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꾸러기수비대의 주제곡 ‘똘기 떵이 호치 새초미 자축인묘~’를 부르면서 슈퍼그랑조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일곱 살 어린이는 몰랐을 것이다. 빨강머리 앤을 동경하던 그 어린이가 장차 나이가 들어서도 2D캐릭터와 사랑에 빠지게 될 거라는 사실을.
초딩이 된 그녀의 2D 첫사랑은 천사소녀 네티의 셜록스였다. 매번 네티를 놓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그 집념과 열정, 잘 생긴 얼굴에 츤데레 매력까지! 한 때 뭇 초딩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더랬다.
셜록스가 좋아하는 네티가 되고 싶던 그녀는 친구가 가진 1미터쯤 되는 네티 인형의 옷을 벗겨 자신의 커다란 몸을 구겨 넣기에 이른다.
이것이 내 오타쿠로서의 인생의 시작이다.
나는 애니메이션이 좋았다. 코믹, 호러, 로맨스, 판타지, SF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서점에 가서 애니메이션 월간지 <Newtype>을 사들고 신나게 돌아온 고등학생의 방은 증정품으로 딸려오는 캐릭터 브로마이드로 도배됐다. 어렵게 발견한(?) 만화가 지망생 동급생과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 ‘코믹월드’에 가는 것은 어린 날의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덕’으로 낙인찍혀, 왠지 이상한 인간으로 취급됐기 때문에, 나는 혼자만의 짝사랑처럼 누구와 공유하지 않고 홀로 애니메이션을 향유했다.
서른을 훌쩍 넘어서도 여전히 애니메이션을 찾아보는 나는, 그렇지만 오타쿠가 될 수 없다.
이미 봤던 애니를 수십 번 돌려보며 초 단위로 분석하고 작품의 세계관을 역사학자처럼 줄줄이 꿰고 있는 진정한 오타쿠들에 비하면 나는 한낱 애니메이션 애호가일 뿐이다.
그리하여, 이 브런치북에 뭔가 심오한 해석이나 신박한 재미를 기대했을 독자님들께는 미리 사과의 말을 전한다.
이 글은 순수하게, 내가 애정하는 애니메이션을 오래 기억하고픈 마음에서 쓰기 시작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입을 털만한 곳이 없어서다!
오타쿠가 되고 싶은 어른이의 100% 사심충족 두 번째 브런치북,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