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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는치료사 Apr 17. 2024

산만함을 낮추는 법

불안함이 산만함이다.

불안함은 산만함과 정비례다.


어느 날 집으로 고지서가 날아들었습니다. 과속으로 과징금이 청구된 것입니다. 운전한 날짜와 시간을 보니 제가 그랬더군요. 벌금이 13만 원이었습니다. 작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하진 않지만, 아내의 인상은 심각하게 구겨집니다. 눈치가 보입니다. 명백한 잘못이지만 아내가 "실수할 수 도 있지. 괜찮다."라고 말해주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얼굴이 계속 굳어있어 눈치가 보였고, 서운했습니다. 실수를 용납해 주지 않는 아내를 보며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아내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불안'한 마음 상태에서 부엌에 있는 인덕션 불을 안 꺼서 프라이팬은 30분을 달궈버리는 실수를 또 저질렀습니다. 어른도 실수했을 때 "실수할 수 도 있지. 괜찮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데 아들이라고 다를까 생각이 듭니다.


철수는 혼나고 불안한 마음으로 등교했을 때는 울면서 하교하고, 밝게 웃으면서 들어갔을 때는 웃으면서 나오곤 했습니다. 같은 일이 몇 번 반복되니, 아침에 화를 낼 수 없었습니다. 불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에 가야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가 나무라는 순간, 아이들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치우쳐 실수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실수할 수 도 있지. 괜찮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엄마, 아빠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구나." 생각하며 안정감을 느낄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 마음속에 불안함과 산만함을 정비례 관계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불안도를 낮추기 위한 그 무엇이든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내 기준이 아닌 아이 기준에서 불안을 느낄지, 괜찮을지를 고민했습니다. 불안한 마음은 감정이라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나는 안불안한데 넌 왜 불안하냐고 말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오로지 아이의 불안한 이유를 찾아 제거해 주는 것 만이 방법이었습니다.


1. 소리 지르지 않는다.


데이비브 B 스테인은 'ADHD는 병이 아니다'라는 책에서, "아이나 다른 식구들에게 자주 고함을 치면 아이는 남의 말을 무시하는 법을 배우고 그렇게 훈련된다"라고 했습니다. 해결책으로 "항상 보통 크기로 말하고, 지시할 일은 단호하게 말하라"라고 합니다.


전업주부 초기에는 준비를 굼뜨게 하면 소리를 질렀습니다. "빨리빨리 안 해? 아빠 말 무시하는 거야?" 바짝 얼어붙은 아이들은 신속하게 움직입니다. 마음속에는 "학교에 늦어서는 안 돼! 시간을 지키는 법을 가르쳐야 커서도 지킬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폭력이 익숙해, 배운 대로 따라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제 아버지는 아주 화를 자주 내시던 분입니다. 주로 돈 관련 이유 때문에, 짜증과 분노를 내서 집안공기를 차갑게 만들곤 하셨었습니다. 여과 없이 짜증을 내는 바람에 운영하시던 가게에 단골손님도 여러 명 떠나보내야 할 정도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피멍이 들도록 종아리를 맞은 것도 수차례입니다.


폭력에 익숙해진 나는 익숙한 대로 내 자녀들에게 폭력적인 방법을 휘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일(Not To Do List)이라고 제목을 쓰고,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지 않는다, 짜증은 내 문제다."라고 노트에 매일 썼습니다. 석 달이 지나자 많이 사라졌고 1년을 쓰니 소리를 안 지르고도 육아가 가능해졌습니다.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계신다면, 일단 왜 나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게 되었는지 유년의 기억부터 더듬어 보시길 그리고 끊어내시길 응원합니다. (참고 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우는 아이와 부러진 주걱")


2. 예측가능하게 행동하고 말해준다.


아이가 2학년 때 하루는 아들이 실내화 가방만 들고, 제가 책가방을 들고 등교를 했습니다. 학교 문 앞에서 손 흔들어 주고 헤어졌는데, 몇 걸음 움직이다 제 손에 아이의 책가방이 여전히 들려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불과 학교에서 20여 미터도 안 벗어났기에 때문에 급하게 돌아서 학교로 가는데, 아이는 울먹이는 얼굴로 경비 아저씨와 함께 서있었습니다. 가방이 없단 걸 알고 놀라 뛰쳐나온 모양이었습니다.  


아빠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쏘아보는데, 우연히 그때 가슴에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심장은 정말 심각하게 빠르게 뛰고 있었습니다. 헤어진 지 불과 몇십 초만 흐른 상태였습니다. 아빠가 멀리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하면 이렇게 놀랠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크게 놀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불안함이 올라가면 안 되니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습니다.


"학교 앞에 있을 께, 나와서 아빠 찾아" 이런 식으로 하교 약속을 정했었다면,  


"학교에서 나오서 오른쪽에 보면 xx아파트 쪽에 아빠가 주차할 거야. 혹시라도 아빠가 안 보이면 차 있대로 와"


라는 식으로 아이입장에서 아빠가 있기로 한 장소에 안 보이는 상황이 생겨도 아이가 당황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3. 부부싸움하지 않는다.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런데 감정이 상할 때 "아이들을 둘 다 집에 내버려 두고, 집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가능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교회 대학부에서 만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으로 큰 교회 중에 하나입니다. 둘 다 신앙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에 어려운 일 있으면 가정예배를드리다가, 해결되면 말다가 하곤 했었습니다. 아이 앞에서 싸우지 않기 위해 가정예배를 매일 드리자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예배 때문에도 싸웠습니다. 퇴근한 아내는 피곤해서 예배시간에 졸기도 했고, 기껏 준비했는데 예배드리기 싫은 티를 내면 짜증이 나서 예배드리다 말고 싸운 적도 여러 차례였습니다. 하지만 둘 다 아이는 학교에 보내야겠기에, 불안함은 없애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의식이 있었기에 계속 예배를 포기하지 않고 드렸습니다.


신기하게 어느 순간부터 예배를 드린 날은 우리가 안 싸우고 예배를 안 드린 날은 여지없이 싸운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사실 예배라는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고배우는 것이 잖아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죄를 지어도 사랑해 주시는 게 깨달아지니,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싸우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요일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가정예배는 생략했었습니다. 하지만 부부싸움은 일요일에도 안 해야 되니, 일요일도 설교를 들은 내용을 나누며 또 가정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365일 무조건 예배를 드리면서 거의 싸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참고 삼아 가정 예배 순서와 규칙을 말씀드립니다.

* 예배순서:(1) 찬양 한곡 (2) 성경 한 장 교독 및 느낀 점 나눔 (4) 감사제목 3개 나눔 (5) 기도 및 주기도문

* 둘 중 누구도 말씀/찬양 사전준비하지 않습니다. 미리 준비했을 때 배우자가 수고를 몰라주면 서운한 마음이 들어 싸움이 되곤 했습니다.

* 성경교독은 둘 다 이해하기 쉬운 성경을 우선적으로 읽습니다.

* 하루동안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것을 말합니다. 없어도 억지로 생각해서 말해야 합니다.

                             

혹시나 오해 없으시면 좋겠습니다. 독자님들 각자의 종교가 있으실 것입니다. 각 종교의 경전도 있으실 테고요. 부부간에 예배를 통해 평화를 찾을 수 있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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