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대현의 눈빛에서 남편을 보았다

by 쿙그민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이미 소설을 읽었지만, 영상으로 그 이야기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원작의 대사가 영상으로 옮겨진 것을 보면 아픈 마음이 더 커질 것 같았다.


글로 읽으며 상상했던 모습을 영화에서 충분히 표현하고 있었다. 기억에 남았던 대사도 곳곳에서 그대로 튀어나왔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책으로 읽을 때 주목하지 못했던 부분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지영 씨의 남편 대현 씨였다.


영화에서 배우 공유의 연기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지영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이 가슴에 박혔다. 우리가 종종 만났던 비련의 주인공들의 남편은 비극의 정점으로 몰아가는 불행의 씨앗이었다. 외도, 폭력, 도박 3종세트를 모두 갖추거나 적어도 1개 이상의 이유로 아내를 힘들게 만드는 그런 남편상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남편은 일반적인 범위 내의 남편 수준, 아니 어쩌면 아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우리 주변의 남편처럼 보였다.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아내를 도와주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거나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 그런 인물에 가까웠다.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을 이전에는 보지 못했다.


둘이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하고 함께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잘 살아갈 것을 다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저런 위기들을 맞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외부 요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두 사람이 지치고 힘든 틈을 타고 파고든다. 처음에는 그 문제만 해결하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나중에는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조차 잊고 서로의 존재가 가장 큰 걸림돌처럼 느껴지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불행한 일들, 대현 씨가 경험한 지영 씨의 정신적 아픔이 남편의 잘못도 아내의 잘못도 아닌 그들이 삶에서 만나게 된 하나의 사건인 것과 같다.




이 시대의 대현 씨들에게도 낯선 경험이었다.


최근 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양성평등 교육이 필수적 과정이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그런 교육은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집집마다 내려오는 전통, 가풍에 부모님의 가치관이 더해져 자녀에게 전수되어 왔다. ❛ 남자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라고 생각했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식구들을 책임지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었다. 아버지는 바깥일을 하시고 어머니는 집안 살림을 맡아하셨다. 하루뿐인 휴일에 아버지가 쉬시면 가족들은 그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조심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성장해보니 달라져있었다. 직장 생활하고 돈도 벌면서 집안일도, 육아도 함께 해야 한다니 뭔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때로는 ❛ 집에서 애 보고 살림하는데 뭐가 그리 힘들다고... 밖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밟히고 하는 사회생활은 뭐 안 힘든 줄 아나? ❜ 라는 생각도 올라왔다.




이 시대의 또 다른 대현 씨는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를 급히 받았다.

평소에 전화를 잘하지 않는 사람이다. 급한 일이 있어도 메시지로 소통하는 사람이었다.

울고 있었다.


❝회식 아직 안 끝났어? 언제쯤 오는 거야... 나 더 이상 못하겠어...❞

주변에 있던 선배들이 어서 집으로 가보라고 했다.


연년생 아이들을 재우는 것은 전쟁이었다. 동시에 두고 재울 순 없다. 큰아이는 둘째가 잠들기 직전에 종알종알 말을 했고, 아가 내려놓고 자기를 안아달라고 했다.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거실에 뽀통령을 틀어주고 그사이에 둘째를 재운 후 조용히 나와서 첫째를 데리고 가서 재우는 방법이었다. 그날따라 잠든 둘째를 내려놓으려는 순간마다 큰아이는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10시가 넘는 시간까지 그 과정을 반복하던 중 큰아이는 또다시 들어왔고 엄마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배변 훈련을 하던 큰아이는 쉬하고 싶다고 말을 하려던 것이었고 결국 바지에 쉬를 하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너무나 미안했던 엄마도 울고 자다가 깨어난 둘째 역시 울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한 것이다.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전쟁은 이미 끝이 났고 언제 깨질지 모르는 평화가 감돌았다.


문득 귀엽게 잠든 딸아이를 보았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제법 나이보다 똑똑한 것 같았다. 그럼 ❛우리 딸은 나중에 커서 무슨 일을 하려나?❜ 하면서 즐거운 상상을 해보았다.


그리고 그 딸아이를 재우다가 함께 잠든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아내도 제법 똑똑한 딸아이였을 것이다.


아내가 기대했던 건 집안일을 똑같이 분담하라는 것도, 회사를 그만두고 대신 아이를 보라는 것은 아니었다. 꾸질 꾸질 엉겨 붙은 머리를 감을 동안 아이를 봐주거나 똥 기저귀를 가는 사이에 나머지 한 명을 변기에 앉혀주는 것, 식사 준비할 여력이 없으니 오늘은 배달 음식을 시켜달라는 요청. 그 정도를 받아주는 것이었다.


서로가 알고 있었다.

우리 둘이 해내야 하는 것을

그리고 함께해내야 한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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