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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Feb 22. 2024

자기 돌봄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어보니 창 밖으로 온통 하얀 세상이다. 우수(雨水)가 지나고 봄이 오려나 싶더니 대설(大雪)이 내렸다. 오늘을 쉬는 날로 정하고 야심차게 새벽 수영도 빼먹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찌뿌드드한 몸을 깨워낸다. 명상을 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오늘 할 일' 목록. 잡생각을 비워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역시 핸드폰 게임이다.


책상 앞에 앉으면 2024년 새해를 시작하며 꼼꼼하게 적어놓은 1년의 목표와 단기 목표들이 눈에 들어온다. 목표를 적을 때의 단단한 마음과 지금 당장 쉼이 필요한 나의 물렁한 마음이 모순적이다. 어떨 때는 이 원대한 목표가 나를 옥죄어온다고 느낄 때가 있다. 항상 나를 과대평가하며 목표를 세우는 편이라서(아니면 몸이 마음을 못 따라주거나), 목표했던 바를 다 체크하지 못하고 다음날로 넘기기 일쑤니까. 자연히 의지력이 약한 나를 자책하게 된다. 목표를 작게 잡으면 달라질까? 아니다. '너는 갈 길이 얼마나 먼데 이것밖에 못해?' 하며 자책할테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유튜브에서 '마음 근육 다지기', '성공하는 사람들의 N가지 특징' 따위의 콘텐츠를 찾아보게 된다. 나에게 대입할 수 있는 조언을 찾으며 위안을 받는다.


자신을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아플 땐 어디가 아픈지 자신만이 직접적으로 감각할 수 있고, 마음이 좋지 않으면 무엇 때문인지, 조금 쉬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충분한 수면과 건강한 먹거리를 빼앗긴 현대 사회에서 자기를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 또한 긴 회사 생활 동안 나에게 필요한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했고, 일에 지쳐 일상으로 돌아가면 건강한 먹거리를 챙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퇴사 후 나 자신과 했던 가장 중요한 다짐이 '잘 자고, 잘 먹기'였다. 대부분의 끼니를 집에서, 자연식물식으로 해 먹고 밭에서 농사지은 것들을 직접 요리해 먹었다. 무슨 일을 해도 최소 8시간을 자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피부가 좋아지고,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위 요즘 젊은 사람들, 2030 세대에서 중대질병이 늘어나면서, 사회적 돌봄 비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국민연금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없는 미래의 우리가 아프면, 누가 우리를 돌볼 수 있을까? 급격하게 줄어들 미래의 청년들?


자신의 가치를 성과로 증명해야 하는 성과중심 사회이다. 남들처럼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비난하고 닦달하는 자기 착취의 단계에 이른다.

나도 자기 돌봄의 루틴이 조금 짜이니 일을 늘리기 시작했고, 다시금 목표와 성과를 지향하며 자기 착취의 굴레에 빠져들고 있음을 알아챘다. 늪에 빠지고 있는 발목을 발견했을 때, 아차 싶었다. 정신 차려, 너는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고 싶은거지 누구처럼 떼돈 벌고 싶은 게 아니잖아!


'퇴사하고 월천 벌기'같은 자극적인 문구에 홀리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막상 눌러보면 허황된 콘텐츠이거나 광고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러나 경쟁사회의 현실이 힘들다고 단기간에 떼돈을 벌어서 조기은퇴하겠다는 꿈을 갖는 순간 또다시 자기 착취와 불행의 굴레에 빠져드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 퇴사하고 단기간에 월 천 벌게 된 사람들은 소수이며, 그 사람들이 내 인생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인생의 목표가 돈이 아니라 행복이라면,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가치들이 무엇인지 발굴하고 그것이 내 일상이 되도록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비로소 삶은 아름다워진다. 내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이든 건강은 삶을 견인해 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세운 목표가 나를 옥죄어오게 두지 말자고 다짐한다. 밤새 눈이 펑펑 내려 하얀 세상이 된 오늘은, 평소 가고 싶었던 카페에 가서 사진도 찍고 책도 읽었다. '할 일 목록'을 잠시 뒤로 한 채 뽀드득 눈의 질감을 느끼며 숲길을 거닐었다. 오려다가 잠시 주춤한 봄을 기다리며 내가 사랑하는 겨울 풍경을 즐겼다.


겨울 나무 @hoho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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