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의 좋은점 2
그렇다면 소아과의사로서 제가 보는 소아과의 장점을 본격적으로 말씀드려볼게요.
소아과청소년과 의사는 현재 태어나자 마자부터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인 청소년까지 볼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쓰는 약의 종류와 용량의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합니다. 질병의 종류도 감염성 질환과 면역반응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혈액암이나 혈액 질환들도 있지요. 선천성 질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발달지연이나 성장이 잘 안되거나 아님 오히려 너무 빨리 사춘기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과로 치면 감염, 호흡기, 알레르기, 위장관, 간담도, 혈액, 류마티스, 내분비까지도 아우르게 되지요.
소아과에서 보는 90% 이상은 감염성 질환입니다. 인생 전체 중에서 가장 많이 아프고, 몸의 여러 반응이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시기인 어린이 시절에 방문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의 감염은 어른의 감염과는 매우 다르고 아이들의 회복력은 매우 훌륭합니다. 아주 힘들어보이다가도 몇시간 만에 드라마틱하게 호전을 보이는 경우도 많지요. 이런 감염의 경험들이 쌓이면서 아이는 점점 더 사회에 나가도 왠만해선 넘어지지 않는 훌륭한 형님, 누나들이 되는 것이지요. 성인에서 발생하는 감염성 질환에 비해 심각하지 않고,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가 많지 않으며 매우 유행성을 타지만 지역사회 내에 어느정도 면역이 쌓이고 자신도 경험을 쌓으면 더이상 걸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감염성 질환은 어른들의 감염성 질환에 비해 덜 septic 합니다.
어린이들의 질환은 특정 시긴에 나타나는 질환들이 특징적으로 정해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헤노흐슐렌 자반증,가와사키병, 특발성 혈소판 감소증과 같은 병은 성인에서 나타날 때보다 경과가 매우 양호하고 이것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일과성 면역반응에 의한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즉, 어른에서 가와사키나, 혈소판 감소증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예후가 불량하기 때문에 만나는 일 자체가 매우 슬플때가 많지요. 하지만 소아에서는 자연히 없어지거나 추후에 문제가 없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소아과 의사로서는 걱정을 조금 덜 하는 편입니다. 그 대신 상대적으로 만날 확률이 조금 더 높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아이들의 질병은 시간의 순서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진단을 하거나 점점 더 병이 확실해지게 되거나, 성장하면서 변하거나, 없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소아과 의사들은 옆에서 그때 그때 맞는 조치를 하면서 경과를 관찰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생후 한달 경 태열이 심했던 아이들은 나중에 아토피성 피부염일 확률이 높습니다만, 단순히 아토피성 피부염만 있는 건 아니고 돌쯤 되면서 기침이 심해지거나, 유치원에 갈쯤에 비염이 심해지고 그 사이에 중이염이 자주 반복되는 경우가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소아과에서 소위 "기관지가 안좋아요"라고 말하는 recurrent wheezer와 아토피성 피부염, 비염의 아이들이 이 스펙트럼 안에 속합니다. 한번에 없어지는 단순한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이쯤되면 이 약을 써야겠다, 이약으로 조절해야겠다 하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되요. 결론을 내리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요. 하지만 이런 아이들이 모두다 천식환자나 아토피성 환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 특별한 조치 없이도 일정 비율의 아이들은 호전이 되거든요. 이런 순간들을 함께 하게 되어 힘들기도 하지만, 저의 노력이 아니라 아이의 회복력으로 자라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제가 레지던트 1년차 때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소아과 병동에 아이들은 울고 있지만, 생명의 향기가 난다." 부모님들도 지치고, 아이들도 울고 불고 힘들지만,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아과는 저에게 늘 매력이 있네요.
그리고 이 일의 가장 큰 장점은 아이들이 이쁘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이쁩니다. 아주 갓태어난 아이들도 예쁩니다. 그리고 사랑 받고 크는 아이들은 더 예뻐집니다. 저는 어렸을때 스스로 이쁘다고 생각한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 아이들을 보면서 어쩌면 나도 어렸을때, 그리고 지금도 예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모든 사람이 사랑스럽다는걸 배웠는데, 거기서 저 자신을 배제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제가 주사를 맞으면서 더 이상 울지 않는 이유와 같아요. 제가 그 동안 찌른 아이들일 얼마나 많은데요. 주사를 맞으면서 제가 아파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의 업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