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벽을 힘껏 찬다.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나와의 시간이다. 투명한 물아래로 비치는 타일 바닥이 움직이며 내 속도를 보여준다. 물이 막아버린 귀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 숨소리와 옆으로 고개를 돌릴 때마다 잠깐씩 들리는 물소리가 전부이다.
발을 차며 나아가면서 고개를 살짝씩 들면 앞사람의 발이 보인다. 그것으로 내 속도를 가늠한다. 남들보다 느린가 빠른가. 누가 초를 재주는 것도 아니니 비교할 기준은 오직 내 앞사람과 뒷사람이었다. 뒷사람의 손끝이 내 발끝을 스치는 기분이 들면 초조해진다.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면 레인 끝에서 잠깐 멈추고 뒷사람을 앞으로 보낸다. 그리고 나는 또 앞사람이 된 뒷사람을 쫓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앞사람이 된 뒷사람이 내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면 헐떡이는 숨들 중 하나는 한숨이 된다.
'하, 왜 이렇게 다들 잘해.'
그렇지만 쉴 수도 없다. 뒷뒷사람이었던 뒷사람이 또 나를 따라오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설명을 하려고 잠깐 서있는 시간 동안 숨을 고른다.
'허억, 허억, 휴우우...'
죽을 것처럼 힘들었는데, 심장이 펄떡펄떡 뛰니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
수영선수가 숨을 고르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흉부가 들숨에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날숨에 순식간에 홀쭉해진다. 내 가슴은 그만큼의 숨을 허용하고 있나? 그에 비하면 내 숨소리는 미약하다.
심장이 조금 잠잠해졌다 싶을 즈음 또다시 자유형 3바퀴. 선생님이 강조한 팔의 모양을 신경 쓰면서 하려니 왠지 발차기가 느려진다. 하지만 이번에도 따라 잡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팔다리를 휘젓는다. 내 앞에는 항상 나보다 빠른 사람만 있었다. 나는 항상 느렸고, 그들을 따라가는데 온 힘을 다했다. 힘들어서 중간에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 때도, 시계를 보며 버텼다. 5분만 더 하면, 10분만 더 하면 끝난다.
그때 옆 레인의 사람들이 보였다. 나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 그 뒤로는 중급, 초급, 기초반 수강생들. 생각해 보면 내가 걸어온 길이었다. 작년에는 지금보다 더 힘들어하고 있었고, 3바퀴를 연달아 도는 것을 많이 힘들어했다. 그전에는 한 바퀴를 완주해도 뿌듯했던 때가 있었고, 처음 시작할 때는 반 바퀴도 힘들어서 중간에 멈추곤 했다.
나는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앞선 사람들만 보고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지 않았을 뿐이다. 어쩌면 내 앞의 사람들은 나보다 더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주 2,3회 하면서 매일 연습하는 사람들을 이기려 했을지도 모른다. 운동은 우연을 뺀 삶처럼 정직하다. 딱 내가 연습한 만큼, 그리고 중간중간 빼먹지 않고 꾸준하게 하면 성장한다.
어쩌면 삶도 마찬가지이다. 꾸준히 무언가를 하다 보면 운도 찾아온다. 어느 순간 갑자기 성장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그전에 이루었던 꾸준함은 보이지 않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그 꾸준함을 지속하는 힘은 역설적이게도 잠시 멈추어 서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들이다. 매일이 똑같고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가 남긴 자취들은 또 하나의 길이 되어 있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잠시 쉬며 뒤를 돌아보자.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자. 앞선 내가 언제든 그 기록을 펼쳐보고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