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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소아과의사 Aug 29. 2023

선생님은 왜 소아과를 선택하셨나요?

소아과의 좋은 점 1 

대학 병원에서 전공의와 임상의로 일하다보면 학생들을 만나게 됩니다. 요즘 의대생들은 거의 입학하면서부터 전공의 정하고 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도 학생들을 만나보면 개인의 기질이나 호불호에 따라 어떤 과를 선택할지 궁금해져서 물어볼 때가 많습니다.

제가 전공의를 할때보다도 훨씬 더 분위기가 안좋아서 그런지 요즘은 소아과를 하고 싶다고 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습니다. 실습강의 전에 한 사람씩 돌아가며 어떤 과를 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나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곤 하는데요. 거의 대부분 제가 왜 소아과를 선택했는지 물어봅니다. 

"선생님은 아이가 좋아서 소아과를 선택하셨나요? "

아이가 좋은 사람은 소아과에서 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단 아이가 좋은 사람이 아이에 대한 환상을 깰 확률이 매우 높아요. 대부분 아플때 소아과를 방문 하는 아이들은 평소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두려움속에 숨겨둔채 병원에 도착합니다. 더군다나 대학병원에서는 오랫동안 큰 병을 앓아야 하는 아이들을 겪다보면 마음이 아플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러니 아이가 좋은 사람은 소아과에서 더 큰 상처를 받기 쉬울 겁니다. 

저는  MBTI에서 소위  T에 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과를 선택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의과대학을 진학한 이유는 막연히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본과 이후에 국제 보건과 지역사회 개발에 관심을 갖다가 고민을 가진채 반년정도  NGO에서 일도 했습니다. 물론, 도움이 많이 되진 않았지만, 그때의 경험이 소아과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짜장면과 짬뽕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게  인생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지요. 저에게는 환자를 보는 임상과 예방을 주로 하는 예방의학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그 결론을 내리는데 일년정도 걸린 것 같아요. 눈 앞에 있는 환자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환자가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유를 알아내고 그 구조와 환경을 변화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일도 하고 싶었거든요. 

결국은 나중에 해외 봉사를 가더라도 저개발 국가 일 수록 아동의 비율이 높고, 소아과 질환의 대부분이 감염성 질환이므로 감염성 질환을 공부할 수 있다는 이유로 소아과를 선택하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소아과는 저에게 이 두가지 관점을 모두 가질 수 있도록 해주어서 시간이 지날 수록 만족도가 더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볼 때 단순히 병만 보는 것이 아니니까요. 

코로나 시기에 소아과의사의 역할은 더욱더 빛을 바랬던 것 같아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소아과의 90%는 감염성 질환이에요. 소아과 의사들은 늘 감염에 예민합니다. 이름도 생소한 아데노 바이러스 RS바이러스 이런 것들을 일상적으로 접합니다. 그리고 그 감염의 유행에도 매우 예민합니다. 소아과의사는 일년을 살아봐야 그 지역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년간 아이들에게 도는 병의 유행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겨울에 추위가 매몰차게 와야 그해 봄에 감염성 질환이 덜 돕니다. 적당히 추웠던 1월은 5월 수족구 파티를 만들게 됩니다.  물론 바이러스들은 수년에 한번씩 이 유행을 바꾸기도 하는등 다양한 패턴에 변이를 일으킵니다. RS바이러스는 두종류가 있는데요 이 종류가 격년별로 유행을 합니다. 하나는 좀 덜하고 하나는 좀 더 심한데, 제가 전공의를 마치던 그 해에 격동의 RS바이러스가 한가지로 돌았던 적이 있습니다. 자연히 논문을 찾아보게 되고 그러다보면 계속 쌓여서 바이러스의 유행과 특징에 대해서는 알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돌던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하는 바이러스의 이름도 익숙했고요. 감기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변이가 자주 일어나는 종이라는 것도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외 예방접종에 관련해서도 사백신, 생백신과 같은 백신의 종류와 그 백신들의 기전에 대해 기본적으로 늘 접하는 사람들이라 백신이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해 이해도가 빨랐을 것이에요. 그리고 빨리 지역사회 내에 면역을 가진사람들이 많아져야 이 일이 끝날 것이라는 것도 잘 이해하시는 분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판데믹시기에 사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어린이의 감염이 감염 전파의 사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와 보육 시설들이 가장 먼저 폐쇄 되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소아과 의사들은 사회적 소통이 감염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경험했습니다. 아이들은 전혀 아프지 않았어요. 마스크를 끼고, 집에만 있으니 도무지 아플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후 지역사회에 면역이 전혀 없는 아이들 사이에 바이러스가 한두가지 돌기 시작하자, 모두에게 옮겨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집을 쉬더라도 아이들이 끊임없이 아픈 한해가 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2023년은 모든 소아과 의사들에게 기억에 남을 한해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독한 아데노 바이러스, 끊이지 않고 돌아다니는 수족구, 한여름에 도는 독감과 파라 인플루엔자, RS바이러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지역사회내 집단 면역이 존재 하지 않아서 일 것입니다. 


저는 환자를 보면서 사회도 보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둘 다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된 덕이에요. 

저는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답니다. 흣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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