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들 철수가 초등학교입학하고 선생님의 전화가 잦아졌습니다.
저는 여러회사에서 해외영업 담당자로 오래 일했습니다. 성취욕이 강한 편인 사람입니다. 성취욕이 강해서 그런지 자기주장이 강하고, 경영학 전공이라서 그런지 따지는 능력이 조금 발달한 편인 거 같습니다.
아이가 둘이 있는데 첫째는 초등학교 현재 4학년(철수 가명 11세), 둘째는 1학년(영희 가명 8세)입니다. 지금은 별탈없이 평온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평화가 쉽게 온 것은 아닙니다.
유치원에서만 해도 별 탈 없이 생활을 잘하는 것 같았던 첫째 철수가 3년 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문제는 시작되었습니다.
담임선생님으로 부터 전화가옵니다.
"철수가 수업 중 소리를 지르고, 심하게 울었어요!"
혹은 " 단체로 이동할 때 이탈하는 경우가 많아 통제가힘드니 가정에서 그런 부분을 인지하고 신경을 써주세요!"라는 취지의 전화였습니다.
이때는 은행원인 아내와 저는 맞벌이였고, 둘 다 회사 일과 육아에 치여 다툼이 잦은 때였습니다. 첫째를 데리고 심리상담도 받아보는 등 노력을 했으나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심리 상담소에서는 철수가 ADHD인것 같다고 거의 확신하며 말했고, 그제야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철수가 2학년이 되는 22년부터 아내는 육아휴직을 이미 다 쓴 관계로 남자인 제가 전업주부가 되어 아이 둘을 돌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학원, 학교 모두 제1 연락처를 제 번호로 바꾸었고, 밥상을 차리는 것과 청소, 빨래하는 것이 제 과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 아내가 오직 여자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엄마라는 이유로 감당했던 선생님 상담 등 정서적 노동들도 제 차지가 되었습니다.
휴직 당시, 한참을 승진을 신경 써야 하는 시즌이었기에, 또 평생 안 해 본 살림을 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었습니다.
살림을 해 본 친구가 만류하기도 했고, 집에서는 돈을 번다는 이유로 대우를 받고, 회사에서도 웬만큼 자리를 잡고 있던 터라, 익숙하지 않은 가사노동은 안좋아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아내가 첫째를 돌보는 것은 계속 버거울 것 같았고, 아이가 학교를 계속 다닐 수나 있는 것인지 우려하면서 회사를 다니는 것도 힘들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주부가 되기로 마음먹으니 속상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화려한 빌딩에서 근무하고, 해외출장 가서 선물도 사 오는 멋진 아빠에서 집안일하는 가사노동자로 신분이 낮아진 기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로부터 만 2년이 훌쩍 지난 지금, 주부로서의 삶은 제 개인의 전체의 삶에서 가장 값진 시간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첫째가 밝아져 그렇게 힘들던 학교를 잘 다니게 되었고, 둘째도 건강하게 크고 있고, 우리 부부는 연애하던 때 보다 더 사이가 좋게 되었으니까요.
이 책을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는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코로나를 버티며, ADHD상담으로 정신과를 다니며, 주부로서 수십 번을 울었던거 같습니다. 아직도 그 터널을 통과하고 계신 분들께 작은 격려의 말이라도,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비약물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있을 텐데, 정보부족으로 답답한 사람들이 있을 거 같았습니다.
아이가 ADHD라는 얘기가 들리면서 수십 권의 관련 책을 읽고, 해외서적까지 보았습니다. 정신과약물에 의지하고 싶지 않았기에 공부를 많이 했는데, 한국에서는 "ADHD = 약물치료"를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보통 정신과의사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그렇게 유도하기 때문인데, 제 개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약물치료의 시작과 중간과 끝이 상식적이지 않았습니다.
충분한 증거와 구조적 모순에도 학부모들이 약물을 의지하는 심정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비약물 치료를 고집하시는 분들이 분명 이 땅에 있을 것이고, 따라서 읽는 사람이 백 명이던 열명이던지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네가 뭔데 ADHD책을 쓰냐고 하실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ADHD의 진단과 처방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할 수록 더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그 배경과 내용을 분명하게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보통 지능의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처방과 진단이 정신과 약물치료라면, 그것 역시 문제이지 않을까요?
저 아니면 아무도 이런 책을 써주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아마 제가 죽는 날까지 이런 책과 유사한 책은 나오지 않을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은 내가 죽기 전에 하고 가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위가 깨지던지 말던지 계란은 던져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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