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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파장

두 아이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

by Hoho

2024년 10월


인제 신월리 두 달 살이 프로그램 이끔이 현욱은 5세의 솔, 7세의 가야 이렇게 두 아이를 돌보는 아빠이다. 캐나다에서 살다가 자연에서의 삶을 꿈꾸며 약 2년 전쯤 신월리로 이주했다. 마침 소 생추어리 돌보미를 채용하는 시민단체 '동물해방물결'을 만나 시골에서의 일자리와 거처를 모두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어린아이 둘이 씩씩하게 제 몸보다 몇 배는 큰 소에게 먹이를 주고, 축사를 청소하고, 들판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나도 양육을 하게 된다면 이렇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을 아이들의 배움터이자 안식처로 삼고 싶었다. 자연에는 모든 놀잇감이 있고, 모험의 장이 있다. 그런 자연을 함께 탐험해주는 부모가 되고 싶었다. 두 달 살이를 하며 아이 돌봄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볼 수 있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달 살이가 시작되고 2주쯤 지났을까, 위기가 찾아왔다. 나를 포함한 참여자 3분 모두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라 24시간 에너지가 넘치는 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벅찬 것이었다. 가야와 솔은 서로 싸우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떼를 쓰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두 달 살이 프로그램은 어른들 위주로 짠 내용이라서 아이들 입장에서는 재미가 없을테다. 그럴 때면 내 옆에 붙어 재잘재잘 말을 걸기도 하고, 종이접기나 묵찌빠 놀이를 해주길 원해서 프로그램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숙소에 돌아오면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글을 쓰거나 밀린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나와서 놀아주길 바라거나, 숙소 앞까지 찾아온다. 그러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땐 작은 방 안에 문을 잠그고 쥐 죽은 듯 숨어있거나, 아이들이 밥 먹을 시간을 피해 늦은 시간에 밥을 먹으러 주방에 가곤 했다.


이런 이유로 다른 마을에서 두 달 살이를 하는 분들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갈 때는 아이들이 동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조용해지니 편한 듯싶다가도 아이들이 함께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해 아쉬워하는 표정을 보면 마음 한켠에 생기는 미안함은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나 힘든 아이 돌봄을 현욱은 365일, 24시간 하고 있는 것이다. 아, 돌봄이란 이런 것인가. 언젠가 아이를 돌볼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 복잡해졌다.




현욱은 '언스쿨링(Unschooling)'을 한다. 홈스쿨링까지는 들어봤는데 언스쿨링은 처음이었다. 어른들이 짠 교육 과정을 주입하는 것 자체를 하지 않고, 삶에서 많은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배움을 얻도록 하는 교육이다. 엄청난 체력과 인내력이 요구되는 부분이라 가까이서 보니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현욱은 소를 돌보는 일을 하며 아이들의 끼니도 챙겨주고, 밭일도 하며, 아이들의 배움에 도움이 되는 경험이라면 뭐든 신청해서 다닌다. 현욱의 아내 타샤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성향이라 주로 현욱이 양육을 한다.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크게 힘들지 않고, 상대가 못 하고 있는 부분만 찾을 것이 아니라 여력이 되는 사람이 주로 양육을 하면 된다고 한다. 더불어 신월리의 이야기가 알려지고 인구가 늘어나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많아지면 공동육아가 되니 더 수월해질 것이라고 했다.


나 또한 혼자만의 시간이 꽤 많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 동시에 아이를 낳고 싶은 욕망도 있고, 아이를 키울 때 어떻게 키우고 싶다는 나름의 교육관도 있다. 이 모두를 충족하려면 '일하고 육아하는 나'와 '쉬는 나' 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내 짝꿍 상진은 아이들이랑 정말 잘 놀아준다. 체력이 좋아서 그런지,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상진은 나의 두 달 살이 동안 신월리에 몇 번 놀러왔는데, 그때마다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정작 나랑 보내는 시간이 적었다. 상진은 자신 있게 아이들은 자기가 키우겠다고 한다. 아이들을 11명 모아 축구팀을 만들겠다고도 한다.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의구심이 든다. 물론 엄마로써 해야 하는 역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돌봄 노동을 독박쓰고 사회에서 경력이 단절되는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맞벌이를 하면 돌봄의 질도 많이 떨어진다. 부모가 장시간 노동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학원 뺑뺑이를 돌고, 집에 오면 건강한 집밥을 차려먹는 대신 배달 음식이나 외식에 의존하게 된다.


