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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소아과의사 Sep 13. 2023

소아과 의사라서 행복해진 과정

시간을 달려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저는 자존감이 굉장히 낮은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지도 않은데, 어린시절 저는 제가 매우 뚱뚱하다고 생각했어요. 손모양도 맘에 안들었고, 발모양도 맘에 안들었지요. 그렇게 예쁘지도 않고 그렇게 똑똑하지도 않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나봐요. 그런 못난 자존감이, 자존심과 엉켜붙어 못된 경쟁심같은것도 만들었고요. 그래서 누군가를 매우 질투하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어른이 되고 어느날 돌이켜보니, 젊은 날의 제 모습은 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학교 근처를 지나거나, 소셜미디어에 친구들을 보면 반갑게 인사하고 싶다가도 이불킥 과거가 떠오르며 손을 슬며시 내리곤했지요. 


저는 아이를 낳고 수련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병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다 제 아이인냥 사랑스럽고 이쁘기만 했습니다. 언제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신생아실에 있을 때 였을 거에요. 신생아실에서는 태어난 후에 그리고 퇴원할 때, 적어도 두번 이상 소아과 의사가 신체검사를 하는데요. 그 일이 지금까지 이어져 올 줄은 몰랐지만, 저는 그 시간이 참 행복합니다. 옹알 거리는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는것은 참 신비로운 일입니다. 세상 무해하고 아무 의도가 없는 그 존재는, 아무런 의도가 없기에 존재 자체만으로 빛이 납니다. 제가 하는 일은 이 아이에게 발가락과 손가락이 10개씩 있는지, 주름이 이상하진 않은지, 심잡음이 들리지는 않는지, 구강내 모양이 정상인지 등과 같은 것을 보는 것이지만, 문제를 찾아내면서도 이 무해한 생명체를 감상하는 것 만큼은 저의 행복이자 즐거움이었습니다. 개원하고는 이 일이 옆에 걱정과 궁금증 가득한 새내기 부모님과 조부모님들이 보시는 앞이라 더이상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습니다만, 흠. 


이렇게 아이들과의 만남을 쌓아갑니다.  아기들의 발가락은 참 작고 몽글합니다. 정말 인형처럼 예쁘게 생긴 아이도 있지만, 아빠를 많이 닮은 것 같아 걱정이 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자마자 속으로 '에고, 못난이~~' 하고 귀엽게 불러보지만, 막상 그 아이가 웃으면 그리고 더 커서 저에게 인사라도 한다면 말이지요. 생긴게 다 뭡니까. 그저 빛! 저의 최애가 되는 것입니다. 이쯤되면 이건 돈 받고 일할게 아니라 돈내고 일할판 인거에요. 저는 성덕입니다. 꺄오~


소아과 의사가 되고 한 1-2년쯤 지났을 무렵일까요. 다양한 발가락 모양과 손가락 모양, 얼굴과 머리의 모양들에 익숙해져 갈 무렵, 그리고 그보다도 훨씬 더 다양한 성격들에 더이상은 놀라지 않게 되었을 무렵이었을거에요. 이 아기의 발가락이 예쁘다면, 어쩌면 내 발가락도 어렸을때는 예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때부터 마음속의 그 아이, 저 자신을 돌볼 용기가 생겼나봅니다. 


아이들은 참 신기한 존재입니다. 병원은 분명 너희를 찌르고, 아프게 했을 곳인데, 언제그랬냐는듯이 잊고는, 진료실에 들어와 생글생글 웃어줍니다. 심지어 제 눈을 찾으며 마주칠때까지 기다렸다가 웃어줍니다. 꺄르르, 침을 흘리며 웃어줍니다. 조용히 쳐다보다가 제 안경에 손을 가져다 댑니다. 그런 사랑은 늘 고맙습니다. 제가 뭐라고 그 아이의 소중한 인생 한켠에 자리를 내어주다니요.  


아이들에게는 편견이 없습니다. 물론, 그 친구들이 지금 저를 기억하고 도장선생님, 이모선생님, 루피 선생님이라고부르며 찾는다 해도, 다 크면 잊겠지요. 그리고 그런일이 있었다고 하면 언제 그랬냐고 피식 웃겠지요. 

그래도 저는 5살짜리 찬이에게서 2살때의 모습을 보고, 10살짜리 이안이에게서 3살짜리를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사랑하게 되겠지요. 그 아이가 커서 무엇이 될지 몰라도 그것은 제 관심이 아닙니다. 저는 이미 그 아이의 아름다움을 보았으니까요. 


그리고 저의 시간을 연속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동안은 잊고 지내서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저의 까마득한 어린시절속의 나라는 아기와, 어린이와, 청소년과 그리고 청년이었던 나를 조금씩 사랑하게 된 것 같았어요. 제가 무엇이 되어서가 아니라, 여태까지 살아왔던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얻은 것들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날것이었던 나 조차도 말이지요. 


저는 여전히 제 모습이 썩 맘에 들지 않지만, 이젠 그렇게 못생기진 않았고, 더 뚱뚱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옷장엔 살빼면 입을 옷들이 쌓여있지만 저녁을 많이 먹었다고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실수하면 스스로에게 내렸던 무거운 벌들을 더이상은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실수 할까봐 묶어두었던 많은 것들을 좀더 내려놓고 살고 있어요.  이것이 제가 소아과 의사가 되고나서 행복해진 이유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당신도 저와 같이 행복해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자화상,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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