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가을, 수영을 시작했다. 처음 수영을 등록하고 나서 얼굴 피부가 뒤집어져 낙담한 뒤로, 수영을 포기해야겠다는 마음까지 먹었다. 하지만 손목과 발목이 약한 나에게 운동량을 충분히 채워주면서도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은 수영 뿐이었다. 다시 용기를 내어 이번엔 다른 수영장에 등록했다.
수강신청보다 어렵다는 수영 신규회원 등록에 성공하니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다시 끓어올랐다. 이번에는 피부를 잘 관리해서 기초반에서 머무르지 않고 중급, 상급까지 올라가 볼 심산이었다.
6개월 후, 나는 어느새 상급반에서 접영을 배우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내 예민한 피부는 고양시 수영장 물에 반응하지 않았다. 내부도 훨씬 넓고 사설수영장보다 저렴했다. 심지어 여성이라면 10% 할인도 해준다. 생리 기간에 빠져야 하는 상황이 억울했던 나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사설수영장에 있던 온탕이 가끔 부럽지만, 목욕탕에 가면 될 일이다.
"띠리리리리리링-"
5시 10분. 알람이 울렸다. 10분의 잠을 더 자기 위해 10분 일찍 알람을 맞추어놓는 편이다. 잠도 자연스럽게 깨는 것이 좋은데. 분, 초 단위로 모든 일이 벌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알람 없이 살기란 참 힘들다. 시골 가서 살게 되면 해와 함께 일어나고 해와 함께 하루를 정리해야지, 다시 한번 다짐한다.
새벽 기상은 여전히 힘들다. 3개월쯤 전부터 남편과 함께 다니려고 6시 수영으로 바꾸었는데, 초반에는 열심히 나가더니, 점점 한 번씩 빠지게 된다. 온 세상이 아직 잠든 시간에 밖에 나가는 게 싫다. 중요한 건 5시 20분에 일어나려면 9시 반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것. 저녁 먹고 뒷정리하고 여가 시간을 갖다 보면 참 어려운 일이다. 마무리할 일이 있거나, 저녁 미팅이 있는 날에는 11시가 훌쩍 넘어서 잠든다. 열심히 사는 현대인은 또 힘들다. 미라클 모닝이니 갓생이니 다 듣기 싫은 말이다. 갓생 말고 인생을 살고 싶다. 야행성인 고양이는 낮에 13시간을 자는데, 주행성인 인간은 낮이고 밤이고 열심히 자기 계발을 한다.
그래도 이런 새벽기상 루틴에 적응해 두면 여름엔 많은 도움이 될 거라며 나를 위로한다. 몸은 갓생을 거부하면서도 머리는 갓생을 따라하라고 한다. 개인으로서의 나와 집단에서의 나는 이렇게 괴리감이 크다.
추운 새벽, 움츠러든 어깨 위로 덮인 겉옷을 한껏 움켜쥐며 차가운 차 안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추운데 수영을 어떻게 하지?' 평소와 똑같은 의문이 매번 찾아온다. 수영장 앞에 자랑스럽게 서 있는 큰 전광판을 흘깃 바라보며 들어갔다. 태양광 발전 전기량. 10,532,860 따위의 숫자. 그래, 영하 10도의 날씨에, 그 큰 실내 수영장에 28.9도의 수온을 유지하려면 화력 발전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겠지. 그치만 여전히 대부분은 화력발전 아니겠어? 회의적인 생각이 들지만 그렇게 따뜻해진 수영장 안에서 나도 혜택을 보는 사람이다.
쏴아- 쏟아지는 샤워기 물을 맞으면 그제야 정신이 든다. 얼었던 몸이 녹으니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다. 맨몸으로는 여전히 서늘한 수영장 물에 들어가기 전에 충분히 따뜻한 물로 몸을 데운다. 물을 틀어놓는 시간이 늘어날 때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화력 발전소의 연기가 떠오른다. 몸은 엄마 품처럼 따뜻한 온도를 간절히 원하지만 머리는 '어서 물을 꺼!'를 외치고 있다.
쿰쿰한 물때 냄새와 소독약 냄새를 맡으며 수영장 물에 발을 담근다. 옆 레인에서 첨벙하고 다이빙을 해서 나에게 물세례가 쏟아졌다. 옆사람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천천히 몸을 물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