현욱의 사례처럼 여력이 되는 사람이 주 양육을 하며, 마을의 인구가 늘어나 공동육아를 하는 문화가 생기면 나도 가능하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관계가 단절되어 있고, 많은 일들을 외주화 하고, 부부 둘만 아이를 도맡아 키우는 요즘의 도시에서는 상상해보기 어려운 문화이다.


개구쟁이 가야와 솔 ⓒ hohophoto




하루는 두 달 살이 프로그램으로 마을 책 읽기 모임 '자치와 자급'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책을 읽고 각자 맡은 부분을 발제하며 함께 토론해보는 식의 공부 모임이었다. 현욱은 가야와 솔을 데려갔고, 다른 한 분도 아이 둘을 데려와 총 4명의 아이가 모임 공간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뛰어놀았다. 한창 모임이 진행되고 있는데, 밖에서 뛰어놀던 아이들 중 한 명이 뛰어들어오더니 현욱한테 매달리며 떼를 쓴다. 무언가 친구들 사이에서 마음에 안 들었던 게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모임원들은 아이들의 떼쓰는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토론을 이어가는데, 나는 통 집중이 안 되었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노는 것을 배경음 삼아 진행되는 독서모임이라니. 굉장히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의 신경을 거스르는 행동을 잘 견디지 못하다보니, 노키즈존이 있는 카페까지 생겨버렸다. 아이들의 활발한 에너지는 어른들의 교양있는 커피 타임에 방해만 될 뿐이라고 여겨진다. 대중교통에서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 식당에서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견디지 못해서 결국 태블릿을 보여준다.


심심함을 참지 못하고 계속 자극적인 컨텐츠가 양산되는 태블릿을 쥐어주면, 그 아이는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더불어 심심할 때마다 바로바로 도파민이 충족되니 인내심도 잃어버린다. 심심할 때 아이들은 휴지 한 장으로도 재미있는 놀이를 개발한다.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서도 상황극을 상상하며 노는 법을 안다. 떠들거나 상상할 자유가 태블릿으로 쉽게 통제당한다. 어른들의 인내심 부족으로 인해 아이들의 인내심도 바닥이 된다.


차분하고 조용한 나 또한 아이였던 적이 있는데, 어른들의 모임을 따라나가면 너무 심심해서 다른 엄마들의 아이들과 함께 이리저리 탐험하고 술래잡기하는 시간이 좋은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조금 더 아이들에게 관대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아이들의 본능을 통제하는데 힘쓰느라 어려운 육아를 하고 있다. 아이들이 상상력을 펼치며 뛰어노는 것을 많은 이들이 흐뭇하게 바라봐 준다면 육아의 난이도는 크게 내려갈지도 모른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다.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가야와 솔의 에너지에 나의 에너지를 모조리 빼앗겨보니 대충 알겠다. 이런 아이들과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 얼마나 힘들지.


그러나 아이들로부터 받는 에너지도 분명히 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노인들의 삶에 더 활기가 생기기도 한다. 아이 돌봄은 어른이 일방적으로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을 받기도 하는 상호 돌봄인 것이다. 차가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어르신들이 정자에 둘러앉아 수다를 떠는 옛 마을 공동체의 모습이 그립다. 엄마와 아빠만, 혹은 외주 받은 선생님만 아이를 케어하는 현재의 도시 시스템에서는 어른들의 인내심을 바랄 수 없다. 아이들은 계속 통제당할 것이고 자극적인 놀잇감을 수동적으로 제공받기만 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잃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과 뛰어노는 것은 힘들지만, 종이접기를 하거나 미술활동을 하는 등 차분하게 하는 것은 자신 있다. 상진은 몸을 쓰고 뛰어노는 것에는 자신 있다. 우리는 각자가 가능한 돌봄의 영역이 있고 각자의 색이 있다. 마을 구성원이 서로 자신만의 돌봄의 파장을 일으킨다면, 아이들은 다양한 것을 배울뿐더러 이 마을에서 안전하다는 감각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돌봄의 파장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상호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 같은 조용하고 예민한 인간도,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도, 기력이 쇠하는 노인도 모두 안전하고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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