계(12~20세) 정체감 vs. 역할 혼돈

6단계(20~40세) 친밀감 vs. 고립감

7단계(40~65세) 생산성 vs. 침체감

8단계(65세 이상) 자아통합 vs.절망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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