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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Feb 15. 2024

위성과 항성

집 근처 카페에 왔다. 촌스러운 시골 동네라고만 생각했던 화정동과 대곡동 사이에 크고 멋진 카페가 생겨서 종종 오는 곳이 되었다. 생기 넘치는 땅 속 축축한 흙을 상징하는 테라코타 색으로 칠해진 내외부의 벽은 내 취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서 놀라웠다. 높은 층고와 그 한가운데 큼직하게 매달려 있는 유려한 곡선의 조명은 미술관에 있는 조각품 같다. 2층에 가면 명상실처럼 동그란 방이 있고, 가운데로 떨어지는 자연광은 공간을 성스럽게 만든다. 2층 테라스에 나가면 눈앞에는 논밭이 펼쳐져 있고, 낮은 단독주택들과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기찻길이 보인다. 억새와 각종 들풀들로 모던하게 꾸며진 마당 조경과 더불어 카페에서 머무는 시간을 평화롭지만 힙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수도권 외곽, 이런 넓은 부지에 지어진 멋진 카페나 식당들을 찾아다니기를 좋아한다.


번잡하고 시끄럽고 온갖 자극이 넘쳐나는 서울을 벗어나야겠다 결심한 뒤로, 고양시에 살면서 의정부 소재의 밭에 농사를 지으러 다니고 있다.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한적한 파주나 강화도로 드라이브 간다. 남편과 함께 우리가 미래에 살 곳은 어디가 될지 탐색하러 강원도로 여행을 간다.

그런데 왜, 지금 당장 시골로 이주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결심이 선 순간에 바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나의 문제는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지금의 내 삶은 마치 마음은 시골 어딘가에 있지만 서울이라는 거대도시가 끌어당기는 무한한 중력에 이끌려 뱅뱅 돌고 있는 위성 같다. 서울과 수도권에 30년이 넘게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의 삶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서울에서 성공한 회사원이 되어 아파트를 한 채 장만하는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이 요즘을 사는 젊은 사람들에게 깊게 각인되어 있듯이.


사실 2년 전 단양에서 우프(WWOOF)*체험을 했을 때 느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서울에서의 시간과는 확연히 다르다. 할 일도 많고 바쁘지만, 마음의 여유가 있다. 일 하다가 고개를 들면 넓은 자연이 펼쳐져 있다.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조급함이 생길 이유도 없다. 시골살이의 경험이 전무한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우주를 경험하고 온 것 같았다. 같은 한국 땅 안에서도 이렇게나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요즘같이 지역에서의 청년 인구가 소중한 시대에, 나는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시골살이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금전적인 지원을 받으면서도!


그때부턴 내가 시골에 가서 살고 싶은 삶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정책 지원이라는 것은 꼭 사회의 움직임보다 한 발짝 느리기 때문에, 시골에서의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지원해주지는 않는다. 청년 '농부'에 대한 혜택이 큰 이유이다. 그렇지만 땅을 황폐화시키는 관행 농사를 지으면서 농작물을 판매하는 일에 종사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지구에 이로운 순환농사를 지으며 먹거리를 일부 자급하면서도, 순환적 생태계와 그 안에서 무해하게 살아가는 슬로우라이프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 그 모습은 카페가 될 수도, 숙박시설이 될 수도, 식당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학교가 될 수도, 미술관이 될 수도, 책방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재미가 들렸다. 멋진 카페에 가면 어느새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이곳만의 특색이 뭘까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뭘까.

지방 어느 마을에 살게 되든 간에, 그곳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빛나는 항성이 된다면. 단순히 놀러 오기 좋은 곳이 아니라 살기 좋은 곳이 되어준다면. 모든 이가 수도권이라는 별 주위로 모여들면서 생기는 갖은 문제들을 상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지치고 아픈 이들을 위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허리 아래만치 낮은 곳에만 나있는 통유리창 밖으로 고요한 눈이 내린다. 사람들은 계속 들락날락하고, 카페 안의 모든 좌석은 차버렸다. 시끌벅적한 말소리에 파묻혀 버리기 전에 몸을 일으켰다.


*우프(WWOOF) : '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의 약자. 유기농가와 자원봉사자를 연결하는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금전적인 교환이 없는 신뢰를 바탕으로 그들의 문화교류와 교육의 기회를 넓히고 자연과 공존하며 지속가능한 글로벌 사회를 만드는 활동이다. (출처 : 우프코리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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